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조건을 이렇게 꼽는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그런데 요즘 추가된 또 하나의 조건이 '아줌마'의 성격이다. 맞벌이 엄마가 늘면서 아이의 보육을 대신 맡아주는 '아줌마'는 사회적 계약관계로 맺어진 베이비시터도 될 수 있고, 할머니도 될 수 있고, 옆집 이모도 될 수 있으며 어린이집 선생님도 될 수 있겠다.

친정과 시집이 모두 서울인 나는 아이 둘을 키워 줄 사람이 없어 아줌마를 찾아야 했다. 첫 아이를 낳고 새벽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는 아주머님이 새벽 5시에 우리집에 출근을 하셨다. 초등학생 때도 아이는 아침에 눈을 떠 제일 먼저 아줌마와 눈을 맞췄다. 체육대회도 소풍날 아침도 아줌마의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섰다.

아주머님은 두 아이를 17년이나 돌봐 주셨다. 그 긴 시간을 엄마보다 더 가까이했으니 멀리 있는 할머니나 외할머니보다 그분을 더 따랐다. 그렇게 아이들을 품으며 51세의 아줌마는 68세의 할머니가 되어갔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에 이어 겨울을 맞으며 그렇게 열일곱 번이나 바뀐 사계절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해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동시에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고되고 힘들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면서도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돌아와 단잠에 빠진 새벽 시간, 아기가 깨서 울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 잠결에 분유 병을 물리고 아침에 눈 떠보면 주위가 하얗게 모래사장이다.

아이를 따라 울다 보면 더 서러워졌다. 내 자식 보는 일도 그렇게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남의 자식을 돌보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말을 안 들어 얄밉고 미울 때는 서너 대 쥐어박고 싶고, 먹으라는 밥 제대로 안 먹고 꾀를 피울 때는 들고 있는 밥숟가락 뺏고도 싶을 만큼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안다. 감정 가진 사람의 마음은 매한가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태에 화가 치미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와 자식은 생물학적 본능의 관계다. 제 감정에 겨워 자식에게 못되게 굴다가도 순식간에 봄 눈 녹이듯 감정 녹여 깨물고 비벼가며 속풀이를 한다. 피와 살을 나누고 목숨을 나눈 사이니 이유 없는 본능이 순식간에 사랑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보육교사는 본능보다는 아름다운 사명감이 더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감정대로 화풀이하고 싶더라도 그 눈부신 사명감으로 화를 누르고 마음을 정리해야 할 일이다. 아이를 밥벌이용으로 생각한 비열한 사명감들이 결국 이런 안타까움을 만든 것이다 싶다.

학생을 돌보는 교사가,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공평함을 대변하는 법조인이, 국민을 받들어야 할 정치인이 사명감이 아닌 밥벌이로 자신의 일을 행하고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 치열했던 육아의 세월을 겪은 사람으로서 요즘 사태는 생각할수록 눈물이 앞서고 마음이 쓰리다. 더 낳으라 채근하기에 앞서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남의 자식 품으면서도 늘 나긋하게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시던 아줌마의 고운 음성이 오늘은 더 그리워진다.

유정임 FM 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