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바람이 스친다. 끝 간 데 없던 더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바람은 차게 느껴진다. 이 바람에 단풍이 붉게 물든다.

설악산 만경대의 단풍 인파처럼 가을에 쉽게 떠올리는 것이 단풍이지만 이에 맞서 인기 경쟁을 벌이는 꽃이 있다. 바로 '이 꽃이 피고 나면 더 피는 꽃이 없다'는 국화다.

서리와 추위에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를 빗대 '오상고절 상풍고절'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 이정보(1693~1766)는 시조에서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항 제1부두 일원에서 오는 29일부터 열흘간 마산가고파국화축제가 열린다. 행사장 가운데 마련된 만날재를 중심으로 노란 국화꽃이 만발해 있다.

전국 곳곳에서 국화를 테마로 한 축제를 개최하는 등 국화 향이 은은하다. 경남 합천의 '국화향기전'(~11월 6일), 경북 포항의 '국화축제'(~오는 31일), 전남 함평의 '2016 대한민국 국향대전'(~11월 6일), 대전의 '2016 대청호반 국화전시회'(~오는 30일), 충북 청주시 '청남대 국화축제'(~11월 13일) 등은 이미 막을 올렸다. 또 충남의 '홍성사랑 국화축제&농업축전'(28일~11월 2일), 전남 영암의 '2016 기(氣)찬 월출산 국화축제'(27일~11월 13일)도 개막을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국화축제를 화려함으로 압도하는 전국 대표 국화축제가 창원에서 열린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로 선정된 경남 마산가고파국화축제(오는 29일~11월 7일)이다.

	가고파국화축제 행사장에 만들어진 각종 조형물. 사진은 다층석탑.

마산 가고파축제는 '국화가 전하는 가을편지'라는 슬로건으로 마산항 제1부두 일대 3만3000㎡(약1만1000평)에서 열린다. 미리 찾은 현장은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포크레인이 코스를 옮겨 다니고 국화를 조형물에 설치하는 작업자의 손길이 바쁘다. 행사장 입구에는 높이 7m, 폭 10m의 열기구가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광역시로의 전환을 꿈꾸는 창원시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열기구를 통과하면 국화 언덕으로 만든 '만날재'가 나온다.

만날재는 창원의 명산인 무학산의 고개를 본떠 만든 것으로, 서로 그리워하던 모녀가 상봉하는 모습이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재 너머 내서읍의 부잣집으로 시집간 딸이 시집살이가 힘들어 재에 올랐는데 때마침 딸이 보고 싶었던 친정엄마도 재에 올랐다가 만났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주변에 마련된 황소와 초가집, 우물, 항아리 같은 소품을 보면 고향의 정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꽃으로 장식된 20m 길이의 터널이 나온다. '사랑의 힐링거리'라 명명된 이 터널은 은은한 국화향기를 맡으며 가을의 서정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남녀가 얼굴을 들이밀면 턱시도와 국화 드레스 차림의 성장으로 변신할 수 있는 포토존에서 추억도 쌓을 수 있다.

	허수아비 가족.

키즈존에서는 꼬마버스 타요와 라니, 로봇 태권 브이, 국화그네, 호박마차, 알라딘성, 꽃마차 등이 자리했다. 꼬마버스 타요와 라니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따왔다. 또 로봇 태권 브이는 어린이에게는 상상력을, 어른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준다. 기계산업도시 창원의 이미지도 담겨 있다.

높이 8m, 폭 5.8m의 허수아비 가족(아버지와 남매)은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실제 크기의 1/4로 축소한 거북선뿐만 아니라 마창대교와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지도 축소판이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행사장 한쪽에는 국화왕국이 조성된다. 현장에서 만난 창원시농업기술센터 김성태 도시화훼담당은 "창원시는 국내 최초로 국화를 상업 재배한 곳으로 국화 재배기술이 다른 지자체보다 뛰어나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사랑의 힐링거리.

가고파국화축제에서는 수많은 국화 송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다륜대작'이 유명하다. 2007년 축제 때 처음 등장해 702송이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1515송이가 동시에 개화하기도 했다. 28일 오후 6시 멀티미디어 불꽃 쇼 등으로 꾸며지는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축제 기간에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 창원, 여기도 둘러보자

- 사랑 이어준다는 명물 연륙교, 콰이강의 다리 쏙 빼닮았네
- 저도 잇는 신·구 다리 볼거리

- 교실 갤러리 꾸민 구복예술촌

- 국내 제1호 폐교 문화공간 

	마산합포구 구산면 동산에서 저도 연륙교를 바라본 모습. 오른쪽 '콰이강의 다리'는 공사를 거쳐 올 연말께 투명 유리다리로 변신한다.

국화꽃 향기에 취한 채 바다를 품은 저도 해안으로 눈을 돌렸다. 창원의 명물인 저도 연륙교(콰이강의 다리)와 저도로 가는 길에 있는 구복예술관은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연륙교 가는 길목에서 구복예술촌을 찾았다. 이곳은 1997년 폐교를 수리해 만들었다. 국내 제1호 폐교 문화공간이다. 교실은 미술관으로, 운동기구실은 세미나실로, 숙직실은 사무실로 변했다. 윤환수(67·한국서각협회 고문) 촌장은 "우연히 이 지역을 찾았다가 분교가 폐교되면서 이곳을 활용해 문화창작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며 "IMF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20년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촌 앞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어 낚시하기도 좋고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제격이다. 5~10월에 작가 6명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전시회를 개최하며 초대작가전도 열린다. 천연염색, 솟대 만들기, 탁본(판화) 만들기 등 체험행사도 인기다. 이달에는 27~31일 레지던스 작가 합동 발표전이, 11월 4일부터는 레지던스 작가 개인전이 열린다. 갤러리에는 윤 촌장의 서각 작품이 항상 전시돼 있다.

길을 이어가면 마산합포구 구산면 반동리와 저도를 잇는 두 개의 다리를 만난다. 하나는 길이 170m, 폭 3m의 붉은색 철제 구조물로 배 타고 육지를 오가던 저도 주민 20가구가 1987년 당시로는 큰돈인 2000만 원을 모아 경운기라도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해 만들어진 구 연륙교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해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어 난간에는 수백 개의 자물쇠가 달렸다. 하지만 지난 3월 시작한 보수보강 공사와 지난 8월부터 다리 중간부에 길이 80m, 폭 1.2m의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낸 뒤 강화유리를 까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올 연말까지는 아쉬움을 삼켜야 한다.

콰이강의 다리와 나란히 있는 왕복 2차로의 새 연륙교는 2004년에 개통됐다.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지 못한 대신 새 연륙교의 야경을 보며 사랑을 속삭여 보는 건 어떨까. 이를 위해 창원시는 지난 4월 LED 시설을 설치해 화려한 무지갯빛을 연출하고 있다.

저도 하포마을로 가면 해안을 보며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비치로드가 열린다. 장거리(완주) 코스는 용두산(202m)을 돌아 나오며 2시간 50분이 걸린다. 단거리 코스는 1, 2 전망대를 거치는 1시간 20분짜리 코스다. 사색에는 장거리 코스를, 가족 단위 나들이객에게는 단거리 코스를 추천한다. 인근에 드라마 '김수로'의 촬영지로 유명한 명주마을의 해양 드라마 세트장도 들러볼 만하다. 9947㎡ 부지에 가야시대 야철장, 선착장, 저잣거리, 무역선, 각종 무기류, 생활용품 등이 전시돼 있다.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