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공포장 택배로 생고기 공수
- 제주 출신 사장이 직접 정형

- 오겹살 옆 제주산 생고사리 굽고
- 한라산 소주로 비릿함 잡은 멜젓
- 풍미 독특한 유채김치 곁들이면
- 쫄깃 달달 고소한 맛에 감탄사
- 잡내 잡은 뽀얀 고기국수도 별미

얼마 전 갑자기 찾아온 추위로 제주도 한라산에 온통 눈꽃이 피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동화 속 눈의 나라 같은 제주 풍경을 TV로 보니 제주 음식이 떠올랐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특히나 돼지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삼겹살 구이뿐 아니라 수육을 도마 위에 얹은 돔베고기, 돼지 뼈로 국물을 내 국수를 말아먹는 고기국수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흑돼지를 이용한 음식은 제주도의 아이콘과 다름없다. 제주까지 가지 않아도 제주산 흑돼지와 고기국수를 진짜 제주식으로 맛볼 수 있는 곳을 알아냈다.

	제주산 야생 고사리는 통통하고 연해서 흑돼지를 구운 뒤 불판에 데워서 같이 먹으면 살캉거리는 식감이 아주 좋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명승숯불돼지갈비(051-756-3155)’는 제주 출신의 김승민 대표가 제주의 맛을 지켜가고 있다. 흑돼지뿐 아니라 흰 돼지도 모두 제주에서 생고기 상태로 택배를 받는다. 김 대표는 진공으로 포장된 돼지 갈비 한 짝을 보여주면서 가게에서 직접 정형을 한다고 했다.

흑돼지 오겹살은 두께 1.5~2㎝로 썰어 표면엔 일일이 0.5㎝ 간격으로 칼집을 넣는다. 그래야 도톰한 고기가 속까지 잘 익고 씹기에도 편하다. 흑돼지는 뭐가 다른가 물어보자 김 대표는 “흰 돼지보다 지방이 더욱 단맛이 있고 단단하다. 덜 느끼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불판에 잘 구워진 흑돼지의 껍질은 고소하고 쫀득한 끝 식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곁들이는 음식이 독특하다. 제주에서 공수한 생고사리를 살짝 데쳐내 고기와 같이 데워 먹게 한다.

	제주산 흑돼지는 도톰하게 썰어 0.5㎝ 간격으로 일일이 칼집을 넣는다.

제주도 생고사리는 흔히 우리가 접하는 고사리나물과는 모양이 달랐다. 훨씬 통통하고 색깔이 풀색인 데다 무엇보다도 식감이 아주 살캉대며 부드러웠다. 속의 섬유질이 전혀 이에 끼지 않을 정도로 연해서 신기했다. 제사상에 오르는 고사리나물은 조금 질기고 색은 짙은 고동색에 가까운 데다 굵기도 콩나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랐다.

김 대표는 “야생 고사리는 일일이 사람 손으로 채취해야 한다. 봄에 고사리가 날 때 따다가 급속 냉동해 부산으로 가져온 뒤 살짝 삶아내서 참기름, 조선간장만 넣어 무쳐낸다”고 설명했다. 이 고사리를 돼지고기를 다 굽고 난 뒤 중간에 올려 살짝 데워서 같이 먹는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채의 대와 잎으로 담은 유채김치다. 꽃을 피우려고 올라온 유채 대를 잘라 김치로 담는다. 김 대표는 “제주에선 동지김치라 부르며 즐겨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가운데 줄기 부분은 특유의 단맛이 있어 김치로 담으면 풍미가 독특하다. 묵은지처럼 삭혀도 맛있고 갓 담았을 때도 아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졸아든 멜젓에 한라산 소주를 부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날 맛본 것은 지난 3월에 담갔던 김치라 색상이 마치 잘 삭은 갓김치 같았다. 하지만 갓보다는 훨씬 섬유질이 부드럽고 줄기 부분에서 은근한 단맛이 났다. 잘 구운 흑돼지 오겹살을 싸서 먹으니 소금이 필요 없게 간도 딱 좋다.

제주식으로 고기를 구워낸다는 음식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멜젓’이다. 멸치젓갈을 제주말로 멜젓이라 하는데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불판 한쪽에서 같이 끓여 좀 졸여지면 고기를 찍어 먹는다. 이곳의 멜젓이 좋은 건 비린내를 확 줄여서다. 7가지의 양념을 넣어 훨씬 맑게 만든 멜젓은 감칠맛과 짭조름한 맛을 고기에 더해줬다.

멜젓이 많이 졸아들자 김 대표는 제주 소주인 한라산을 부었다. “우리 집 멜젓의 7가지 양념 중 하나가 한라산 소주다. 소주는 가열하면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멜젓의 비린내도 같이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고기국수는 담백하고 고소해 국물이 술술 들어간다.

고기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건 고기국수다. 제주에 놀러 가면 좀은 굵직한 중면에 뽀얀 돼지고기 국물, 도톰한 수육 몇 점을 얹은 고기국수를 꼭 먹는다. 문제는 돼지 사골로 끓여낸 육수에서 나는 돼지 특유의 잡냄새인데, 이 집의 고기국수는 놀라울 정도로 잡내가 없다.

김 대표는 “돼지사골에 맹물만 넣고 끓인다. 재료가 신선하면 잡내가 있을 수 없다”며 육수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진 파와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 것 외에는 따로 들어간 향신료가 없었다. 고소하고 담백하면서 느끼하지 않아서 국물이 술술 들어갔다. 여기에 유채 김치를 척 걸쳐 면과 먹어도 아주 잘 어울린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