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인간에 흡사한 로봇을 구현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녀', '트렌센던스' 등은 컴퓨터에 자각 능력을, '에이 아이'는 인간의 마음을, '아이, 로봇'은 인간의 지능을 심었다. '엑스 마키나'는 인간을 속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가장 인간다운 로봇인 '채피'가 등장했다.

2016년 매일 300건의 범죄가 폭주하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치안을 위해 로봇군단이 투입된다. 로봇 개발자 디온(데브 파텔)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채피를 탄생시키고, 로봇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무기 개발자 빈센트는 채피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생존을 꿈꾸는 로봇과 로봇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대결이 시작된다.

다양한 로봇 영화들 중에 '채피'가 눈에 띄는 것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지식과 감정을 스스로 체득하는, 마치 인간처럼 성장해 가는 로봇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채피는 순수한 아기로 태어나 악당들 사이에서는 나쁜 행동을 배우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자신을 방어하며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피가 흐르지 않을 뿐 채피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행동한다. 로봇은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로봇 영화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만일 채피가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쫓는 인간의 모습을 답습했다면 '채피'는 그저 그런 영화였을 것이다. 가치관이나 도덕성이 갖춰지지 않은 채피는 배터리로 살아야 하는 생명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살아남기 위해 범죄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만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일까?

채피는 자신을 창조한 설계자와 자신이 엄마라 불렀던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덕목인 '희생'을 로봇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채피는 보여준다.

'디스트릭트 9' '엘리시움' 등 SF 영화에서 닐 블롬캠프 감독은 독창적인 상상력과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지만 상업 영화로서의 재미는 덜 했다. '디스트릭트 9'에 열광했던 평론가들은 '채피'가 너무 대중에 타협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일반 대중의 시각으로 보면 화려한 액션, 흥미진진한 이야기, 묵직한 메시지와 감동까지 갖춘 오락 영화라 할 수 있다. 1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