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은 3월이면 노랑 물감을 뿌려놓은 듯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한 폭의 그림으로 변한다. 사진은 지난해 산수유꽃축제 당시 모습.

해마다 이맘때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꽃샘추위다. 꽃샘추위란 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계절에 찾아오는 때아닌 추위다.

그야말로 봄을 시샘하는 추위다. 변치 않는 진리는 또 있다. 꽃샘추위는 어김없이 찾아와 맹위를 떨치지만, 봄꽃도 어김없이 핀다는 것이다.

물론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남녘의 여기저기서 벌써 봄꽃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남녘의 봄꽃 축제는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해마다 봄이면 노오란 꽃잎으로 뭇사람들을 유혹하는 산수유꽃을 찾아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향했다.

■마무리 신부 화장 한창

	오는 21일 구례산수유꽃축제를 앞두고, 막 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사이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멀리서 본 산수유나무는 아직 거뭇거뭇한 모습이다. 갈색 나무에 노랑 물감이 조금씩 뿌려진 정도랄까. 오는 21일 산수유꽃축제 개막을 열흘 정도 앞둔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 산동교차로를 지나 상위·하위·반곡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굳이 내비게이션의 안내 방송을 듣지 않아도, 여기가 산수유꽃축제 현장임을 직감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나 봄 직했던 한가로운 개울(서시천)을 중심으로 양옆에 늘어선 산수유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을 주변은 지리산 자락의 높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 흡사 깊은 산 속 공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하지만 산수유나무는 이제 겨우 몸에 노란색 칠을 하기 시작했다. 산수유나무 가까이 가봤다. 멀리서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봉오리마다 노란색이 선명하다. 축제 기간에 손님들에게 활짝 핀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다리는 듯하다. 흡사 혼례를 앞둔 예비신부가 마무리 화장에 여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수유나무 밀집 지역이자 축제의 주 무대는 산수유문화회관 왼쪽에 차례로 이어진 상위·하위·반곡마을이다. 근처 산수유 시목(始木)이 있는 계척마을과 현천마을도 축제 무대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산수유마을은 상위마을이다. 상위마을은 전체가 민박집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안내판에 민박집 이름이 전화번호와 함께 빼곡하게 적혀 있다. 공동 주차장과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마을 자체가 관광 상품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신문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곳은 상위·하위마을 아래에 있는 반곡마을이다. 산수유나무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서시천과 어우러져 카메라만 갖다 대면 '작품'이다. 최근엔 개울 주변에 목재로 산수유꽃담길을 조성해 더 편리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반곡마을의 김일태(62) 씨는 "상위마을이 재빠르게 산수유마을로 등록을 해놨지만, 원조 산수유마을은 반곡마을이다"라고 말했다. 산수유꽃담길을 정비하거나, 축제 무대의 시설을 점검하는 손길도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구례군축제추진위원회 박정례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축제의 주인공인 산수유꽃이 행사 일정에 맞춰 활짝 피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에게 참 좋은 산수유

산수유꽃은 양서화로서 매년 3월에 잎보다 먼저 노란색으로 핀다. 산수유꽃이 만개하면 노란색 물결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열매는 꽃이 피었던 봉오리에 열리는데 처음에 녹색으로 맺히지만 가을 햇볕을 받으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루비보다 붉은빛으로 탐스럽게 익는다. 때문에 산수유꽃축제는 3월에, 산수유축제는 10월 혹은 11월에 열린다.

산수유는 약간 따뜻한 성질에 신맛을 갖고 있으며(신맛이 강하고 달콤한 맛이 적음) 간과 신장을 보호하고 몸을 단단하게 한다. 산수유를 장기간 먹을 경우 신장기능이 강화돼 몸이 가벼워진다. 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정력 강화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남자에게 참 좋은데…'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73%인 구례 산수유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영향을 받는 곡간선상지인 데다 9월 이후 강우량이 적어 품질이 특히 뛰어나다.

산수유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사는 처녀가 구례군 산동면(山東面)으로 시집올 때 처음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동면이라는 지명도 이 같은 얘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산동면 처녀들은 입에 산수유열매를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이 작업을 반복해서인지 앞니가 많이 닳아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산동처녀는 쉽게 알아보았다는 얘기도 있다.

■함께 체험하고 즐기는 축제

오는 21일부터 29일까지 아흐레 동안 열리는 이번 구례산수유꽃축제는 열여섯 번째를 맞는다.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라는 주제가 붙여진 올해 산수유꽃축제는 문화공연과 체험행사 전시판매 등 관광객이 함께 즐기고 체험할 수 있다.

축제 기간에는 산수유나무를 현장에서 임대 분양하고 산수유 러브레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한 산수유 보물찾기, 산수유 족욕체험, 산수유 포토제닉 등을 상설 주제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또, 산수유 차 시음과 산수유 압화체험 등 다양한 체험행사에 참여하고 향토음식점과 산수유 카페테리아를 이용할 수 있다. 지리산나들이장터에서는 지역의 농·특산물을 한곳에 모아 난장을 펼치며, 상인회에서는 산수유 족욕장을 상시 운영해 관광객들의 피로를 풀어줄 계획이다. 축제 관련 정보는 구례산수유꽃축제 홈페이지(www.sansuyu.go.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사성암·운조루 등 주변 볼거리

- 절벽 끝에 아찔하게 오르지 않으면 후회하는 절 있다는데…

구례에는 화엄사를 비롯한 고찰과 명승지가 유난히 많다. 이번 산수유꽃축제 여행에는 운조루와 사성암을 추천하고 싶다.

토지면 오미리로 가면 운조루(雲鳥樓: 중요민속자료 8호)를 만날 수 있다. 조선 영조(1776년) 때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고택(문화 류씨의 종가)으로 조선 후기 양반 가옥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에서 따온 것으로 '구름 속을 나는 새가 사는 집'이란 뜻이 담겨 있다. 운조루에선 안채와 사랑채, 긴 행랑채, 섬진강 건너편 오봉산과 삼태봉의 화기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연지를 볼 수 있다. 운조루는 지어질 당시 99칸이었지만 지금은 73칸만 남아 있고, 류이주 선생의 후손이 생활하고 있다.

운조루의 안채 부엌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나무 뒤주(쌀독)가 보존돼 있다. 쌀이 두 가마니 반 정도 들어가는데, 옛날 이 집안 며느리는 대대로 매달 그믐날이 되면 그 쌀독을 채웠다고 한다. 그리고 쌀독에 '누구나 열어도 된다'는 '타인능해'란 글을 써 붙여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퍼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문척면 죽마리에 가면 산 절벽에 아찔하게 걸려 있는 암자가 눈길을 끈다.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사성암(四聖庵· 명승 111호·사진)으로 안 보고 살면 후회하기 때문에 '일생에 한 번은 꼭 올라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오산암(바위가 거북 등껍질처럼 생겼다는 뜻)이었는데, 의상과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해서 사성암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사성암은 절벽에 짓다 보니 흔히 있는 절 마당이나 화려한 일주문 같은 게 없다. 하지만 멋스러움만큼은 여느 사찰에 뒤지지 않는다.

기암사이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수령 600년 된 귀목과 소원바위 지장전 삼신각 도선굴이 줄지어 나온다.


# 얇게 썬 더덕이 한 웅큼…꽃놀이 뒤엔 보약 비빔밥

산수유꽃축제장 입구로 가는 길에 있는 지리산온천랜드 부근에도 식당이 많다. 남촌민속가든(061-783-0388)에 들러 더덕산채비빔밥(1인분·1만1000원·사진)을 주문했다. 일반적인 돌솥비빔밥에 이 지역 특산품인 더덕을 얇게 썰어 넣었다. 더덕 특유의 향과 어우러져 괜찮다. 맛깔난 반찬 인심도 후하다. 이 집 사장님의 권유로 마셔본 산수유막걸리도 시원했다. 분홍 빛깔의 막걸리로 목 넘김이 좋다. 남촌민속가든을 비롯한 이곳 식당에서는 참게매운탕 버섯전골 흑돼지삼겹살 등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대부분 주변에서 특산물로 준비한 요리이다. 구례산 토종닭을 이용한 요리를 내놓는 집도 많다.

구례로 가는 교통편은 승용차로 부산에서 간다고 가정하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천JC에서 빠져나와, 순천~완주고속화도로로 접어든 뒤에 구례화엄사IC로 내리면 된다. 구례화엄사IC에서 산수유꽃축제 행사장까지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소요 시간은 모두 합쳐 2시간 남짓하면 된다. 버스는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터미널로 가는 노선이 하루 18회 운행된다. 운행 시간은 3시간 정도다.

열차는 부산역을 출발해 순천역에서 환승한 다음 구례역으로 가는 노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