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연필·지우개 등 준비물 간단
- 관찰해 그리다 보면 절로 집중

- '스투디오 바림'의 김바름 강사
- "식물은 미술 입문자에 좋은 소재
- 몰두하고 싶은 분들 많이 찾아"

사는 게 팍팍해지고 모든 일에 지쳐갈 때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절실해진다. 물론 가만히 있다고 해서 복잡한 일이나 고민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번잡한 머릿속을 평온하게 만들려면 조용히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이 힐링의 좋은 방법이 된다.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취미 중 하나로 요즘 관심을 끄는 것이 보타니컬 아트다.
보타니컬 아트는 식물 세밀화라고 하는데 처음엔 식물도감의 삽화를 그리기 위해 시작된 회화 분야다. 통칭해서 보타니컬 아트라고 하지만 보타니컬 일러스트레이션과 보타니컬 아트, 두 가지로 나뉜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식물도감용으로 식물의 한살이를 그림 하나로 알 수 있게 한다. 잎과 줄기, 꽃뿐 아니라 땅속의 뿌리까지 다 그리고 열매나 씨를 옆에 같이 그려둔다. 아트는 이와는 조금 다르게 그 식물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아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하는 측면이 강조된다.

스투디오 바림의 보타니컬 아트 강좌에서 김바름(왼쪽) 강사가 수강생의 질문에 귀기울이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보타니컬 아트반을 개설한 부산 금정구의 스투디오 바림에서 보타니컬 아트의 매력에 관해 들었다. 김바름 강사는 "식물을 상세히 관찰해 그리다 보면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이처럼 조용하게 몰두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분들이 보타니컬 아트를 배우러 많이 온다"고 했다. 또 다른 부류는 미술을 전혀 접해보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김 강사는 "뭐든지 그려보고 싶다고 오시는 분도 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 풍경처럼 그릴 게 너무 많지도 않아 그림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좋은 주제"라고도 했다. 풍경은 소위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하는 화면 구성에 대한 고민이 큰데, 보타니컬 아트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서 해나가기가 편한 면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보타니컬 아트를 배우려면 준비물은 색연필과 연필, 지우개 정도다. 스투디오 바림에서는 색연필을 제공하지만, 보통은 72색 수성 색연필을 구매하는 것을 권한다. 초보자들이 시작할 때는 색연필이 가장 좋다. 붓은 필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가 어렵지만 색연필은 아무래도 손쉽다. 세밀한 부분을 색칠하는 데도 걸맞다. 색연필 중에서는 색칠한 뒤 물을 묻힌 붓으로 쓸어주면 수채화처럼 색이 퍼져 나오게 만들어진 제품도 있어 수채화 느낌을 낼 수 있다. 유성 색연필도 있지만 초보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보타니컬 아트 초보자에겐 수성 색연필이 적합하다. 보통 72색이면 충분하며 연필깎이와 사포로 연필심을 깎아 사용한다.

기초과정은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수업해 15주 정도면 완성된다. 제일 기본은 연필로 손을 푸는 것부터 시작된다. 선 긋기, 원을 그린 뒤 음영을 주면서 입체감 주기 등으로 스케치의 기본을 익히고 나면 바로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 시작은 방울토마토이며 도토리, 꽃잎 순으로 넘어간다. 김 강사는 "방울토마토를 그냥 짙은 빨간색이라고만 생각한 이들이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등을 번갈아 쓰면서 '이렇게 다양한 색을 겹겹이 깔아야 진짜 토마토처럼 보이는구나'라며 놀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한 달씩 걸려가며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 큰 방울토마토 한 알을 색연필로 구현하는 보타니컬 아트의 매력에 제대로 발을 들인 셈이다. 종이는 제도지를 가장 많이 쓴다. 표면이 살짝 코팅돼 있어 마치 다림질된 듯한 느낌을 준다. 보타니컬 아트는 표면이 매끄러워야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스케치용으로는 HB면 충분하다. 연필의 H는 숫자가 커질수록 연해지고 B는 숫자가 커질수록 진해진다. 'Hard'와 'Black'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연필심의 강도가 강해지면 색이 연해지고 강도가 약해지면 색은 진해진다. 색연필은 최대한 뾰족하게 깎아서 쓴다. 연필깎이로 깎은 뒤 세밀하게 표현할 때는 사포로 갈아내 쓴다.

제도지를 한 묶음으로 만든 제도패드와 연필, 지우개, 스케치를 옮겨 그릴 트레이싱 페이퍼, 지우개 가루를 쓸어낼 제도비.

이날 수업에 참여한 정성희(30·금정구 장전동) 씨는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수업을 듣게 됐다고 했다. "보타니컬 아트를 배우면 식물뿐 아니라 다양한 그림을 그려서 색칠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 두 달 걸려서 패랭이꽃을 완성했는데 정말 뿌듯했다"며 만족해했다. 그러면서 "최종 목표는 여행지의 풍경을 그려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요즘은 이국적인 도시의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을 연습 중"이라며 즐거워했다. 김 강사는 "보타니컬 아트는 소재로 삼는 식물 자체가 아주 매력적이다. 이끼부터 시작해서 나무, 과일, 채소 등 형태나 색상이 대단히 다양해서 사람들이 보타니컬 아트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