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삼아 떠나는 숨은 '천연기념물' 찾기

부산의 천연기념물

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
| 입력 : 2017-05-31 19:09:20
| 본지 18면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안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1호가 뭐냐고 묻는다면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정답은 1962년에 지정된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이다. 높이 5~7m의 측백나무 700그루가 척박한 절벽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현재 부산에는 식물 5점, 암석 1점, 철새도래지 1점 등 모두 7점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천연기념물이라는 말은 1800년 독일의 자연지리학자 훔볼트가 남아메리카 여행을 기술한 '신대륙의 열대지방기행'에서 처음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호령'에서 비롯돼 1962년 문화재보호법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천연기념물이라고 해서 거창하고 어려운 대상은 아니다. 가까이 도심에 또는 사람들로 붐비는 사찰의 한쪽 구석에 조용히 숨어 있다. 부산의 천연기념물은 대부분 나무다. 신록의 기운이 가득할 때 초록으로 물든 지역의 천연기념물을 찾아 가벼운 주말 나들이를 하면 좋을 듯하다.

■범어사 등나무 군락


	범어사 등나무 군락

범어사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범어사 내 '등나무 군락(제176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자 역시 이 중 한 명에 속한다. 범어사 입구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쪽에 이정표가 있다. 등나무 군락은 5.6㏊에 걸쳐 있는데 평소에는 왜 몰랐을까 의아하다. 사실 평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터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기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이정표를 따라 825m에 이르는 관찰로를 따라가다 보면 4개의 쉼터(휴, 미, 심, 선)를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등나무를 만날 수 있다.

사실 군락지라고 해 등나무가 한 곳에 몰려 있을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600여 그루가 곳곳에 퍼져 있다. 소나무나 팽나무에 착 달라붙어 뱀처럼 보이는 등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이곳에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등나무 껍질이 한지의 원료로 쓰여 범어사 스님들이 잘 보호해 살아남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수령은 100년을 넘기는 게 잘 없는데 베어 쓰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란다. 가장 굵은 것은 둘레 1.4m, 길이 15m에 이른다. 등나무가 지지하던 나무가 고사해 철제 구조물로 등나무를 받쳐둔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등나무는 5월 초 연보랏빛 꽃이 주렁주렁 매달릴 때 절경을 맛볼 수 있지만 더운 날씨에 그늘을 드리우는 등나무 군락에서 삶의 갈등을 해결할 묘안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전포동 구상반려암


	전포동 구상반려암

황령산 기슭에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전포동 구상반려암(제267호)'이 있다. 이 천연기념물은 나무는 아니지만 숲속에 자리 잡아 땀을 식히며 둘러볼 수 있다. 약 6000만 년 전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굳어져 반려암이 만들어졌다. 어두운 색을 띠는 반려암 위에 공 모양의 무늬가 보이는데 이러한 암석을 구상암이라고 한다. 구상암의 지름은 작게는 1㎝ 이하인 것부터 크게는 5~10㎝인 것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 모양의 무늬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구상반려암을 제대로 관찰하고 싶으면 미리 부산진구청(605-4065) 또는 관리자(809-3531, 010-2843-3531)에게 연락을 주는 것이 좋다.

구상반려암을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동의과학대 정보관과 운동장 사이 스탠드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300m가량 걸어 들어가면 철망에 둘러싸여 있는 구상반려암이 보인다. 동의과학대 후문에서 서면 쪽으로 300m 떨어진 동림개발 건물에서 골목을 따라 오르는 방법도 있다. 산행하다 동의과학대 쪽으로 가면 구상반려암 이정표가 보인다.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제311호)와 곰솔(제270호)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제311호)

수영사적공원(좌수영성지) 주차장에서 오른쪽 안용복 장군 사당 옆 숲으로 들어가다 깜짝 놀란다. 일부러 찾아왔는데도 막상 눈앞에 몸통 둘레가 8.5m에 이르는 초대형 푸조나무가 나타나니 절로 눈이 크게 뜨인다. 500살을 넘은 이 나무는 키가 18m에 이르고 가지는 동서로 23m, 남북으로 19m가량 펼쳐져 있다. 서낭당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지신목으로 불린다. 밑둥치 1m 정도의 높이에서 두 갈래로 크게 나뉘는데 북쪽 것을 할아버지, 남쪽 것을 할머니 나무라 하여 '노부부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푸조나무에서 30m가량 더 들어가면 곰솔(해송)을 만날 수 있다. 나이는 400살 정도로 둘레 4.50m, 높이 23.6m 규모다. 땅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까지의 길이가 7m에 이르며 껍질은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곰솔은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고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색인 데 반해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이라고도 부르며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바로 옆에 이보다 작은 곰솔이 한 그루 더 있다. 조선 시대 좌수영 시절부터 군사와 군선을 보호해주는 군신목으로 불렸다. 25의용단(시지정기념물 제12호)과 안용복 장군 사당, 수영성 남문, 수영민속예술관이 있는 수영사적공원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외 천연기념물은


	양정동 배롱나무(제168호)

부산시교육청에서 초읍으로 가는 도로에 접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공원(화지식육식당)에는 '양정동 배롱나무(제168호)'가 있다. 7~9월에 가면 붉은색 꽃을 볼 수 있다. 꽃이 피어있는 기간이 길어서 목백일홍(나무백일홍)이라고도 한다. 약 800년 전 고려 중기 안일호장을 지낸 동래 정씨 시조의 묘소 양옆에 한 그루씩 심은 것이 현재 원줄기는 죽고 주변의 가지들이 살아남아 묘지 동쪽에 4그루, 서쪽에 3그루가 자라고 있다. 화지공원 정문 오른쪽에 있는 경비실에 이야기하면 주차 및 관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구포동 당숲(제309호)

북구 구포동에는 500살 정도인 팽나무를 품은 '구포동 당숲(제309호)'이 있다. 1982년 문화재로 지정될 때는 팽나무 한 그루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2008년 주변의 소나무 두 그루와 당집 두 채도 함께 문화재로 지정됐다. 덕천역 2번 출구나 구포시장에서 경혜여고 방향으로 가면 이정표가 있다. 자동차로는 북구 팽나무로 30번길 8 가옥을 찾으면 된다. 이어 마을 경로당에서 나무를 관리하는 할아버지를 찾으면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팽나무는 높이 18m, 둘레 5m에 달해 위용을 자랑했지만 뿌리가 썩어 들어가 고사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