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호수가 함께하는 법기수원지. 편안한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명품 코스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의 피눈물로 건설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27년 12월 20일 당시 동아일보에 ‘양산 법기리 상수원지 기공식’ 소식과 수몰지 주민의 이주 대책, 생계 문제가 거론된 기사가 게재됐다. 일제가 주도한 대규모 토목공사였던 것이다. 댐의 오른쪽 아래 석조로 된 취수터널에는 ‘원정윤군생(源淨潤群生)’이라는 문구가 돌에 새겨져 있다.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는 의미로 수원지의 역할에 적합한 문구지만 이 글을 쓴 자는 일제강점기 3대와 5대 조선 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다.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폈던 그의 이름은 ‘원정윤균생’이 담긴 석판 왼쪽에도 쓰여 있다. 그는 강우규 의사의 폭탄 투척에도 살아남은 인물.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부산을 방문한 일본 왕족이 청정한 곳을 물색하다가 이곳을 찾았다.

법기수원지 입구의 초고층 숲길을 걸으면 히말라야시다와 편백이 내뿜는 피톤치드의 상쾌함과 신선함에 압도된다. 곽재훈 전문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된다. 박 전 대통령이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근무할 당시인 1960년 6월 일행 3명과 함께 방문해 수원지 서쪽 호안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수원지 입구에서 취수터널 쪽으로 가는 길엔 벼락 맞은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가 있다.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는 ‘안타깝게도 1980년 7월 21일 한여름날 오후 7시 벼락을 맞아 57년간의 생을 마감했다’는 글을 안내판에 담고 있다.

법기수원지는 일부 개방 이후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인산인해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도 있다. 개방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여름철은 오후 6시까지). 다만 현재 수원지 바닥의 부엽토 등을 정비하는 준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댐 마루에서 ‘반송 7형제’와 함께 호수를 만날 수 없는 점이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