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규 감독과 오랜 시간 작업
- 서로 잘 알아 … 믿고 작품 출연
- 광주 세트장서 한 달동안 숙박
- 유해진·조진웅과 많이 친해져
- 아이 없는 역할 부담도 덜어

툭 내뱉는 듯하지만 진정성이 있고, 귀찮아하는 것 같지만 세심한 배려가 있다. 게다가 솔직하고, 가식이 없다. 31일 개봉한 ‘완벽한 타인’으로 오랜만에 영화 관객과 만나는 이서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나영석 PD와 함께 한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시리즈로 대중과 한층 가까워진 대표적인 츤데레 배우로, 그의 모습이 ‘완벽한 타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꽃중년 레스토랑 사장 준모 역을 맡은 이서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완벽한 타인’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커플들이 모인 집들이에서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 문자, SNS를 모두 공개하는 게임을 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를 그린다. 이서진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세경(송하윤)과 결혼한 꽃중년 레스토랑 사장 준모 역을 맡아 자상하지만 사랑이 여러 사람에게 넘치는(?) 인물을 연기한다.

이서진을 비롯해 유해진, 조진웅, 윤경호,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등이 휴대전화 공개로 예기치 않았던 상황을 맞으며 야릇한 긴장감과 함께 웃음을 전한다.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 영화 ‘역린’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만들어낸 아기자기한 이야기 전개도 돋보인다.

현대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핸드폰을 소재로, 사랑과 우정 그리고 부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완벽한 타인’의 이서진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는 2014년 ‘오늘의 연애’ 이후 너무 오랜만이다. ‘완벽한 타인’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가?

▶물론 영화를 안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좋은 대본이 들어오지 않았다. ‘완벽한 타인’은 이재규 감독님이 하자 했고, 함께 하는 배우들도 참 좋아 혼자 주연을 맡을 때보다 부담도 없었다. 이 감독님의 성격을 잘 아니까 대본을 줄 때는 아무 대본이나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감독님이 주류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고 마니아를 형성하는 분이라 독특한 것을 잘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타인’은 핸드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서진 씨에게 핸드폰은 어떤 의미인가?

이 영화의 한 장면.

▶핸드폰은 제게 큰 의미가 있진 않다. 지금은 누구나 핸드폰을 곁에 두고 있지만 저는 이거 없으면 못 산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전화나 문자, 일정, 인터넷 정도를 쓸 뿐 다른 앱은 크게 쓰지 않는다.

-영화를 본 커플들이 이와 비슷한 게임을 해보자고 할 것 같다. 본인에게 이런 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저는 안 한다. 니꺼도 궁금하지 않으니까 내꺼도 보지 말아라 주의다.

-준모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레스토랑 사장이다. 반면 유해진, 조진웅 씨는 각각 가정이 있는 변호사, 의사다. 지적인 이미지가 있으니 이서진 씨가 변호사면 어떨까 생각도 했다.

▶유해진·염정아, 조진웅·김지수 커플은 자식을 두고 가정생활을 하는 캐릭터인데, 저는 어린 여자와 갓 결혼한 인물이라 좋았다. 아무래도 아이가 있는 가장 역할은 어색하다. 또 관객은 제게 변호사나 의사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준모는 아예 그 반대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라 재미있고 좋았다. 이 감독님도 처음부터 저를 준모 역으로 정했다. ‘다모’ 때부터 저와 만났으니 제 마음을 잘 알고 준모 역을 준 것 같다.

-예능에서 이서진 씨의 실제 성격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준모가 실제 성격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한 타인’을 보시면서 진짜인지 연기인지 혼동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 감독님이 평소 제 모습을 잘 알고, 제가 예능에서 보인 모습을 관객분들이 좋아하니까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다 싶었을 것이다.

-다만 바람둥이로 그려지는 것은 이서진 씨와 다른 모습이었다.

▶영화 속 상황이니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색다르게 보이는 역할이 재미있고 좋다. 준모는 여러 여자와 만나는데 어린 여자든 지적인 여자든 모두에게 맞출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생각이 깊은 것도 아니어서 사업하면 다 망하고 ‘그쪽’만 발달된 사람인데, 찾아보면 주변에 준모와 비슷한 사람이 진짜 있다.

-유해진, 조진웅, 윤경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로 출연했다. 호흡은 어땠나?

▶식탁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제 옆에 진웅이가 앉아 있어서 다른 배우가 대사할 때도 서로 술도 따라주고 잡담도 하는 등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 또 세팅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배우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그냥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었다. 광주에 집안 세트가 있어 한 달 정도 합숙하면서 촬영했다. 남자들은 촬영 갔다가 저녁 같이 먹고, 눈뜨면 사우나에서 발가벗고 만났다.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식탁에서 계속 음식을 먹는다. 음식 에피소드가 많았겠다.

▶식탁 장면은 다 연결되니까 장면마다 핸드폰, 음식 위치를 기억해 세팅해야 했다. 배우들이 가장 잘 아니까 아침이면 와서 음식의 자리를 지정해주기도 했다. 또 계속 먹어야 하니 얼마나 먹었나도 각자 알아야 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왔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앞서 언급했는데, 가정이 안 나오는 역할이 좋고,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 역할이 좋다. 현재 ‘트랩’이라는 드라마를 촬영 중인데, 자식이랑 와이프가 인간사냥에 휘말려 다 죽고, 처절하게 산을 뛰어다니는 역할이다. 나중에 센 반전도 있어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