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스크린 속 그를 보면 짙은 사람 냄새가 난다. 실생활에서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다. 바로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그려내는 배우 김인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 속에서 김인권은 주로 소시민이나 사회적 약자를 연기했다. 주연을 맡았던 영화 중 '방가? 방가!'(2010)에서는 취업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출신인 것처럼 위장했으며,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2012)에서는 마음을 뺏긴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운동권 학생이 되는 중국집 배달부가 됐다. '전국노래자랑'(2012)에서는 가수를 꿈꾸는 미용실 셔터맨이 되기도 했다. 그는 "그런 캐릭터와 그런 사회상을 그려낸 시나리오에 끌리는 것 보면 그런 감성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약장수'에서도 그의 서민 연기는 진행형이다. 김인권이 연기하는 일범은 딸의 치료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홍보관(떴다방) 직원이 된다. 그는 홍보관을 찾은 할머니들을 '어머니'라 부르며 친자식을 대신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물건을 판다. 아픈 딸을 위해 거짓 효(孝)를 파는 것이다.

"'약장수'를 하면서 표현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픈 딸을 가진 아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좋았다"고 말하는 김인권은 실제로도 세 딸의 아버지다. 서른일곱 살인 그의 첫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인데, 김인권은 "'해운대'(2009)를 촬영할 때 첫째가 폐렴에 걸려서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바심을 내며 병원과 촬영장을 오가던 그때가 떠올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픈 딸의 병원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약장수가 되는 주인공 일범의 마음이 크게 와 닿았던 것이다.

'약장수'는 자식들이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며 혼자 사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실제로 몰래카메라처럼 홍보관의 모습을 찍은 장면을 봤어요. 그곳에 오시는 분 중에는 홀몸노인도 있고, 재력이 있는 분도 있더군요. 아마 외로우셔서 그곳에 와 웃음을 찾으시는 것 같아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런 분이 많을 텐데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 했죠."

그는 '약장수'에서 처음으로 누드를 선보인다. 홍보관에서 돈을 걸고 동료 직원과 옷 벗기 게임을 하다가 깜짝 누드를 보여주는 것이다. "원래는 엉덩이만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1시간을 찍으니까 자유로워져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느슨하게 사는 일범을 연기하면서 살이 붙어서 누드가 귀엽게 나왔다"며 은근히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약장수'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은 약장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일범이 새로운 홍보관에서 한복을 입은 여장을 하고 어머니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엔딩이다.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머금은 '웃픈' 표정은 묘한 삶의 페이소스를 전해준다. "광대 같은 얼굴 분장을 직접 했어요. 스무 번 촬영하면서 분장을 덧칠하다 보니 뭉개지기도 하고, 빨간 분이 번지기도 했는데, 함께 출연한 박철민 형이 내 얼굴을 보며 '이거다'라고 했죠." 이 기막힌 표정은 '약장수'가 지닌 메시지를 한 컷으로 말해주는데, 그래서 포스터로 낙점되기도 했다.

항상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 김인권이 재벌 2세 역을 맡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는 "꼴통 재벌 2세라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은근히 욕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지금처럼 평범한 인물을 연기할 때 빛난다. 그 역시 "혹시 비슷한 연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지닌 장점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을 스크린 속에서 투영하는 배우가 바로 김인권이다.


# 실감나는 현장? 실제 '홍보관'이니까요

휴먼 감동 드라마 '약장수'를 더욱 사실적이고 실감 나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은 실제 홍보관에서 촬영된 장면들이다.

'약장수'의 제작진은 외로운 노인들의 실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과거 홍보관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는 조치언 감독은 전국 각지에 있는 30여 개 홍보관을 직접 방문해 자료 조사를 했으며, 인천 부근의 실제 홍보관을 어렵게 섭외해 촬영했다. 또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자 전문 보조출연자 대신 실제 홍보관을 출입하는 어머니들을 섭외했다. 촬영 첫날은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모두 전문 연기자가 아닌 어머니들이 촬영시간에 맞춰 나올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어머니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촬영에 임했다. 김인권은 "당시 조치언 감독님은 마치 바람잡이처럼 촬영 전에 어머님들을 즐겁게 했고, 박철민 형은 진짜 약장수처럼 어머니들을 대하며 웃음을 줬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다음 촬영 때는 진짜 홍보관에 모이듯 친구들까지 데려오는 바람에 출연 인원의 배가 돼 발길을 돌려야 했던 어머니들도 있었다.

전문 연기자가 아니어서 벌어진 해프닝도 있다. 극 중 일범이 무릎을 꿇고 울면서 샴푸를 파는 장면에서 NG가 났다. 김인권은 "어머님들이 촬영이라는 것을 잊고 자신이 물건을 사주겠다고 손을 드신 것이다. 같이 우시는 분도 많아 잠시 진정하고 다시 촬영해야 했다"며 순수한 마음을 지닌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김인권의 연기에 눈물 흘리고, 박철민의 연기에 즐거운 웃음을 보여준 어머니들의 모습은 '약장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