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양반집 규수 공예서 출발
- 11가지 기본 바느질부터 배우고 매듭으로 꽃다발·브로치 만들어
- 줄 색상·기법 따라 다양한 변신
- 조각보 괴나리봇짐 인형 깜찍
- 창 가리는 조각 모시발도 제작

이신자(오른쪽) 대표가 강미정 씨에게 연봉 매듭을 이용해 브로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냉방이 되지 않는 실외에선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목 뒤에서 땀이 ‘주르르’ 흐르는 계절이다. 더위를 잊기 위해선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이 효과가 크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겠다. 규방공예는 50대 이상의 장년층 여성들의 관심사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취미다. 조선 시대 양반집 규수들의 생활공간을 규방이라 했고, 여기서 생겨난 공예 장르를 규방공예라 한다. 바느질을 통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던 것에서 비롯했지만 요즘은 현대적으로 접목해 세련된 공예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부산 부산진구 빗살고운 규방공예 공방의 이신자 대표는 전통매듭, 규방공예, 조각보, 미니어처 한복까지 다양한 분야의 규방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이 대표는 쌈지사랑 규방공예 연구소 부산지회장으로 2013년부터 쌈지사랑 규방공예 연구소의 부산지역 회원들 작품만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오고 있다. 이 대표는 “규방공예는 바느질로 작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아주 다양한 분야가 있다. 한 번 시작해 보면 규방공예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며 취미로서의 몰입도에 대해 알려줬다.

조각보를 이용한 괴나리 봇짐을 맨 인형. 전시회 때마다 인기다.

규방공예의 바탕 기술이 기본 바느질이라면 바늘을 꽂는 바늘방석은 가장 기본 도구이다. 지금이야 바늘이 아주 흔하지만 예전에는 바늘이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바늘을 꽂아 보관하는 바늘방석은 바늘보다는 깊이가 얕아야 했고 속은 꽉 채워야 했다. 이 대표는 “옛날 할머니들은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동그랗게 비벼 말아서 담벼락에 끼워 넣어 삭혔다가 바늘방석이나 바늘 쌈지 속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바늘을 잘 간수할 수 있는 바늘방석은 규방공예의 필수품이다. 기본 바느질은 11가지로 이것부터 손에 익히면 여러 소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공방 한쪽에선 매듭으로 작은 꽃다발과 브로치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연꽃 모양의 연봉 매듭을 활용한 꽃다발은 색상의 조화가 놀라웠다. 연봉 매듭 10개를 하나로 모아 옷핀에 고정하면 세련된 색감의 브로치로 변신했다. 매듭이라면 한복 노리개에 있는 고풍스럽고 조금 노숙해 보이는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매듭을 만드는 줄의 색상이 아주 다양했고 어떻게 색을 섞느냐에 따라 여느 브로치 못지않게 멋있었다.

앞뒤가 똑같아 보이게 하는 쌈솔 바느질로 만든 조각 모시발.

한복 가게를 운영하는 강미정 씨는 “지난 1월부터 매듭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듭은 노리개도 되고 재킷 위에 다는 브로치도 되고 생각에 따라 뭐든 적용할 수 있다. 전통적인 것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현대적인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정말 재미있다”며 연신 연봉 매듭 미니 브로치를 만들었다. 지인이 부탁한 차 받침 장식으로 달 것이라며 색색의 연봉 매듭을 만드는 거였다. 이 대표는 “연봉 매듭은 단추 매듭이라고도 한다. 한복에는 지퍼가 없으니 옷을 여미는 데 매듭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양갓집 규수가 결혼하기 전 꼭 배워가는 매듭 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매듭은 한 줄에서 3가지 이상의 기법을 사용해야 하고 위아래 모양이 대칭이어야 한다. 그리고 앞뒤의 모양이 같아야 해 매듭을 만들고 남은 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매듭으로 브로치나 목걸이, 노리개, 장식 끈 등 무궁무진한 변형이 가능하다. 공방에 전시된 작품 중에는 매듭으로 만든 부엉이 브로치, 포도 목걸이, 바구니 속 꽃다발 등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와 함께 12가닥의 실을 머리카락처럼 땋는 12사 끈목 작업도 이뤄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남성들의 도포 가슴 끈으로 쓰이는 납작끈이었지만 이 역시 두께감이 있어 다양한 소품으로 활용된다.

괴불 노리개와 누에고치를 이용한 노리개 작품. 화려하지만 고상한 기품이 있다.(왼쪽), 옛날 여성들이 한복에 달아 지니던 바늘 쌈지 노리개. 위의 뚜껑을 열면 아래에 바늘이 들었다.

옆자리에선 김민화(56·부산 연제구 거제1동) 씨가 규방공예 자격증 3급에 도전하기 위해 귀주머니를 만들고 있었다. 귀주머니는 구름 모양의 주머니로 남자들이 도포 자락에 매달고 다녔다. 그는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목표를 세우고 하는 중”이라며 바느질에 다시 집중했다. 이처럼 빗살고운 규방공예 공방에선 다양한 종류의 규방공예를 배울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조각보로 만든 괴나리봇짐을 맨 인형도 어찌나 깜찍한지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창을 가리는 용도인 조각 모시 발도 이곳에서 제작법을 배울 수 있다. 모시 역시 앞뒤가 똑같아 보이게 하는 쌈솔 바느질을 이용해 홑보로 만들어지므로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처음 규방공예를 시작할 때 누군가의 작은 도움만 있으면 금방 실력이 늘 것 같은 아쉬움이 있어 공부를 거듭해 공방을 열게 됐다. 규방공예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게 문턱이 아주 낮다”며 “규방공예가 가지는 우리 문화만의 아름다움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하면 쓰일 곳이 정말 다양하다. 관심을 두고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