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최초 수상으로 화제돼
- 도쿄 거리 조폭·노숙자 등 찍은
- ‘신주쿠 미아’ ‘청춘길일’ 시리즈
- 인디프레스 갤러리 사진전 개최

‘깍두기 머리’에 현란한 용 문신으로 몸을 뒤덮은 남자가 눈을 치켜뜨고 카메라를 쳐다본다. “한 번 찍어봐”하고 호기롭게 포즈를 취해준 것 같다. 남자는 일본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 거리를 지배하는 야쿠자 조직의 일원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무사할까. 무슨 연유로 건물 옥상에서 웃통 벗은 야쿠자를 찍었을까.

	부산 해운대구 인디프레스에서 2017년 ‘도몬켄 사진상’ 수상 기념전을 열고 있는 양승우 사진가와 ‘신주쿠 미아’ 시리즈 작품. 인디프레스 제공

사진을 찍은 이는 양승우(52) 사진가다. 지난해 일본 사진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제37회 도몬켄 사진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인물이다. ‘도몬켄 사진상’은 1981년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가 세계적인 사진가 도몬켄을 기려 제정한 상이다.

양승우의 도몬켄상 수상 작품은 ‘신주쿠 미아(Lost child)’ 시리즈. 신주쿠의 가부키초에서 활동하는 야쿠자 모습을 중심으로 경찰, 노숙자, 취객, 트랜스젠더, 거리의 아이들 등 거리를 떠도는 사람을 ‘길 잃은 아이들’로 명명해 사진에 담고 이를 사진집 ‘신주쿠 미아(Lost child)’로 펴냈다.

양 사진가가 야쿠자를 찍기 시작한 건 벌써 20여 년이 됐다. 전북 정읍 출신으로 한국에서 ‘건달’처럼 살던 그가 서른에 불쑥 일본어를 공부하러 일본에 갔다가 처음 카메라를 잡았다. “비자를 받으려면 학교를 다녀야 해 아무 데나 고른 곳이 시부야에 있는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였어요.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클래식 음악을 5분간 들려준 뒤 자기 느낌을 사진으로 찍어오라 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공부라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는 가부키초에서 한국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담배꽁초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깨끗한 일본에서 노숙자와 취객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유롭게 섞인 분위기가 재미있고 편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걸 찍으라 해서” 금요일 오후 가부키초에 나가 일요일까지 자신도 ‘직접 노숙하면서’ 그 거리 사람들을 찍었다. 모든 사진은 목에 걸고 다니는 ‘똑딱이’ 카메라로 찍는다. 연출되지 않은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 좋은 카메라보다 기동성이 생명이다. 어느 날 양복을 입고 걸어오는 야쿠자 다섯 명을 봤다. 꼭 찍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말을 못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쉬워 잠이 안 왔다. 운 좋게 다음 주 그 다섯 명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또 걸어왔다. 한 대 맞더라도 후회하지 말자 싶어 “사진 공부하는 학생인데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아무 거부 반응 없이 찍으라고 했다. 사진을 현상해서 다음 주에 가져다주니 마음에 들어 하며 자기네 사무실에 놀러오라 했다. 그때부터 야쿠자를 찍고, 현상해서 주고, 또 찍는 활동이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 ‘청춘길일(靑春吉日)’ 시리즈에는 한국 술집에서 여성 접대부와 뒤엉켜 술 마시고 노는 사내들도 담겼다. 일본·한국 깡패, 거리의 사람만 찍으니 시선이 좋지 않았다. “본인이 깡패니 깡패만 찍는다”고 냉대했다. 전시하고 책 내기가 쉽지 않아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귤 따기부터 해외에서 유전을 찾는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럼에도 야쿠자를 찍는 이유는 뭘까. 작가는 간단히 “좋아서”라고 답했다. “제대로 사진을 보는 사람은 제 사진을 보고 슬프다고 해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듯 어둠도 있다. 그는 ‘어둠이 있었다’고 외치며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듯하다.

해운대구 청사포 초입에 있는 인디프레스 갤러리는 양승우의 도몬켄 사진상 수상 기념 사진전 ‘그날풍경’을 개최한다. 사진전 기획자인 황정수 미술평론가는 “야쿠자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있는 그대로를 찍은 리얼리즘이다. 거대하고 잘사는 도쿄의 뒷골목에 야쿠자, 노숙자가 공존하는 것이 일본 사회의 실체다. 야쿠자는 여전히 일본 경제, 정치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야쿠자는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한 실체”라고 설명했다. 오는 31일까지. 무료. 010-6757-1405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