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이 '슬로시티'라고요? 꽤 오래전에 들르셨네요. 요즘 이곳에 어울리는 타이틀을 찾으라면 아마도 '전주;먹거리 전쟁의 서막'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전주비빔밥 한 그릇 먹고 모주 한 잔 걸치고 아침에 콩나물국밥으로 해장하면 된다는 당신은 옛날사람. 현금 두둑이 준비하고 오전부터 한옥마을 중심가인 태평로 맛집 앞에 줄을 서야 그 수많은 먹거리의 반절이나 맛볼 수 있다지요. 앉을 곳도 마땅찮지만 여유 부릴 시간도 없는 사람들은 물티슈로 손 닦아가며 길에 서서 후루룩후루룩 음식을 먹습니다. 서너 명의 일행이 흩어져 각각 다른 줄에 서는 건 한옥마을 투어의 노하우입니다.

지난해 6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인 먹거리가 궁금하긴 한데 그 지독한 '전투'를 치를 자신은 없으시다고요. 독자 여러분의 대리만족을 위해 세 여기자가 떴습니다. 먹는 데서 소외되면 불쾌감을 표하는 은둔 고수들이죠. 얻어먹을 때조차 간이 어떠니 재료가 어떠니 평가를 곁들여 반감을 사는 신귀영(ID 싼건너먹어), 맛있는 음식을 귀신같이 발견하는 혀를 가졌지만 양이 적으면 화를 많이 내는 대식 미식가 박정민(ID 줘봐좀많이), 불닭볶음면과 허니버터칩의 위대함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고 동료에게 전파한 최승희(ID 그래나초딩입맛) 기자가 전주한옥마을의 먹거리들을 이것저것 먹어보고 별점까지 매겼습니다. 자, 함께 시작하시죠. '전주한옥마을 먹방'의 향연.

	콩나물국밥(왼쪽), 돼지떡갈비

# 전통 맛 강자

◇ 콩나물국밥- 재료를 함께 '끓이는 방식'이 아닌 '말아내는 방식'의 전주남부시장식. 수란을 섞지 않고 따로 준다.

신귀영(ID 싼건너먹어) : 콩나물국밥이 흔한 음식이라지만 전주 국밥은 언제나 진리. 신김치와 새우젓으로 맞춘 간이 상당히 센 듯하지만 개운한 국물맛과 딱 어울림. 적당히 식혀 나오니 재빨리 먹기에도 좋다. ★★★★☆

박정민(ID 줘봐좀많이) : 맑고도 깊은 첫술에 반해버림. 부산의 수많은 콩나물국밥 맛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풍미. 단 과하게 나는 마늘향은 약간 거슬린다. ★★★★

최승희(ID 그래나초딩입맛) : 해장용으로 굿. 남동생과 함께라면 고소하고 풍부한 삼백집을, 엄마와 함께라면 맛이 깊고 맑은 이곳 현대옥을 택하겠다. 함께 주는 질 좋은 김에 반해버림. 국밥 한술 떠서 얹어 먹으면 최고. ★★★


◇ 전주비빔밥- 전통 전주비빔밥(소고기 육회 또는 볶음 고명, 치잣물 들인 황포묵까지)에 충실하다는, 표준적인 식당에서 맛봄.

신 : 고추장 양념에 비볐는데도 모든 나물·고명의 맛과 향기가 따로 느껴진다. 재료가 좋단 얘기. 볶은 고기보다는 육회가 비빔밥의 고소함을 배가하는 듯. ★★★★☆

박 : 놋그릇의 시각적 효과가 크다. 1만3000원이란 가격이 절묘. 질에 딱 맞는 값이다. 비빔밥 전문점이라 고슬고슬하게 제대로 지은 밥맛을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

최 : 영양보충용 점심 메뉴로 추천. 고명 하나하나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특별히 맛있는 비빔밥'이라는 인상까지는 받지 못했다. 부산에도 이만한 맛은 얼마든지 있다. ★★★


◇ 베테랑칼국수- 성심여고 졸업생들의 '소울푸드'가 드라마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신 : 드라마 '단팥빵'의 왕팬으로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 무조건 맛있다. 면발이 쫄깃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쭉쭉 빨려 들어간다. ★★★★

박 : 단팥빵은 안 봐서 모름. 들깻가루가 들어간 게 특이하지만, 취향을 크게 좌지우지하진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맛있는 칼국수. ★★★

최 : 들깻가루와 함께 통들깨가 들어가 씹히는 맛과 독특한 고소함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친절도도 떨어진다. ★★★


◇ 가맥- 한옥마을 한편의 작은 동네슈퍼에서 시작한 가게 맥주. 갑오징어구이와 맥주의 세트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저렴한 황태구이를 찾는다.

신 : 황태를 완전히 말려 구웠는지 겉부터 속까지 완전히 포슬포슬. 질긴 부분이 하나도 없어 씹기 부담스럽지 않다. 한 마리에 맥주 3병. ★★★

박 : 청양고추와 간장,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가 압권. 황태와 잘 어울림. 황태보다는 서비스로 주는 매운콩나물수제비가…. 분위기가 반인데 옛날 '가맥'의 느낌을 느낄만한 가게가 남아있지 않아 섭섭. ★★★

최 : 짜고 매운 소스가 굿.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삭바삭한 황태구이가 맛있긴 했지만, 황태구이는 황태구이다. ★★


# 신흥 맛 강자

◇ 돼지떡갈비- 언제부터인가 전주의 대표 메뉴에 슬쩍 끼어버린 떡갈비.

신 : 달짝지근한 간장소스를 바른 고기. 싫어할 한국사람이 있겠나. 당도도 간도 적당하고 돼지 잡내를 잘 잡았다. ★★★

박 : 소떡갈비와 비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 최고의 장점. 고기 한 점 집어 동치미 냉면에 둘둘 말아 싸먹으면… 또 생각나네. ★★★☆

최 : 달고 짠 돼지갈비맛. 연하게 잘 손질했다. 음식이 빨리 나오는 건 좋지만 사람이 많아 그만큼 빨리 일어나줘야 함. 편하게 식사하기는 힘든 곳. ★★★☆


◇ 수제 초코파이- 기울어가던 전주의 빵명가 '풍년제과'를 다시 일으킨 주인공. 지난해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 하루에 5000개 이상 팔린다.

신 : 풍년제과는 단팥빵이다. 퍼석한 브라우니 느낌의 평범한 초코빵. ★★

박 : 기대보다는 평범. 기본형 말고 카카오가 많이 들어간 2000원짜리 리얼 초코파이는 꽤 맛있다. ★★☆

최 : 안에 과일 맛 나는 시럽이 있어 그냥 초코빵보다는 좀 더 맛있다. 디저트용으로 좋다. ★★


◇ 통오징어튀김

신 : 외계인인가. 입맛 돋는 모양은 아니다. 예측 가능하긴 해도 맛은 좋다. 맥주 안주로 괜찮겠지만 길거리 음식치고는 먹기가 너무 불편하다. 옷에 다 묻었다. ★★★

박 : 물티슈 필수. 오징어와 튀김가루, 기름은 영혼의 조합이다. 설명이 더 필요한가. 모양낸 아이디어도 좋다. ★★★☆

최 :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초딩맛. 스파이시한 양념도 좋고 치즈가 들어간 것도 맛있다. 단 남자친구와 함께 길에서 먹는 건 안된다. 못생김이 잔뜩 묻음. ★★★★☆


◇ 새우만두(다우랑)

신 : 새우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 있다. 새우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면 부담스러울 만큼. 고추기름과 뭔지 모를 향신료가 강하다. 첫맛은 참 좋은데 물림. ★★★

박 : 1개 2000원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한입 깨무는 순간 이해가 됨. 크고 실한 새우가 잔뜩 들어있어 만족스럽다. ★★★☆

최 : 속 재료가 좋다. 탱글탱글 씹는 맛이 대단하고 피도 쫄깃하다. 부추향 덕에 느끼함도 없다. 삼각김밥 크기라 배가 부르다. ★★★★


# 저요, 저요. 우리도 있어요

	왼쪽부터 찰보리아이스크림, 크림치즈 츄러스, 전주비빔밥 고로케, 모주 아이스크림, 문어꼬치, 슬러시맥주

◇ 찰보리아이스크림 ★☆

모양이 맛을 압도한다. 맛은 별로란 얘기. 찰보리빵과 아이스크림, 과일이 슬프게도 따로 논다. 사진찍기엔 완벽한 비주얼.


◇ 크림치즈 츄러스 ★★

크림치즈와 츄러스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크림치즈의 반은 손에, 반은 옷에 흘림. 같이 파는 플레인 츄러스를 추천한다.


◇ 전주비빔밥 고로케 ★★☆

머릿속에선 환상의 조합인데 맛은 그다지…. 단 쫄깃쫄깃 고소한 이 집 고로케 빵 맛은 최고. 다른 종류 고로케의 맛이 궁금하다.


◇ 모주 아이스크림 ★★★

계피와 약재 등이 들어간 전주의 전통주 모주를 넣은 아이스크림. 꽤 잘 어울리는 맛이다. 가격이 3400원으로 다소 센 편이다.


◇ 문어꼬치 ★★★☆

문어와 가쓰오부시의 조합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문어가 탱탱하다. 강한 불에 직화해 불향이 살아있다. 맥주를 부르는 맛.


◇ 슬러시맥주 ★★★

한옥마을의 모든 길거리음식과 어울리는 어른음료. 얼린 맥주를 갈아 크림화했다. 맥주 맛은 아쉽지만 온도가 오래 유지된다.

정리·사진=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