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테일한 요구에 소리 질러…내 연기로 노인복지 나아지면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보람"

'죽여주다'는 사전적 의미로 '몹시 고통을 당하여 못 견디게 하다'와 '몹시 만족스럽거나 흡족하게 하다'라는 정반대의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에 초청된 '죽여주는 여자'(개봉 6일)의 '죽여주는'은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의미하며, 그 여자를 시크하면서도 쿨한 여배우의 대명사인 윤여정이 연기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소위 '박카스 할머니' 소영 역을 맡은 윤여정. CGV 아트하우스 제공

'죽여주는 여자'로 지난 8월 제20회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서울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소위 '박카스 할머니' 소영 역을 맡았다. 소영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인다. 이후 사는 게 힘든 노인들의 부탁이 이어진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윤여정은 "빈곤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려 죽음을 생각하는 노인들이 있다. 우리와 같은 영화들로 노인 복지가 점차 더 나아졌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보람이다"고 말했다. 올해로 연기 인생 50년을 맞은 배우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이다.


-소영 역은 노인들을 상대로 성 서비스도 해야 하고, 직접 노인을 죽여야 하는 인물이라 선뜻 출연을 결정하기 힘들었겠다.

▶이런 얘기는 터부시하는데 이재용 감독이 건드렸다. 이 감독과는 '여배우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에서 작업한 적이 있어 믿음이 있었다. 처음에는 노인 성매매를 다룬 영화로 알았다. 이 영화를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곱게 늙어야지 추접스럽게 왜 그러냐"며 말렸다. 그런데 VIP 시사 때 영화를 보고는 "잘 만들었다. 가치 있는 일을 했으니까 인터뷰 열심히 하고, 이 감독 응원하라"고 하더라. 그 말이 큰 힘이 됐다.

-노인에게 성 서비스를 해주는 장면이 있다. 역시 쉽지 않았겠다.

▶이 감독이 그 장면을 그렇게 디테일하게 요구할 줄 몰랐다. 촬영 때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고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세 번째 테이크까지 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다. 이 감독은 세상에 태어나서 여자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실제로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한 느낌은 어떤가?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뉴스로 봐서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끔찍한 세상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진다. 이만큼 애쓰고 살았는데 더 힘든 세상을 알아서 뭐하나 싶고, 안다고 어떤 정부 정책에 도움을 주는 그런 위인도 아니라서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촬영하면서 우울증이 왔다. 그 할머니들도 소중한 딸로 태어났을 텐데, 거기까지 내몰릴 때는 할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 아닌가. 나는 연기라는 기술이 있어서 연기자로 축복스럽게도 이 일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있다.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 받아들일까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 출신의 의사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말기암 음대교수가 한 학생의 레슨을 하면서 행복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가장 소중한 일을 하면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인 것이다.

-젊은 세대들과 '통'하는 배우다. 영화에서는 일흔의 나이에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무슨 다보탑인가 독보적이게…. 아직 활동하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따로 노력하는 것은 없다. 환갑 넘으면서부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겠다고 했다. 나를 웃겨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