- 중국 무용수·지역학생과 협업
- 2016년 초연 후 규모 더 커져
- 망자 7번 심판받는 과정 응축
- 영화 ‘신과 함께’ 다시 보는 듯

“2004년, 동대구역을 지나며 근처 대구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 설치된 대구지하철참사 추모 공간에서 한 여성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봤어요. 짧게 지나쳤지만 잊을 수가 없었죠. 이후에도 안타까운 재난은 계속해서 발생했어요. 예술가로서 미약하나마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작업으로 승화하고 싶었습니다.”(김용철 예술감독)

부산시립무용단이 오는 21, 22일 제79회 정기공연 ‘업경대’를 펼친다. 2016년 초연한 ‘업경대’는 시립무용단의 레퍼토리 중 하나다. 사진은 ‘업경대’ 한 장면. 시립무용단 제공

부산시립무용단이 오는 21, 22일 오후 7시30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제79회 정기공연 ‘업경대’를 펼친다. ‘업경대’는 죽은 후 저승으로 갈 때 생전의 죄업을 비추는 거울이다. 공연 영문명은 ‘A Man’s Requiem’(진혼곡)이다.

공연은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49일 동안 7번의 심판을 받는 과정을 제의적 형식에 응축시킨다. 지난해부터 잇따라 두 편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신과 함께’에도 등장하는 이야기로,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염라대왕 앞에 나가 재판을 받고 죽은 후에는 다시 태어나기를 거듭한다는 불교적 생사관이다.

작품은 신비롭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무대를 둘러싼 가운데 막을 올린다. 남자 무용수들이 거울을 마주하며 역동적 몸짓을 선보이는 장면이 제1장 ‘거울이 부르는 노래’, 곧 업경대에 생전의 죄를 비추는 모습이다. 이어 순백의 의상을 입은 여자 무용수들이 천상의 아득하고도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제2장 ‘영혼의 습지’가 이어지고 남자 무용수들이 뒤엉켜 욕망과 두려움을 담아내는 제3장 ‘영혼의 무게’로 전개된다. 마지막 장인 제4장 ‘지워진 자를 위한 난장’에서는 굿의 형식을 빌어 60여 명의 군무가 펼쳐진다. 눈보라를 연상케 하는 무대 미술, 거대한 천이 휩쓰는 무대, 종이의 구김 소리 등 무대 장치가 적극 활용되는 가운데 무용수들의 역동적이지만 절제된 몸짓과 정제된 내면연기가 결합되며 이미지는 극대화된다.

김 감독은 “죽음과 심판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구도를 감각적인 안무와 무대 연출로 표현했다. 불교적 생사관을 담아냈지만 종교적 메시지는 적고 심미적 부분에 신경을 썼다”며 “한국 창작 무용의 컨템포러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은 특히 전통 무용이 강세인데, 이번 창작 무용 공연에도 관심을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이번 공연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무용수 씽춘휘를 비롯해 중국 연변대학교 조선민족 무용전공자인 린쩡호, 리씨펑이 함께 출연한다. 부산대, 계명대, 신라대, 부산예고 등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남학생들도 무대에 오른다. 김 감독은 “60여 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무대라 충원이 필요했고, 지역 학생들과 시립무용단을 경험할 기회를 나누고자 했다. 중국 무용수와의 협업 또한 상호간 교류와 자극이 이뤄질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경대’는 김 감독이 2016년 취임 첫 정기 공연에서 선보인 이후 지난해 제21회 PAF(공연과 리뷰)에서 ‘베스트 춤 레퍼토리상’을 받는 등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통해 부산시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출연 인원과 공연 시간이 수정을 거쳐 규모가 더욱 커졌다. ‘한국 고유의 정서에 깊이 침잠하면서도 현대적 접근을 놓치지 않은 작업’(김채현 무용평론가)이라는 평을 받았다. 전석 1만 원. (051)607-3121~2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