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삼동면에 자리잡은 독일마을의 전경. 독일산 자재를 그대로 활용해 지은 이국적인 모습의 유럽식 건물과 남해안의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같다. 사진=최정현 기자 cjh@kookje.co.kr

# '국제시장' 덕수들이 지어 올린 뮌헨댁·함부르크댁…

- 파독 광부들 2001년부터 정착
- 총 36가구…26가구 입주 기다려
- 최근 영화 붐 타고 발길 늘어

- 지난해 개관한 파독전시관
- 산업화 시대 역사 교육의 장
- 10월 맥주축제땐 8만명씩 찾아

경남의 한 시골 마을에 유럽의 독일을 옮겨놓은 곳이 있다. 남해군 '독일마을'이다. 젊은 시절 가난한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근무하다 귀국한 교포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소재지에서 미조항 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라 10여 분쯤 가자 오른쪽 언덕으로 이색적인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의 뾰족한 지붕과 하얀색 벽, 예쁜 무늬의 창문 등 동화 속 그림 같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모습만 떼어놓고 보면 실제 유럽에 온 착각이 들 정도다. 차를 몰고 언덕으로 올라가자 유럽풍 건물의 커피숍과 펜션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커피숍과 펜션이 있는 곳은 독일마을에 속한 지역이 아니다. 독일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이런 시설들도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커피숍이나 펜션 건물도 유럽풍이어서 독일마을과 구분이 안됐다. 그러고 보니 언덕을 반쯤 올라가자 독일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야산의 정상까지 약 200m의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양옆이 독일마을인 것이다.

■맥주축제·국제시장으로 인기 더해

독일마을은 경남 남해군이 1960년대 독일에 파견됐던 교포들의 고국 정착을 돕고,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지난 2001년 조성했다. 행정구역상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와 봉화리 일대이며, 독일에서 직접 건축 자재를 가져와 전통 독일양식으로 집을 지었다. 현재 36가구가 집을 짓고 입주해 있으며, 26가구가 입주를 준비하거나 계획 중이다. 일부 가구는 독일 교포가 아닌 외지인이 살고 있다. 전매제한 기간(10년)이 지나 외지인에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마을은 지난 2010년부터 뮌헨 옥토버페스트를 본뜬 맥주축제를 개최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맥주축제에 지난해의 경우 8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경남도의 대표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TV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것도 독일마을이 외지인에 친숙한 계기가 됐다. 게다가 최근에는 영화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활동한 인물이 주인공인 국제시장이 흥행하면서 관광객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독일마을에 최근 조성된 독일광장 입구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이날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독일마을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관광객들도 가족단위 친구 연인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김해시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들과 함께 왔다는 박미정(50) 씨는 "독일마을에는 처음 놀러왔는데 마을 모습이 이국적인 데다 예뻐서 좋다"고 말했다. 독일마을을 걷던 중 마을 주민을 만났다. 충북 충주시가 고향이라는 류성덕(90) 할아버지다. 독일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던 큰딸과 함께 2000년대 초 이곳에 내려와 살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충주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류 할아버지는 귀가 조금 어둡기는 했지만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류 할아버지는 "날씨도 따뜻하고 자연환경도 좋아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살기에는 좋다"며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독일식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 있어 이웃 간 소통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입간판도 눈길을 끌었다. 뮌헨하우스, 본하우스, 함부르크하우스 등이다. 우리로 치면 부산댁 창원댁 울산댁 하는 식이다.

■파독전시관과 주민지원사업

지난해 파독전시관 개관 때 관계자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독일마을 위쪽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더 아름다웠다. 빨간색 지붕의 예쁜 집들이 잔잔한 물결의 남해안 바닷가와 어우러져 그림 그 자체다. 관광객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독일마을 맨 위쪽 독일광장에는 지난해 6월 문을 연 파독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남해군이 국비를 포함해 29억 원을 들여 완공한 파독전시관은 지상 1층 건물과 지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공간별로 주제를 설정해놨는데 ▷파독(역사적 현실):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역경(광부, 간호사로서의 삶): 지하 전시실 ▷환향(남해 독일마을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출구로 나뉜다. 전시관에서는 독일로 떠난 젊은이들을 주제로 한 영상물도 상영되고 있다. 취재진이 찾아간 날은 전시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이어서 아쉽게도 내부는 보지 못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독 광부로 나온 덕수(황정민·오른쪽)와 달구(오달수).

파독전시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석숙자(여·66)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독일마을 1호 주민이 된 석 씨는 지난해 설립된 마을기업인 행복공동체 영농조합법인의 대표도 맡고 있다. 행복공동체는 파독전시관 바로 앞 간이음식점에서 맥주와 소시지 등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석 씨는 "독일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들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주민을 위한 정책은 없다"며 "마을기업 행복공동체가 주민 지원 사업을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 사찰 안에 대포? 무슨 사연 있기에…

■ 인근 볼거리 뭐 있나

- 임진왜란 때 호국사찰 용문사
- 뒤편엔 쌍계사 말사 염불암도

독일마을을 둘러본 후에는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사찰인 용문사(사진)를 찾아보길 권한다. 행정구역상 이동면에 속하는데 호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호구산은 산의 형세가 호랑이의 어깨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구산에서는 호수 같은 잔잔한 물결의 앵강만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것은 독일마을과 비슷하다.

용문사는 보리암과 함께 남해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일주문 입구 우측 약간 높은 곳의 부도.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 부도는 남부지방에서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부도는 모두 9기로 용문사가 선사를 많이 배출한 오래된 전통 사찰이라는 상징이다.

원효대사는 남해와 인연이 매우 깊다. 용문사 역사도 원효대사로부터 시작한다.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했다.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이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다. 그 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포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그것이다.

특히 용문사 주변은 공원으로 깨끗하게 정리돼 있고, 주차장 등 신도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대폭 늘어났다. 지난 8년간 주지로 있던 성전 스님이 일군 성과들이다. 성전 스님은 불교방송 진행자로, 불교신문 칼럼니스트로 불교신자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용문사 뒤편에는 용문사의 말사인 백련암과 용문사와 함께 쌍계사의 말사인 염불암이 자리 잡고 있다. 염불암은 용문사의 말사였으나 지난해 용문사와 같은 급으로 승격됐다. 또 성전스님이 이곳으로 옮겨와 주지를 맡고 있다. 염불암은 영남 제일의 선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성철 스님과 혜암 큰스님도 이곳에서 수행을 한 것으로 전한다. 염불암은 조선 숙종 35년(1709년) 각찬 스님이 창건했다.


# 바닷내 머금은 남해 멸치, 된장을 품었네

- 여행으로 허기진 배 달래는 구수한 멸치쌈밥정식 별미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 사천IC를 거쳐 남해군 독일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삼천포·창선대교와 창선교를 차례로 건너야 한다. 창선교를 건너면 삼동면 지족리 지족삼거리인데, 여기서부터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멸치쌈밥정식'(사진)이다. 횟집마다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있지만 대표 메뉴는 멸치쌈밥정식인 듯했다.

지족삼거리 근처 한 횟집에 들어가 멸치쌈밤정식을 주문했다. 멸치찌개와 상추·배추, 9가지의 밑반찬이 함께 나왔다. 원칙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며 1인분 가격은 9000원이다. 멸치찌개가 짜지도 않고 담백한 데다, 바다 내음까지 맡을 수 있어 한 끼 식사로 꽤 괜찮다. 밑반찬도 깔끔해 밥 한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멸치는 남해의 대표적 특산물 가운데 하나다. 멸치의 본고장에서 먹어보는 멸치쌈밥정식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남해군청 홈페이지에 실린 멸치 관련 설명이다. '멸치는 어패류 중에서 칼슘이 가장 많고 인의 함량도 많아 주로 골격과 치아형성에 매우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 없이 머리 및 내장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으므로 다른 어종에 비해 경제적이며, 피로를 회복하고 건강을 촉진하는 식품이다. 또한 멸치에는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글루타민산의 함량이 높아 국물맛이 일품인데 생멸치에 된장을 풀어 넣고 파, 마늘, 고추 등을 넣어 끓인 생멸치찌개는 개운하고 구수한 맛이 좋아 상추쌈과 함께 먹는 그 맛은 봄철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