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의 향연

- 부여 궁남지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
- 33만 ㎡에 50여종 1000만 송이 만개
-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엔 백련 주종
- 전주 덕진공원 연화교 따라 홍련 감상

# 고즈넉한 사찰

- 청운사 곳곳에 불화·달마도 등 전시
- 망해사 낙서전에선 심금 울리는 종소리
- 군산 동국사는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

'진흙에서 나왔지만 오염되지 않고, 맑은 물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꽃대의 속은 비어 있고 겉은 곧으며, 덩굴도 뻗지 않고 가지도 차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언제나 꼿꼿하게 서 있으며, 가히 멀리서 바라볼 뿐 가지고 놀 수는 없다'.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인 주돈이의 '애련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국화를 은자의 꽃으로, 모란을 부귀의 꽃으로, 연꽃을 군자의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꽃처럼 고결한 선비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물 위에 고고하게 핀 연꽃을 보면 숭고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연지인 충남 부여 궁남지에서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윤오월 세 곳의 사찰을 돌면서 기도하면 원하는 일이 모두 이뤄진다는 '윤달 삼사 순례'를 하면서 숭고한 느낌의 연꽃을 보기 위해 몇 군데를 살펴봤지만 쉽게 코스가 짜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15년 이상 전국의 사찰과 박물관 등을 찾아 인문학 소양을 넓히고 있는 답사단체인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으로부터 해답을 찾는다. 하루 만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인 충남 부여 궁남지를 비롯해 전북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 전주 덕진공원 등 연지 세 곳을 구경한 뒤 김제 청운사와 망해사, 군산의 동국사 등 삼사 순례까지 가능한 코스다. 연꽃은 한꺼번에 피고 지는 꽃이 아니라 6~9월에 볼 수 있으므로 축제 기간(7~16일)이 아니더라도 활짝 핀 연꽃을 만날 수 있다.

■신성한 아름다움에 빠지다

백련으로 유명한 김제 청운사의 하소백련지.

지난 8일 새벽부터 내린 장맛비가 전북 익산을 지나자 아예 들이붓는다. 연꽃 구경은 고사하고 차에서 내리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첫 목적지인 충남 부여 궁남지에 다다르자 신기하게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연꽃 시즌을 알리듯 궁남지 주차장은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번잡하다. 궁남지는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붙여진 이름으로 백제 무왕 35년(634)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다. 33만 ㎡(약 10만 평)에 백련 홍련 수련 가시연 등 50여 종의 연꽃 1000만 송이를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입구부터 새색시 같은 홍련들이 수줍어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다. 그 자태가 가히 단아하다. 연못 가운데 있는 포룡정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와 곳곳에 마련된 원두막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 때문에 빌 새가 없다. 홍련에 이어 만난 순백의 백련은 청순 그 자체다. 궁남지에서 열리는 부여서동연꽃축제는 올해까지 3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 문화관광 우수축제로 선정된 바 있다.

연화교 연화정과 연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전주 덕진공원.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에서는 6만여 ㎡에서 백련이 청초함을 뽐내고 있다. 충남 아산시 인취사의 혜님 스님에게서 백련 8주를 분양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하소는 연못의 모양이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대와 달리 개화 시기가 늦어졌는지 아직 봉오리를 열지 않은 백련이 주를 이룬다. 활짝 핀 백련이 청초함을 느끼게 한다면 봉오리 상태의 백련에서는 도도함이 느껴진다. 각종 먹거리를 파는 부스를 지나 오르면 청운사를 만날 수 있다. 사찰 앞마당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다양한 곡이 연주되고 있고 사찰 곳곳에서는 불화 및 달마도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대중에게 다가간 사찰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지만 사찰 본연의 색깔은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함께 든다.

백련으로 유명한 청운사에서 연꽃축제를 맞아 공연이 열리고 있다.

전주 8경 중 하나로 100만여 송이의 연꽃이 연분홍으로 물드는 전주 덕진공원은 전체 9만여 ㎡ 면적 중 4만2000여 ㎡에서 홍련이 자라고 있다. 입구인 연지문을 따라 곧장 들어가면 호수 가운데 길게 뻗은 연화교가 있다. 연화교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홍련이, 왼쪽으로는 오리배를 탈 수 있는 호수가 펼쳐져 있다. 연화교를 따라가며 홍련을 감상하다 보면 3층 정자인 연화정이 있다. 2층과 3층에서는 연화교를 오가는 사람들과 왼쪽의 연꽃, 오른쪽의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금 오가는 사찰 찾아 삼사 순례

스님의 허락을 얻은 답사객들이 김제 망해사의 종을 쳐보고 있다.

하소백련지로 유명한 청운사 외에도 김제에서는 망해사라는 사찰을 만날 수 있다. 망해사는 만경강 하류 고군산열도를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2년(642)에 부설거사가 사찰을 지었으며 사찰에서 가장 유명한 낙서전(전북 문화재자료 제128호)은 선조 22년(1589)에 진묵대사가 지었다. 낙서전은 이후 1933년과 1977년에 중수했다. 'ㄱ'자형의 이 건물은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뒤에 근래에 만든 종이 걸려 있다. 낙서전 마당에는 팽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서로를 이웃하며 자라고 있다. 수령은 400년 이상이며 최대 높이는 21m에 달한다. 이날 답사자들은 스님으로부터 망해사의 유례를 들은 뒤 스님의 허락을 얻어 원하는 이는 모두 종을 치는 이색 경험을 했다. 종소리는 에밀레종의 울림보다도 마음을 더 울리는 듯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의 대웅전.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는 입구에서부터 '낯섦'이 느껴진다. 우리나라 사찰은 건물 벽면이 갈색과 황토색이 많이 보이지만 동국사는 검은색을 띠면서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창문도 많이 달려 있으며 지붕에 별다른 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의 우치다 스님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광복 이후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선운사의 말사로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됐다. 대웅전 왼쪽에는 2015년 8월 세워진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종군 위안부로 짓밟힌 삶을 산 소녀가 조국을 향해 서서 처연하고 간절하게 바라보는 모습으로 제작됐다.

소녀상 옆에는 1992년 11월에 세워진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일본 조동종 종무총장 명의로 작성된 사죄문이다. 메이지유신 때부터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제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종교계가 책임을 통감하고 참회한다는 내용이다. 한 종교 종파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해 본다.


# 떠나기 전에

- 가장 먼 궁남지부터 탐방
- 부산으로 오는 코스 추천

이번 일정은 전북과 충남 일대에서 이뤄져 먼 곳부터 들러 부산에 가까워지는 코스로 짜는 것이 좋다. 먼저 충남 부여에 있는 궁남지를 찾은 뒤 인근 부여박물관을 둘러본다. 이어 군산으로 넘어가 점심을 먹은 뒤 가까운 동국사를 찾는다. 그다음으로는 만경강 너머에 위치한 김제로 넘어가 청운사 하소백련지와 망해사를 들른 뒤 마지막으로 전주의 덕진공원으로 이동하면 된다. 부산에서 오전 7시에 출발했으며 마지막 일정인 전주 덕진공원에서 오후 7시에 부산으로 떠났다.

군산에서는 꽃게장 맛집인 한주옥(063-445-6139)을 추천한다. 꽃게장 정식(2만2000원), 꽃게장 백반(1만7000원), 대하장 정식(1만7000원), 대하장 백반(1만2000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꽃게장보다 대하장이 특이했다. 대하를 3등분 해 나오는데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답사자 중 상당수가 꽃게장 또는 대하장을 사서 가져갈 정도다.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