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쥐떼 쫓아달라 부탁 받고
- 산골마을 찾은 피리악사 役
- 약속 깬 사람들과 갈등 속
- 다양한 인간 군상 보여줘

"삐리리리~." 류승룡이 피리를 불면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마음이 움직이다. 그는 독일의 민간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 '손님'(9일 개봉)에서 아들과 함께 외부와 고립된 마을을 찾은 악사 우룡 역을 맡아 오묘한 피리 연주 솜씨를 보여준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명량' 등 천만 영화 세 편에 출연한 류승룡이 이번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극장을 찾게 할 수 있을까? 지난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흥행은 부담을 가진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흥행을 좇는 순간 본질에서 어긋나게 된다. 늘 하던 대로 현장에서 성실히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천만 영화는 잊은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류승룡을 비롯해 충무로의 신데렐라 천우희와 연기파 배우 이성민 등이 출연하는 '손님'은 6·25 전쟁 직후 산골 마을로 들어선 악사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쥐 떼로 고통받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마을에서 쥐 떼를 사라지게 해주고 돈을 받기로 했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촌장 중심으로 살아가는 외딴 마을을 찾은 손님이라는 설정이 잘 조화를 이룬다. "'손님'의 메시지가 좋았다. 약속을 지키자는 것 외에 다양한 인간의 군상이 드러난다. 진실을 숨기려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변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나를 움직였다."

영화 속의 고립된 마을을 담기 위해 류승룡은 지난해 여름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에서 땀을 흘렸다. "마을의 오픈 세트가 있던 곳은 '웰컴 투 동막골'을 촬영했던 곳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밀도 있게 작품을 하는 것이 아주 좋았다"고 1년 전을 떠올렸다. 그는 도시생활을 잠시 뒤로 하고 산속에 묻혀 지내며 시간이 나면 계곡에서 물고기도 잡으며 이른바 '나는 자연인이다'의 삶을 살았다.

'손님'을 통해 류승룡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대역과 연기해야 했다. 먼저 처음으로 부성애를 연기했다. 그는 "내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7번방의 선물' 때는 딸 역인 갈소원 양에게 무조건 잘 해줬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역의 구승현 군이 진짜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안 하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혼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상대역은 바로 쥐다. 영화에서는 득시글거리는 쥐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이에 대해 류승룡은 "나는 쥐들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이 없는데, 이성민 선배님이나 이준 씨는 상상으로 공격당하는 연기를 해야 해 어려웠을 것이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영화 속에는 실제 쥐와 CG로 만든 쥐, 모형 쥐가 다양하게 사용됐다.

	영화 '손님'의 한 장면.

'손님'에서 류승룡은 다리를 저는 아버지로 나온다. 그는 "극 중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장치이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식만을 생각한다는 부성애를 부각한다. 후반부에 피리를 불면서 뒤뚱거리는 것을 보면 묘한 운율이 생기면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촬영 내내 다리를 저는 연기를 하다 보면 어떤 배우는 골반이나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는 달랐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친누나가 다리를 절었기 때문이다. 류승룡은 "누나가 15년간 절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작 3개월간 한쪽 다리를 절었는데 신체의 절반에 다른 반응이 오더라. 그래도 누나 생각에 전혀 힘든 줄 모르고 촬영했다"고 밝혔다.

피리 소리로 홀리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누구냐는 질문에 바로 "관객"이라고 답하는 류승룡. 항상 성실하게 연기하는 그의 몸짓에 관객은 홀릴 준비가 됐다.


# 악사 되기위해 300시간 삐리리~

	영화 '손님'에서 류승룡이 연주한 피리 연주곡 악보.

류승룡은 새 영화를 할 때마다 다양한 언어를 배워야 했다. '최종병기 활'에서는 희귀어 만주어를,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스페인어와 불어, 아프리카어를, '명량'에서는 왜군으로 등장해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이번 '손님'에서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권병호 피리전문가의 개인지도를 비롯해 100일간 3시간씩 맹연습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영화에 등장하는 세 곡의 피리 연주곡을 모두 외워 악보 없이 직접 불었다. 류승룡은 "피리 부는 사나이인데 대역을 쓰는 게 자존심 상했고, 관객을 극에 더욱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피리를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권 선생님께 촬영 전에 두 번 정도 개인지도를 받고, 동영상으로 찍어주신 것과 녹음한 것을 보고 들으면서 연습했다. 난타를 해서 박자감은 있고 기타나 피아노는 조금 건드려보긴 했는데 관악기는 처음 연주해봤다"고 덧붙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리는 아일랜드 피리라 '도'가 없는데, 그는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그런데 익히다 보니 매우 좋았고 그 소리에 매료됐다"고 전했다.

김광태 감독은 "촬영장에서도 피리를 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배우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촬영에 들어갔을 때 만난 그는 상상했던 피리 부는 악사의 모습과 100% 일치했다"면서 "영화 속 피리 음악은 연출로서 크게 만족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