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 놓고 잠시 고민
- 원작소설 바탕 시나리오 탄탄해 선택
- 피아노 연주 장면 위해 두 달이나 연습
- 촬영현장선 무게 잡지 않고 까불어
- 연기하는 것 즐겁지만 항상 아쉬워
- 다음 작품은 백성 돌보는 착한 역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싱글즈' '좋아해줘' 등에서 부드러운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 김주혁이 지난 9일 개봉한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 '냉혈한'이 되어 관객과 만난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 김주혁은 경성 최고의 재력가 남도진 역을 맡아 차갑고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서스펜스 소설의 거장 빌 S. 밸린저의 소설 '이와 손톱'을 원작으로 한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해방 후 경성을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운전수 최승만(고수)과 모든 것이 완벽한 경성 최고의 재력가 남도진(김주혁)이 사체 없는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이는 추리 범죄 영화다. 남도진 역을 맡은 김주혁은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기 싫은 사이코패스 같은 악역을 연기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멋진 정장 차림에 표정을 알 수 없는 중절모를 쓴 남도진의 모습은 악역으로 돌아온 김주혁의 서늘한 연기를 상징한다. 쿨하면서도 친절한 배우 김주혁과 즐거운 인터뷰를 했다.

-강렬한 악역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1월 개봉한 '공조'에 이어 '나쁜 놈' 역을 연이어 맡았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어떤 점에 끌렸나?

▶우선 시나리오가 탄탄했다. 원작소설이 있어 짜임새가 있고, 남도진 캐릭터가 재미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악역이라는 부분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했다. 어쩌다보니 '공조'에 이어 두 편 연속 악역을 맡게 됐는데, 이번에는 대놓고 사람을 죽이니까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남도진을 어떤 인물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는가?

▶남도진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면 죄책감 없이 사람을 제거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사이코패스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경성 최고의 재력가답게 의상이 멋있다.

▶예전에는 의상팀을 괴롭혔다. 그런데 그 인물이 아니라 내가 멋있어지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에는 "이 인물이 이런 콘셉트다"라는 말만 하고 의상팀이 주는 대로 입는다. 이번에는 정장 차림이었는데, 옷감이 안 좋아서 까칠거렸다. 중절모자도 좀 컸다.(웃음)

-'공조'에 이어 화폐를 찍는 동판이 사건의 중심이 된다.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기자분들이 동판 이야기를 해서 깨닫게 됐다. 촬영은 '석조저택 살인사건'이 먼저였는데, 물론 우연이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정체불명의 운전수 최승만(고수)과 남도진(김주혁)이 사체 없는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이는 추리 범죄 영화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지난해 2월 촬영을 마쳤다. 후반 작업이 꽤 길었다.

▶영화가 어떻기에 개봉을 안 하나 싶었다. 영화를 보니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걱정보다는 괜찮았다.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나.

▶영화 자체보다는 제 연기에 대한 것이다. 제가 보기에는 별로였다. 항상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인데' 하는 부분이 있다. 이후 작품에서도 아쉬운 것은 항상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 작품을 다시 본 적이 없다. 두 번째 보면 발가벗겨진 느낌이고 민망해진다.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 신기하다.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저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과정과 살인 사건에 대한 법정 장면이 교차편집 된다. 추리영화다운 편집이 돋보였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법정 장면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영화 초반에 멜로드라마가 나오고 범죄 이야기가 중반부터 나오니까 이야기의 짜임새가 헐거울 것 같았다. 그래서 법정 장면을 중간마다 교차편집으로 넣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 어떻겠냐 해서 지금의 영화가 나왔다.

-이번에 피아노 연주 연습을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남도진의 피아노 연주 장면은 클럽에서 잠깐 나와 아쉬웠다.

▶피아노도 사고, 두 달이나 연습했다. 저도 그렇지만 저를 가르쳐준 분도 아쉬워할 것 같다. 피아노는 촬영 이후 건드리지도 않아서 먼지가 쌓여 있다.

-최승만 역의 고수 씨와 주로 호흡을 맞췄다. 두 분 다 낯가림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친해졌는가?

▶고수 씨와 중간 정도 친해진 상태다. 장난을 확 주고받기에는 진지한 친구다. 저의 경우 촬영현장에서 무척 까부는 스타일이다. 주연 배우가 촬영현장에서 무게를 잡으면 스태프도 처지는 것 같다.

-과거에는 로맨틱 코미디에 주로 출연했지만 최근에는 '비밀은 없다' '공조' '석조저택 살인사건' 등 연기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로코 외에 다른 장르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또 로코 했네요"라고 하는 말이 싫었다. 상대 배우도 항상 여배우였다. 그런데 '공조'에 이어 이번에는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제는 편안하다.

-요즘 연기가 재미있다고 했다. 재미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연기하고 있을 때, 그때가 재미있고 즐겁다. 제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연기의 방향성이 서는 것 같다. 최근 깨달은 것인데, 장르에 치우치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 장르영화라는 생각 때문에 감정을 과도하게 쓰거나 리액션에 임팩트를 많이 주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배우는 스스로 느끼는 대로 연기하면 되고, 감독이 앵글이나 음악, 편집 등으로 장르에 맞게 연출하면 되는 것 같다.

-악역을 두 편 연속으로 연기했다. 다음은 어떤 역할인가?

▶악역은 역시 매력이 있고 하면서도 재미있다. 언제 이렇게 나쁜 짓을 해보고, 나쁜 말을 하겠는가. 하면서도 짜릿함이 있다. 게다가 상대 배우 얼굴을 보면서 욕할 기회가 언제 있겠는가.(웃음) 다음 작품은 영화 '흥부'인데, 백성을 돌보는 착한 양반이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