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어두운 역할 주로 해
- 맑고 청량한 영화에 끌려
- 첫 주연 두렵기도 하지만
- 이야기 끌어가는 재미느껴"

많은 신인배우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신인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이수경을 꼽을 수 있다.

영화 '용순'에서 이수경은 학교 체육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 시골 여고생 용순의 섬세한 감정을 연기했다. 이용우 기자 wylee@kookje.co.kr

이수경은 2014년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주인공 일영(김고은)과 함께 자란 쓸모 있는 아이 쏭 역을 맡아 강렬한 첫인사를 건넸다. 이후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 강호경 역을 맡아 털털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응답하라 1988'에서 성노을(최성원)의 여자친구로 특별출연했다. 올해에는 영화 '특별시민'에서 3선 서울시장을 노리는 변종구(최민식)의 딸로 등장해 반항아의 모습으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범상치 않은 연기를 보여준 이수경이 지난 8일 개봉한 '용순'에서 학교 육상부 담당 체육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 시골 여고생 용순을 연기하며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쳤다. 최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대명컬처웨이브상 수상작인 '용순'은 시골에 사는 18세 여고생 용순(이수경)이 겪는 다양한 성장통을 그린 영화로, 올해 한국 다양성영화 중 가장 빛나는 수작이다.

관객 1만 명을 모은 '용순'에 이어 하반 개봉 예정인 정지우 감독의 '침묵'에서 다시 한번 최민식의 딸로 출연하는 이수경을 만나 '용순'과 '신인배우 이수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영화에서 어둡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만 보여줬다. 이번 '용순'은 일상적인 여고생 모습을 보여줘 반가웠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너무 좋았다. 그간 어둡고 센 역할을 했는데 '용순'은 밝고 청량한 느낌의 영화라 너무 출연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영화를 좋아해 이런 느낌의 한국영화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용순'이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정서를 가진 영화인 것 같다.

-'용순'은 최준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용순, 열여덟 번째 여름'을 장편으로 옮긴 영화다. 단편영화를 봤는가?

▶'용순' 촬영 전 단편영화를 봤다. 영화의 정서가 무척 좋았고, 최 감독님이 '용순'을 어떤 식으로 그려나갈지 파악할 수 있었다.

-열여덟 살 용순은 체육 선생님(박근록)과 연애한다. 그래서 하룻밤 풋사랑도 나누고 임신에 대해 걱정한다. 체육 선생님 집에서 옆에 누워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이 서정적이었다.

▶그 장면에 대해 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최 감독님은 학생과 선생의 관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좋지 않게 보일 수 있으니 순수한 눈빛으로 바라봤으면 하셨다. 용순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빠(최덕문)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는데, 체육 선생님은 그런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체육 선생님의 작은 칭찬이 용순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이후 용순의 아빠는 몽골인 새엄마를 들이고, 체육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최여진)과 혼담이 오간다. 용순이 영어 선생님과 치킨집에서 체육 선생님을 두고 언쟁을 벌이는 장면은 무척 재미있었다.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을 재미있다고 하시는데, 촬영할 때는 무척 진지했다. 용순 캐릭터가 멋있다고 느낀 부분이 많은데 체육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 몽골인 새엄마를 들인 아빠를 향해 원하는 바를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이 좋았다.

'용순'은 시골에 사는 18세 여고생 용순(이수경)이 겪게 되는 성장통을 그린 영화다. 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학창시절의 이수경은 어떤 학생이었나?

▶제가 예술고등학교에 다녀서 자유로운 편이었음에도 학교라는 것 자체가 어떤 시스템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뭔가 다르게 행동하고 싶고 일탈하고 싶었다. 정작 일탈이라는 것이 점심시간에 학교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오는 것이 다였지만.

-'배우 이수경'을 알린 영화는 '차이나타운'이었다. 당시 어떤 느낌이었나?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하다 보니 더 용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에 다른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연기의 부족함을 느껴 자신감이 무너지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눈치를 보게 됐다. 지금 '차이나타운' 이야기를 하면 부끄럽다.

-올해 개봉한 '특별시민'이나 '용순'을 보면 연기에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용순'은 처음 큰 역할을 맡은 영화라 책임감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재미를 느꼈다. 이후 정지우 감독님의 '침묵'에서 최민식 선배님의 딸로 출연하게 됐는데, 제 능력에 비해 좋은 역할이라 두렵기도 하다.

-'특별시민'에 이어 '침묵'에서 최민식 씨의 딸로 두 번째 출연한다. 최민식 씨가 '용순'을 보고 이야기한 것 있는가?

▶너무 감사하게 '용순' VIP 시사회 때 오셨다. 그리고 "너무 수고했다. 주인공이라고 다르게 생각한 것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작품과 같이 연기했다"고 했더니 칭찬해 주셨다. 최민식 선배님은 너무 높은 분이어서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특별시민'과 '침묵'에서 함께 연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특히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거나 사운드가 들어가지 않는 장면에서도 실제처럼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배우는 제가 선택한 길이고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원래 욕심을 부리지 않는데 유일하게 욕심이 생긴 것이 연기다. 지금도 연기를 못한다는 것이 탄로날까 봐 무서운 마음이 한구석에 있다. 저는 선택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맡은 역할을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