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요리는 여자가 하는 것'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된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무색하게 됐다.

요즘 가장 핫한 시청률을 보여주는 '삼시세끼'는 무뚝뚝할 것만 같은 남자들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프로그램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것도 아니고 톱스타들이 대거 등장하지도 않는다. 단지 한 끼의 따뜻한 식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린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러한 프로그램에 위안을 받는 것일까?

우리 경제는 지난 60여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한국전쟁 휴전 해인 1953년 GDP(국민총생산)은 13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으나 2013년에는 1조3043억 달러로 무려 1003배로 확대됐다. 이처럼 경제성장은 이룩했지만 사회구성원들의 사회갈등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 속도와 정서적, 문화적 등 여타 부문의 개선 속도가 너무나 차이가 커 사람들이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지쳐있다. 전투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도태할 수 있다. 그 어디에서도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멍하고 허하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뀌어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평일 세 끼를 대부분 회사 식당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맞벌이 아내에게 '밥 해달라'고 말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은 굶거나 패스트푸드로 때우기 일쑤이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업무상 사람들과 식사 미팅을 잡고 불편한 한 끼를 먹는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소박한 밥상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너무나 세상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 바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마트에서 손질이 잘돼있는 생선을 굽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종일 낚시를 한다. 그러나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김 한 장을 먹기 위해서는 바위에 붙은 김을 채취해 씻고 펴고 말리는 기다림의 과정을 며칠이나 반복한다. 쉽게 살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빵도 임시 화덕을 만들어 직접 구워 먹는다. 동네 슈퍼에서도 살 수 있는 어묵을 먹기 위해 생선살을 저미고 채소를 썰고 반죽해 기름에 튀긴다. 이제 만드는 방법도 생소한 막걸리를 직접 발효시켜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한잔을 마신다.

밥 한 끼 먹는 게 그야말로 기다림을 배우는 것이며,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우리들에게는 고행길이다. 현대를 바쁘게, 힘들게, 마음을 돌아 볼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기다림과 고행길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받고 있다.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소박한 한 끼가 누군가에겐 살면서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다. 아! 나도 오늘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다.

이혜정 구평복지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