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실상 폭로한 할머니들
- 실제 사연 모티브로 한 영화
- 정공법 택한 귀향·눈길과 달리
- 제3자 시각에서 접근해 차별화

- “극중 민재와 할머니 소통과정서
- 관객들도 깊은 울림 얻었으면…”

말만 들어도 울컥하는 ‘위안부 할머니’라는 소재를 따뜻한 유머와 진한 감동으로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21일 개봉)가 초가을 극장가를 웃음과 울음으로 뒤덮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간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시라노:연애조작단’ ‘쎄시봉’ 등을 통해 휴먼 코미디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 김현석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라는 민감한 소재를 편안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전달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 리틀빅픽처스 제공

CJ문화재단이 주관한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 당선작을 영화로 만든 ‘아이 캔 스피크’는 ‘민원 왕’ 할머니 옥분(나문희)이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초반부는 옥분과 민재가 영어 공부를 매개로 소통하는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반면 후반부는 옥분 스스로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였음을 밝히고, 미국 하원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 피해자로 증언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2007년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가 미국 하원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청문회 장면은 미국 버지니아주의회에서 촬영해 더욱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관객 여러분이 영화 속 민재가 되어 옥분 할머니를 바라보고, 다가가고, 이해하면 깊은 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는 민감하고 무거운 소재인데, 웃음과 감동을 잘 조화시켜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됐다.

▶이전의 위안부 할머니를 그린 영화 ‘귀향’과 ‘눈길’이 정공법이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조금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가 ‘스카우트’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접적으로 다룬 바 있어 의욕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눔의 집을 찾아가고, 수요집회에 처음 참여하면서 아픈 역사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간 묘하게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럴 자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민재가 옥분 할머니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그와 비슷했을 것 같은데, 그간 몰랐던 것이 죄송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가 아는 것만 해보자고 했고, 한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시작해 조금씩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옥분 할머니를 연기한 나문희 씨의 캐스팅은 적역이었다.

	‘아이 캔 스피크’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는 옥분 할머니(나문희)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제가 시나리오를 받기 전, 이 영화를 기획했던 영화사 시선과 명필름이 나문희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 선생님이 올해 77세이신데, 10년 전 미국 청문회에서 증언하신 분들의 당시 연세가 77세이셨다. 또 영화 초반에는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진행되는데, 나 선생님이 이전에 출연했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나 영화 ‘수상한 그녀’ 등의 모습을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있는 할머니가 이런 사연을 가진 분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게 됐다.

-옥분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후 어머니 산소에서 하소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은 해가 질 무렵 촬영했는데, 제작진의 실수로 NG가 났다. 해가 거의 져서 아쉬움을 남긴 채 촬영을 접으려는데 나 선생님이 뭔가 찜찜하셨는지 다시 하자고 하시더라. 그리고 담백하게 처음부터 다시 연기하시는데 저뿐만 아니라 당시 스태프들 모두 소름이 끼쳤다.

-나문희 씨는 청문회 장면에서 긴 영어 대사 연기를 했다. 영어 대사에 감정을 싣는 것이 어려운데, 그 장면 역시 감동적이었다.

▶나 선생님의 남편분께서 영어 선생님이시고, 미국에 따님이 살고 계셔서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미국 촬영 때는 보름 전에 먼저 가셔서 따님, 사위분과 매일 연습하셨다. 그런데 막상 버지니아주의회에서 미국 연기자 150명과 촬영을 하려니까 순간 긴장하시더라. 혹시 영어 대사 때문에 감정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잠시라도 의심한 것이 죄송했다. 나 선생님과 함께한 것은 영광이었다.

-나문희 씨의 연기가 빛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이제훈 씨의 연기도 좋았다.

▶이제훈 씨는 시나리오 전체를 보고 자신의 연기를 설계한다. 그래서 한 장면을 세트와 로케이션으로 따로 찍어도 연기의 톤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잔기술을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연기하는 배우라서 다이내믹한 나 선생님의 연기와 조화가 잘 됐다.

-지금까지 연출작들을 보면 장르 영화를 자신의 색깔로 변주하곤 했다. 그것이 ‘김현석표’ 영화의 특징인 것 같다.

▶장르의 공식을 따르는 것이 싫다. 지금까지 7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최대한 관성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희미해지는 순간 창작자로서 생명이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