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다. 이번엔 스마트 패드가 화근이었다. 눈에 보이기만 하면 내놓으라는 통에 꼭꼭 숨겨두었던 걸 둘째가 어떻게 알고는 찾아서 들고 온 것이다. 어린이집 차량이 오기까지 15분 정도 남은 시간이었고, 기자 역시 이런저런 준비로 한창 바쁠 때라 나가기 전까지만 보라고 했다.
하지만 세 살짜리와의 약속이 칼같이 지켜질 것이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뽀로로에 빠진 아이는 시간이 다 되었지만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급기야 자기는 혼자 집에 있겠다고 했다. 창밖을 보니 어린이집 차량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를 들쳐 안고 현관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걸어가겠다고 떼를 썼고, 그래서 내려놓았더니 엄마가 세게 안아 팔이 아프다고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큰아이가 잡아놓았던 엘리베이터는 벌써 떠났고, 기자는 결국 폭발했다.

입이 튀어나올 대로 나온 둘째는 결국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선생님 품에 안겨 어린이집으로 떠났다. 큰아이까지 유치원 차량에 태워 보내고 한숨 돌리고 나니 그때야 후회가 밀려왔다. '애당초 못 보게 했으면 조금 울다 말았을 텐데' '내가 더 참고 달래 볼걸' 등등 미안한 마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런 일이 어쩌다 한 번씩 벌어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2, 3일에 한 번씩 반복된다. 좋은 엄마는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라지만 전쟁 같은 아침 시간에 좋은 워킹맘은 없다. '빨리빨리'라는 말을 거짓말 좀 보태 100번은 해야 시간 맞춰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큰애를 크게 혼낸 적이 있다. 전날 밤부터 유치원에 가져갈 딱지를 미리 챙기라고 일렀건만 미루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다 말고 딱지를 챙기러 가겠다고 한 것이다. 화가 치민 기자는 아침부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결국 아이는 울면서 유치원에 갔다. 그날 너무 마음이 안 좋아 '화 많이 내서 미안해'라며 편지 한 장을 써두고 출근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내 몸 피곤한 것도 힘든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드는 미안한 마음 역시 견디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전날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다음 날 아이 유치원 준비물을 잊어버리는 건 예사다. 오죽했으면 선생님이 "가정통신문을 하나 더 보낼까요"라고 에둘러 말했을까. 어린이집에서 간식 파티하는 날 다른 아이들은 엄마표 간식을 잔뜩 들고 갈 때 우리 아이는 떡이나 과일로 대충 때운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내가 데려갈 수 없는 탓에 다음에 하자고 말하는 것도 미안하긴 마찬가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되었을 텐데 당시엔 피곤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넘어가곤 늘 뒤늦게 후회한다.

몇 달 전 아는 분과 워킹맘의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신의 부인도 젊었을 때부터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장성한 자녀에게 어릴 때는 늘 미안해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나는 지금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엄마가 없어서 아이가 힘든 기간보다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기간이 훨씬 길 테니 잘 버텨보라고 기자에게 조언했다.

딱지 사건으로 아침부터 고함지른 것이 미안해 사과 편지 써놓고 나온 날, 기자가 퇴근하자마자 큰애가 꼬깃꼬깃 접은 A4용지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펼쳐보니 편지였다. '엄마 나도 더 잘할게요'.

이제 막 글자 쓰기를 시작한 아들은 열 자 남짓한 이 한 줄을 쓰느라 두 배는 더 쓰고 지웠던 것 같다. 삐뚤삐뚤한 데다 글자 쓰는 순서와 맞춤법도 틀렸지만, 아들이 이 편지를 쓰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싶어 가슴이 저몄다. 모자란 엄마는 이렇게 또 아이에게 하나를 배워간다.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