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산비리 소재 범죄실화극
- 한국영화서 처음 다뤄 의미
- 대중적 관점에서 만든 영화
- 진보·보수 손잡고 볼 수 있어

- 정의로운 이미지에 소명감
- 작품선택엔 오히려 부담돼

서글서글한 눈매와 푸근한 웃음을 바탕으로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 김상경이 방산비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1급기밀’(개봉 24일)로 찾아왔다.

	영화 ‘1급기밀’에서 방산비리를 고발하고 권력 집단에 맞서는 항공부품구매과 박대익 중령 역을 맡은 김상경. 미인픽처스 제공

‘1급기밀’은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전투기 부품 납품 비리, 공군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해군의 방산비리를 폭로한 사건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범죄실화극이다. 연출을 맡은 홍기선 감독이 촬영을 마친 2016년 12월 1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살인의뢰’ 이후 3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김상경은 ‘1급기밀’에서 군복 뒤에 숨어 사건을 은폐하려는 집단에 맞서는 항공부품구매과 박대익 중령 역을 맡았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홍 감독님이 8년간 준비하신 영화인데, 감독님께서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개봉 소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고(故) 홍기선 감독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다.

▶홍 감독님이 1980년대부터 사회성 짙은 영화를 연출하셔서 정치적 성향이 강한 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니 그냥 쌀집 아저씨였다. 촬영장에서 한 번도 정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다만 “방산비리 소재의 영화 처음 만든다”는 것과 “많은 사람이 보기 위해서 이전 영화들과 달리 대중적으로 접근하고 싶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이전 홍 감독의 작품들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선택’ ‘이태원 살인사건’ 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 사회성이 강했다. 그런데 ‘1급기밀’은 사회성은 강하지만 드라마트루기는 이전과 달리 대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유머러스한 상업영화의 범주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쫑파티 때 “관객 200만 명은 보장한다”고 하셨다. 그만큼 상업영화로 접근한 것이 확실하다.

-또 ‘1급기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한국영화에서 방산비리를 처음 다룬다는 것이다.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와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실화가 영화 속에 반영됐다.

▶아무도 안 다루던 소재를 영화화했다는 것은 큰 의미다. 그리고 공익을 위해 내부고발한 사람이 고초를 당하게 되는 것을 다룬 것도 의미가 있다. ‘1급기밀’은 정치 문제를 떠나 보수와 진보가 손잡고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또 대다수의 군인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데, 1%의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인들도 많이 봤으면 한다.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과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1급기밀’. 미인픽처스 제공

-영화 속 박대익 중령은 미국의 전투기 군납업체와 군부 조직의 유착 관계로 야기된 비리를 내부고발한다. 하지만 내부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심지어 군대, 언론, 정재계의 합작에 의해 개인 비리를 감추려고 내부고발한 인물로 역공을 당한다.

▶박 중령은 2009년 MBC ‘PD수첩’을 통해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한 당시 해군 장교였던 김영수 전 소령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협박전화나 부당 발령으로 사병과 함께 책상을 쓰게 되는 등의 조직 내 따돌림 등은 실제 이야기다. 김 전 소령도 이 영화를 봤는데 “영화화 안 될 줄 알았다. 감동했다”며 감회에 젖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당시 ‘PD수첩’의 PD가 현재 MBC 최승호 사장님이었다. 김옥빈 씨가 그 분 역을 맡아 연기를 했는데, 아마 현재 사장님이 아니시라면 많은 도움을 주셨을 것이다.

-김상경 씨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 5.18 광주를 다룬 ‘화려한 휴가’, 드라마 ‘대왕세종’, 장영실‘ 등에 출연하며 정의로운 이미지가 생겼다. 이번 영화도 그 연장선상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시사교양 프로그램 출연 섭외가 자주 들어온다. 출연한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 소명감도 있지만 작품 선택에 있어 부담스럽기도 하다. 소재가 계속 바뀌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개봉 예정인 ‘사라진 밤(가제)’에서는 형사 역을 맡았는데,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극악한 악역이나 정통 공포영화에 출연하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인물을 저에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인물에 완전히 빠진다.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님의 ‘생활의 발견’을 마치고 한 달 넘게 북한산에 올라가서 앉아 있곤 했다. 연기한 인물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 최민식 선배님이 ‘악마를 보았다’를 하면서 자신도 피폐해진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지독한 악역을 맡는 것이 겁난다.

-지금까지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작을 안 하는 편이다. 이유가 있는가?

▶‘살인의 추억’ 이후 아류의 시나리오가 계속 들어왔다. 유행에 동의할 수 없었다. 또 한 번 영화와 드라마를 겹쳐서 촬영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각 현장에 가서 항상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다시는 겹치기 안 한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에 계속 출연하고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저는 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인물로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중들이 ‘생활인 김상경’이 아닌 ‘작품 속의 김상경’으로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