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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조각은 여백까지 작품…관객 접근 막는다면 의도 훼손”

조각 낙서 사건 그 후

  • 국제신문
  •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  입력 : 2018-04-04 18:56:1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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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액 7억 달하지만 펜스 안쳐
- 가까이서 보고 느끼라는 의도
- 예술품 대한 낮은 시민 인식에
- 시립미술관, 정기 강좌 등 계획
- 전시관 활성화 자문위원단 구성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의 조각작품 ‘관계항-길 모퉁이’에 휘갈긴 낙서(국제신문 지난달 26일 자 8면 보도)의 충격은 컸다.

대부분의 시민과 미술 전문가, 미술 애호가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예술을 대하는 낮은 시민의식에 혀를 찼다. 반면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관련 기사에는 ‘왜 펜스를 치지 않았나’ ‘고철덩이와 돌 하나가 그렇게 큰 가치가 있느냐’는 예상치 못한 댓글도 다수 있었다.

김선희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이우환 조각 낙서 사건 이후 제기된 의문에 답하며 이우환공간 활성화 방안을 밝혔다.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나오시마에 있는 이우환미술관 야외정원 풍경. 이곳 이우환 조각품 또한 펜스나 표지판 없이 주위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액 작품에 펜스 안 치는 이유

“이우환 조각은 여백까지 하나의 작품입니다. 이우환 선생은 북을 칠 때 북소리가 울리는 공간이 여백이라고 표현하셨죠. 펜스를 치고, 큰 표지판을 세운다면 작품을 침범하게 됩니다. 또한 이우환 조각은 관객이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다가가 반응합니다. 뭔지 몰라도 작품 가까이 걸어 들어가게 되죠.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그다음에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우환 선생은 조각의 이름과 재료를 표기한 손바닥만 한 작은 표지판조차 작품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라고 하셨어요.”

3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공간 야외정원에서 만난 김선희 관장은 보험가액이 7억 원에 달하는 고액의 이우환 조각을 ‘펜스도 치지 않고 방치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이렇게 답했다. 작품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관객의 접근을 막는다면 작품 의도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작품 주위에 어떤 방해물도 세우지 말라는 작가의 의사 표현이 있음에도 이번 낙서 사건 이후 시립미술관은 이우환 조각 4점이 설치된 야외정원 바닥에 ‘눈으로만 감상해 주세요 -CCTV 촬영 중’ 내용을 새긴 표지판을 설치했다. 김 관장은 “낙서 사건을 전해 들은 이우환 선생이 예술품을 대하는 시민 의식을 크게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녹슨 철판과 자연석 하나가 무슨 예술이냐”는 반응도 있었다. 기성품 변기(마르셀 뒤샹), 작가의 대변을 담은 통조림(피에로 만조니)도 작품이 되는 현대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김 관장은 “선생의 작품을 하나의 해석으로 수렴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우환의 조각은 최소한의 재료로 풍부한 감상을 끌어낸다. 철판은 인류 문명에 필수적인 인공재료이지만, 이 또한 모래 속 철분을 채취해 만들었다. 공기와 호흡하는 녹슨 철판은 자연과의 만남이면서, 역할이 크게 다른 듯 보이는 자연석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 모든 ‘관계’와 예술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우환공간 활성화 시작

   
김선희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이우환 작가의 조각품 ‘관계항-길 모퉁이’가 낙서로 훼손됐다 복원된 부위를 가리키고 있다. 전민철 기자
이우환 조각에 낙서를 한 배경에는 이우환에 대한 시민의 낮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우환이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거장이란 걸 알았다면, 손해배상액을 생각해서라도 그토록 대담한 낙서를 했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시는 이우환 미술관 유치에 열을 올리다 설립 이후 예산 지원에는 소극적이다. 올해 이우환공간에 배정된 예산은 전혀 없다. 그동안 이우환을 시민에게 알리는 프로그램도 거의 없었다.

시립미술관은 이달부터 이우환공간 활성화에 나선다. 먼저 시민에게 이우환을 알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월 2, 3회 명사, 큐레이터, 시립미술관장이 시민과 만나 이우환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강좌가 시작된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2시에는 명사가, 매월 마지막 주(4월 25일, 5월 30일, 6월 27일) 오후 2시에는 시립미술관 큐레이터가 강사로 나선다. 오는 18일 오후 2시 첫 번째 명사 초청강의는 최열 미술평론가(‘전후 추상미술의 맥락’), 다음 달 16일 오후 2시 두 번째 강의는 신옥진 부산 공간화랑 대표(‘오랜 인연, 이우환 선생’)가 맡는다.

상설전시관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이우환과 깊은 교류를 나눈 세계적인 작가들과의 2인 전 ‘이우환과 그의 친구들’ 전시를 해마다 여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첫 작가는 주세페 페노네(이탈리아)가 유력하다. 1970년 이후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며 나무와 숲을 매개로 인간의 몸과 정체성을 탐구한 거장이다.

이우환공간 내 카페도 새 단장했다. 예산이 없어 이우환 선생이 직접 카페 테이블과 가구를 제작할 비용을 댔다. 작가와 함께 이우환공간을 설계한 가가건축사무소 안용대 소장이 커피 머신을 기증했다. 이우환공간을 재정적으로 후원할 자문위원단도 국내 유력 미술 콜렉터 위주로 구성 중이다.

김 관장은 “서구에서는 이우환을 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꼽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의 한 미술관은 오는 9월부터 2년간이나 이우환 전시를 연다. 이런 이우환이 직접 설계한 건축에서 그가 기증한 작품 26점을 볼 수 있다는 건 부산 시민에게 행복한 일이다. 시민이 좀 더 이우환 작품을 느끼고, 사랑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강의 문의 (051)740-4243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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