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있어 믿음과 신뢰는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사랑해왔다고 해도 믿음과 신뢰가 흔들리면 그 사랑은 모래성이 될 수 있다. 한 사건 때문에 45년의 사랑이 흔들리게 되는 과정을 그린 '45년 후'는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45년 결혼기념일 파티를 1주일 앞둔 케이트와 제프 부부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편지에는 스위스 빙하의 갈라진 틈에서 시신이 발견됐는데, 그 시신이 제프가 결혼 전에 만났던 애인인 카티야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받은 제프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흔들리고, 45년을 살아온 두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는 결혼기념일 파티를 1주일 앞두고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듯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면서 부부 사이에 조금씩 일어나는 균열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정의 파동부터 커다란 감정의 폭풍이 일어나는 1주일을 담은 '45년 후'는 노부부의 사랑이 우아하지만 아픈 시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제프는 지난 45년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살았을지 모른다. 편지 한 통에 감정의 떨림이 크게 느껴지니 말이다. 처음에는 잠시 추억에 잠겼거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카티야를 생각하는 제프의 마음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제프가 다락방 가방에 카티야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관하고 있고, 그녀의 슬라이드를 가끔 봐왔기 때문이다. 급기야 케이트는 제프와 카티야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비밀까지 알게 된다. 케이트에게 부부 생활을 한 45년의 세월은 한 순간에 허무해진다. 결혼기념일 파티에서 주변 사람들 때문에 행복한 척 했지만 마지막 엔딩 커트로 잡힌 케이트의 무표정한 얼굴은 모든 것을 말한다.

케이트와 제프를 연기한 샬롯 램플링과 톰 커트니의 연기는 노부부의 섬세하고 깊은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이례적으로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가 한 작품의 남녀 배우에게 주연상을 준 이유를 알겠다. 개봉 5일.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