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디 갑니까?"

올해 스물네 살인 균도가 아버지와 외출을 하고 집에 와서 꼭 하는 말이다. 외출이 하루이건 10박 11일이 걸리는 대장정이건 상관없이, 균도는 아버지와 함께 '내일'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한다. 자폐1급 장애를 안고 있는 균도의 심사를 알 길은 없다.

균도 아버지를 직접 만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 년 전 송정 밤바다로 바람 쐬러 갔다가 포장마차에서 커피를 팔고 있는 균도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이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살피고 들을 수 있는 인연이 됐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한 중년남자, 그리고 자유를 꿈꾸며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기도 했고 또 큰 차이를 느낄 수도 있었다. 그 차이는 존경이란 단어를 새롭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도 굳건하게 남는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균도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거름망으로 거르고 걸러도 깊이 박히게 되었다. 모종의 책임감으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지만, 여력과 재주가 별로 없었다.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사건과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고, 소음이 요동쳐 괴담으로 번질 때도 잦았다. 그 때마다 그 가족들은 고통을 당하고 위축됐다.

균도와 그 아버지를 비롯해 만났던 숱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 속에서 싸우는 싸움은 세계평화나 빈곤퇴치, 민주주의 건설 등과 같은 거창하지만 말하기 쉬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경험하는 일상 속에서 허물어지고 부식되고 침체돼, 평범한 세계 속에서 사람되지 못함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토록 작은 살아냄을 우리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로 만들어 놓았다.

'느리게 자라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균도 아버지 이진섭 씨가 '우리 균도(후마니타스)'라는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았다. 아니, 불편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으므로 이 땅의 자녀와 가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여느 사람들처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여행 중 여관에서 자고, 즐겁게 거리를 활보하고, 연예인을 좋아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거세시켜 높은 벼랑 끝에 내몰아 투신하게 만드는 우리의 속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품위있게 만들지 사뭇 궁금하다.

"내일은 어디 갑니까?" 수많은 균도들과 그 가족들이 묻는다. 우리가 답할 차례다.

윤성호 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