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정서적으로 불안한 역할
- "한번도 못 본 얼굴 보고싶다"
- 이해영 감독의 주문에
- 촬영 후 휘청거릴 정도로
- 온몸에 힘줘 분노 연기

박보영을 보면 명랑만화에 등장하는 소녀 같은 느낌이 든다. 항상 웃음 띤 얼굴로 겸손함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을 대하는 그녀는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7년 전 '과속스캔들' 때 얻은 '국민 여동생'이라는 애칭이 여전히 어울리는 배우이기도 하다.

박보영이 18일 개봉하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경성학교'는 1938년 일제강점기 당시 폐병을 앓던 주란이 외부와 단절된 기숙학교에 전학온 후 한 명씩 사라지는 학생들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박보영은 처음에는 병약하지만 나중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주란을 연기한다.

지난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보영을 만났다.


-KBS2 '1박2일'에서 '원조 국민 여동생'이라 할 수 있는 문근영과 출연한 게 화제였다. 걸스데이의 민아와는 자매처럼 닮아 또 화제였다.

▶문근영 언니를 처음 만났다.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언니는 쉴 때 뭐해요?"와 같은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민아 씨와는 이전부터 닮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니 귀엽고 착했다.

-'경성학교'에서는 정서적으로 극심한 변화를 겪는 주란을 연기했다. 감정 연기가 힘들었겠다.

▶주란은 기숙학교에서 사건을 겪으면서 점점 변하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무척 고민했다. 감정의 폭을 더 크게 하려고 했는데, 막상 연기하면서 '내가 표현할 감정 폭이 넓고 깊진 않구나'라며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해영 감독님과 주란이가 겪는 감정의 변화 포인트를 어디 지점에서 둘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연기하기에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영화 중반 주란을 괴롭히던 친구를 분노에 차 들어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 감독님이 "한 번도 못 본 너의 얼굴을 보고 싶어"라고 해서 고민했다. 숨을 참고 온몸에 힘을 줘야 얼굴에 힘줄도 서고 그러는데, 나중에는 죽을 것 같았다. 실제로 '컷' 소리가 나는 순간 핑 돌면서 휘청거려서 스태프들이 괜찮으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감독님은 다음에 교장 선생님을 들 때는 더 극한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더라.

	영화 '경성학교' 스틸컷.

-영화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해 정서적으로 억눌린 듯한 느낌이 있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에 관해 배우면서 너무 화가 나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위안부 할머님들의 이야기에 마음 아팠는데, 친구들과 함께 할머님들이 그리신 그림으로 제작한 파우치나 팔찌 같은 액세서리를 사서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다.

-기숙학교 부근의 숲 속 저수지에 빠져 눈을 뜨는 장면은 판타지 같은 느낌이었다.

▶통유리로 돼 있는 저수조에서 촬영했다. 물속에서 눈 뜨는 연기를 처음 해봤는데, 카메라 LED 불빛만 보였다. 잠수부 분들이 방울을 없애주고,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세팅을 하려면 숨을 오래 참아야 했다.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눈을 뜨는 게 힘들었다. 나중에는 결막염에 걸려 안과를 찾기도 했다.

-데뷔 10년 차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감사하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배우로 사는 삶에 만족하고, 개인 박보영의 삶도 균형을 잘 맞추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경성학교'의 미스터리한 공간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1938년 경성의 기숙학교에서 사라지는 소녀들을 한 소녀가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시대를 엿볼 수 있으면서 미스터리함을 극대화할 기숙학교의 공간은 중요하다.

먼저 열여섯 명의 소녀가 생활하는 304호 기숙사(①)는 철저한 교칙이 적용되는 학교의 특성이 한눈에 보이는 가구와 구조물들이 반복적으로 배치돼 안락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소녀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곳임을 잊지 않고 침대보와 이불, 커튼 등 작은 소품의 섬세함까지 놓치지 않으며 아기자기한 소녀들의 감성을 살려냈다.

또 과거의 은밀한 비밀이 잠들어 있는 곳이자 전학 온 주란(박보영)과 우수학생 연덕(박소담)이 우정을 나누는 지하 비밀공간(②)은 기숙학교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다. 비밀공간은 소녀들의 은밀한 자유가 허락된 곳답게 버려진 패턴 이불, 늘어진 망사, 꽃잎 등 소녀적인 감수성이 녹아든 오브제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숙학교의 총 책임자인 교장(엄지원)의 교장실(③)에는 골동품부터 현대 미술가의 조각품까지 아름다운 소품들을 대거 동원했다. 또 자연광 대신 늘 인공조명이 밝혀져 있어 온화한 미소 뒤에 감춰진 교장의 속내를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