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 사계절 풍경·제철음식 1년간 담으며
- 취업 등 청춘의 고민 자연스럽게 녹여내
- 김태리는 사람 집중하게 만드는 좋은 배우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의 기운이 조금씩 싹트는 가운데, 봄 햇살처럼 기분 좋아지는 영화 한 편이 찾아온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개봉 28일)는 시험, 연애, 취직 등의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어머니에게 배운 요리 솜씨로 제철음식을 해먹으며 힐링의 시간을 갖는 혜원 곁에는 고향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은숙(진기주)과 귀농한 재하(류준열)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 이용우 기자

우리 농촌의 아름다운 사계와 함께 잠시 편안한 숨을 쉬게 해주는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관객들에게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제보자’ 등을 연출한 한국영화계에 흔치 않은 중견 여성감독이자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의 버팀목으로서 항상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는 임 감독을 만나 ‘리틀 포레스트’와 영화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또 자급자족 경제의 요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영화도 제작됐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시험, 연애, 취직 등의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이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제작자가 먼저 보고 저한테 제안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영화를 찾아봤는데, 제가 워낙 시골생활을 좋아하고, 영화의 성향도 잘 맞았다. 그래서 적은 예산으로 부담 없이 찍고 싶었다. 작은 영화로 관객들에게 영화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농촌의 사계절을 담는 것은 힘든 일이다. 배우, 스태프의 스케줄도 있고, 적은 예산에 촬영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겠다.

▶구정아 PD의 역량이다. 구 PD가 스태프를 1년간 잡아줬고, 예산을 규모 있게 잘 짰다. 너무 고맙다. 촬영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는데, 김태리 씨는 촬영 사이사이에 ‘1987’을, 류준열 씨도 두어 편 촬영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자기가 맡은 역을 쉬었다가 다시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계절의 바뀜을 알려주는 각 계절의 인서트 컷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촬영지는 경북의 한 시골마을이다. 상업영화에서는 그런 커트들이 들어갈 여유가 없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있었다. 젊은 관객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를 보여주고 싶었고, 마음의 위안을 받거나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우정을 나눈 세 친구 역 중 김태리 씨가 이야기를 이끈다. 또 은숙 역의 진기주 씨는 신인을 캐스팅했다. 어떤 매력이 있었나?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씨 모두 마음에 담고 있던 사람이다. 김태리 씨는 많은 작품을 한 것은 아닌데, 화면에 나왔을 때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또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이 크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오랜만에 좋은 배우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배우인 것 같다. 진기주 씨는 신인이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관객들이 많이 좋아하더라.

-임용고시 실패, 연애 등으로 마음이 복잡한 혜원, 마을 농협에서 일하며 도시로 나가고픈 은숙, 회사 생활을 박차고 나와 귀농한 재하 등의 모습이 우리 청춘들을 반영한다.

▶혜원이가 가장 고민하는 것이 취업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혜원을 비롯한 친구들의 고민은 또래 친구들의 고민이고, 그것을 영화에 녹여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혜원과 살다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 역으로 문소리 씨가 출연한다. 친분으로 캐스팅했나?

▶문소리 씨는 저하고 친분도 있지만 구 프로듀서와 절친이다. 어머니의 분량이 많지 않지만 극장에서 큰 화면에서 보면서 문소리 씨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서 좋았다.

-혜원이 텃밭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만드는 각종 요리가 등장한다. 배춧국, 수제비, 시루떡, 파스타, 오꼬노미야끼, 아카시아 튀김, 크렘 브륄레, 막걸리 등 동서양을 넘나든다.

▶원작에도 요리가 많이 나오는데 한국식으로 메뉴를 정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얽힌 메뉴, 그리고 키우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요리다. 계절별로 요리를 정해서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키친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서 모델을 보여주면 김태리 씨가 연습해서 숙지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도 직접 요리를 했다.

-어머니는 혜원에게 “기다려야 최고로 맛있을 걸 맛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요리뿐만 아니라 때를, 열매 맺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의 섭리가 서두른다고 해서 싹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타이밍이 있다. 어머니가 요리하면서 기다리라고 하듯이 자신만의 필요한 시간이 있다. 혜원이가 1년간 고향에 있으면서 그런 것들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임용고시에서 한 번 떨어졌지만 거기서 싹이 트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혜원이는 앞으로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임 감독님의 실제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일 뿐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웃음). 마음이 푸근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무섭게 보는 분도 있다. 촬영장에서 화를 내거나 소리 지른 적은 없는 것 같다. 조용조용하게 흐름에 맡기는 편이다.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욕심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보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