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강변 등 공원 내 자리잡은
- 고대흔적 간직한 충주박물관
-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
- 가을 축제장될 세계무술박물관
- 라바랜드·수석공원 등 조성 잘돼

부산 사람에게 충북 충주는 그리 선호하는 관광지는 아니다. 왕복에만 6~7시간이 걸리는 데다 기껏 떠올리는 곳은 수안보 온천, 충주호, 탄금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주를 직접 대하자 이런 생각이 무지가 빚어낸 착각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느긋하게 둘러본 충주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줬고 숨은 비경은 사색의 시간을 안겨줬다.

충주 세계술문화박물관 오크통관에 전시된 작품 '천사의 몫'. 4개의 오크통에는 당해(0년), 12년, 17년, 21년간 숙성된 위스키(왼쪽부터)가 담겨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색깔은 진해지고 양은 줄어든다. 줄어든 1~2%가 '천사의 몫'이다.

불과 21만여 명이 사는 충주에는 이름난 박물관 세 곳이 고대와 현대, 시·공간과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조화를 이룬다. 고대의 흔적을 간직한 충주박물관, 세계의 술문화를 소개하는 세계술문화박물관, 무술의 세계를 보여주는 세계무술박물관이 주인공이다. 놀란 것은 이들 박물관이 잘 가꿔진 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최대한 살려 조성된 탓에 인위적인 색채가 없었다. 우리가 알던 수안보, 탄금대, 충주호는 시작에 불과했다.

세계무술공원 내 어린이 놀이터

지난 휴일 아침 일찍 서둘렀다. 단풍놀이와 등산하기 좋은 가을에 일요일까지 겹쳤지만 우려했던 교통대란은 없었다. 내비게이션으로 충주박물관을 검색한다.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술을 뜻하는 '리쿼'와 전시관을 뜻하는 '리움'의 합성어)'과 중앙탑공원, 충주박물관이 한데 모여 있어 아무 곳이나 찍어도 된다. 목적지 초입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관광지도를 챙겨 나와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댔다. 무료에 번잡하지 않아 부산의 공원과 대조를 이룬다. 애초 충주박물관부터 방문하려 했으나 주차장에서 가까운 리쿼리움을 먼저 들렀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곳이기도 하다.

세계무술박물관 2층 택견전시관

입구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웬 증류기가 달려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시바스 리갈 제조에 실제 사용했던 1·2차 증류기를 분해해 배로 싣고 와 설치한 것이다. 매표소(입장료 5000원, 시음 1잔 추가 8000원, 시음 2잔 추가 1만 원)를 거쳐 맞은편 지하 1층 전시관 입구로 가면 세계 각국에서 온 오크통 46개가 삼각형의 탑 모양을 이루는데 입구가 모자를 쓴 듯하다. 연면적 1000㎡의 건물(지하 1층, 지상 2층)에는 와인관·맥주관·동양주관·오크통관·증류주관·위스키숙성관 등 6개 전시실에 5000여 점의 전시물이 있다. '마스터 블랜더(위스키 제조·보관·유지 전문가)' 중 한 명인 이종기 씨와 그의 부인 김종애 씨가 공동관장이다. 사재를 털어 2005년 5월 1일 개관했으나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단다.

전시실에는 고대 술 제조·보관 용기부터 나라별 유명 와인·맥주·위스키 등의 역사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옛 와인 저장 용기 밑부분이 뾰족하죠? 제조과정에서 생긴 주석산이나 효모찌꺼기 등 침전물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입니다"라는 해설사의 설명이 귀에 들려온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

'천사의 몫'이라는 제목의 전시물이 눈길을 끌었다. 숙성 기간이 다른 위스키를 담은 4개의 오크통이 있었다. 왼쪽부터 0년(당해), 12년, 17년, 21년 등 숙성 햇수별로 위스키를 담아 놓았는데 조명을 받아 형형색색 아름답다. 구멍을 통해 향을 맡을 수 있는데 오크통을 가볍게 두드리면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단다. 위스키가 숙성되면서 증발하는 1~2%가 바로 '엔젤스 셰어(천사의 몫)'다. 주마간산 격으로 훑기보다는 찬찬히 둘러보고 알찬 정보가 많은 해설사의 설명을 듣기를 권한다. 코스 마지막인 2층에 시음장이 마련돼 있다.

리쿼리움이 들어선 일대는 남한강변을 포함한 중앙탑공원이다. 풍류문화관을 지나 노랗게 변해가는 잔디와 고목 사이에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바로 국보 제6호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다. 언덕 위에 난간을 둘렀다. 통일신라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홍수 등으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토단을 조성할 정도로 상당한 인력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탑을 빙 둘러 구경하고 나면 자연스레 발길이 충주박물관으로 향한다. 불교 미술품과 민속품이 전시된 1관 건물과 충주의 역사를 주로 다룬 2관 건물이 있으며 야외전시실은 중원문화권 내에 흩어져 있던 유물을 모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경관조명이 설치된 탄금대교

차를 타고 탄금대 쪽으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충주세계무술공원이 나타난다. 1998년부터 가을마다 열리는 충주세계무술축제의 행사장으로 택견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무술 관계자들이 모여 '세계무술과 문화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연다. 공원에는 아름다운 남한강변의 제방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개설돼 있고 공원 내에는 세계무술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은 그동안 열렸던 충주세계무술축제의 성과물을 품고 있는데 택견을 비롯해 세계 전통무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현대 택견의 아버지'라 불리는 신한승(1928~1987) 선생을 기리는 작품이 전시관 한쪽에 마련돼 있는데 신 선생이 작품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5층 중 1층은 풍물관, 2~3층은 전시관, 4~5층은 전망대다. 하지만 전망대 출입문은 잠겨 있어 아쉬웠다. 공원에는 박물관 외에도 어린이 놀이시설 라바랜드, 야외공연장, 수석공원, 돌 미로원 등의 시설이 있다. 수백 년 된 고목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한 어린이 놀이터는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 우륵이 가야금 타고, 신립 장군 열두 번 오르내린 탄금대

탄금대에서 본 야경

충주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탄금대다. 기암절벽을 휘감아 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무술공원에서 탄금대교 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만날 수 있다. 산책하듯 주변을 둘러보면 울창한 송림을 볼 수 있다.

탄금대란 이름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곳이란 뜻이다.

1400년 전 멸망한 가야국 사람인 우륵은 조국이 멸망한 후 강제로 이곳으로 이주당했다. 탄금대 절벽의 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탔고 그 오묘한 음률에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배수진을 쳤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투신자살해 패장의 불명예를 쓴 곳으로 이름나 있다.

소나무 숲 사이 탄금정에서 북쪽으로 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열두대라는 층암절벽이 기다린다. 왜군과의 격전 당시 신립 장군이 12번이나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히고 병사들을 독려한 곳이다. 우륵과 신립 장군의 처지에 공감하며 슬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우륵처럼 바위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사색하고 싶어진다. 특히 석양이 질 무렵 한 폭의 그림으로 변한 남한강과 야간 경관조명으로 빛나는 탄금대교를 보면 무념무상에 빠지게 된다.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