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대표 배우 황정민이 격동의 현대사를 살았다. 그는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의 삶을 산 것이다.

극 중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많은 작품을 했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다"라며 "특히 아직 겪어보지 못한 70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흥남부두 피란(50년대), 파독 광부(60년대), 베트남전(70년대), 이산상봉(80년대), 그리고 현재를 아우르며 치열한 삶의 드라마를 그려낸 '국제시장'에서 빠져나와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황정민을 한 겨울의 길목에서 만났다.


-20대부터 70대를 연기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겠다.

▶재작년 겨울에 윤제균 감독과 만났다. '어쌔신'이라는 뮤지컬 할 때였는데 분장실에서 아버지 이야기라고 해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대본을 보고 많이 울었다. 70년생이라 월남전이나 이산가족상봉 등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려웠던 것은 그런 삶을 산 현재의 70대 할아버지의 생각과 모습이었다. 시장이라는 전쟁터 같은 삶의 터전 안에서 수십 년을 지내오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골수 삶을 사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서 조금씩 연기에 감이 오기 시작했다.

-CG와 특수분장을 통해 본 자신의 20대, 70대 모습은 어떤 느낌이었나?

▶20대는 함께 연기한 오달수 형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제작진이 20대 때 사진을 달라고 했는데, 달수 형은 지금이 더 낫더라. 나는 영화 속에서 너무 꽃미남으로 나왔다. 피부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70대의 모습은 분장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황정민이 70대 연기를 한다는 것을 관객이 잊게 하려고 걸음걸이, 손 모양새 등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더 노력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70대 연기를 하기 위해서 파고다공원의 할아버지를 취재하며 영상을 찍었는데, 그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이번에 덕수 역으로 '국민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붙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영화가 흥행이 잘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됐으면 한다. 그러다가 형사 역으로 나오는 다음 작품 '베테랑'에서는 '국민 형사'라고 불리면 좋겠다.

-시기마다 쉬운 촬영이 없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체코 탄광 박물관에서 촬영한 탄광 장면에서는 갱도 안에서 10분도 못 있겠더라. 어떻게 여기서 3년을 버텼지 했다. 로케이션의 도움을 받는다. 갱도 매몰 장면은 세트였는데 실제 석탄으로 만들어서 분진과 탄가루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흥남 피란 때 헤어진 막내 동생과 상봉하는 장면은 촬영 전에 미국 오디션을 통해 온 배우와 일부러 얼굴도 보지 않았다. 다른 스튜디오에서 이원생중계처럼 촬영했는데, 모니터를 보니까 눈물이 그냥 흘렀다. 당시 엑스트라, 스태프가 모두 눈물바다였다.

-실제 국제시장에서도 촬영을 했다. 국제시장의 느낌은 어땠는가?

▶오랜만에 국제시장을 찾았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 변함없었다. 덕수의 70대 분장을 하고 촬영하러 갔는데, 시민들이 알아보지 못하더라. 심지어 실제 상인으로 착각도 하셨는데 촬영 중인 가게 앞으로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국제시장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국제시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촬영 마치고 거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렸다. 애착이 가서 무척 기다려지는 작품이다. 모든 세대가 같이 영화를 보고 식사도 하시면서 예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분이라도 있다면 이 영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 50년 세월을 넘나들다

- 화장품 광고기법 빌려 20대 얼굴 CG
- 스웨덴 분장 팀, 얼굴 본 7개 떠서 노인의 미세한 안면근육까지 표현

영화 '국제시장'의 주요 배우인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은 20대부터 70대의 연기를 선보인다. 40대인 이들 배우가 20대와 70대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특수분장이 필요했다.

먼저 20대로 돌아가는 젊은 모습은 일본의 CF 컴퓨터그래픽 회사의 도움을 받았다. '국제시장'의 제작진은 전 세계 컴퓨터그래픽 회사를 알아봤으나 피부를 뭉개서 만들 뿐 만족할 만한 기술을 가진 회사가 없었다. 그러다가 일본의 CF 회사를 알게 됐는데, 화장품 CF에서 여배우의 피부를 젊게 보이도록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 고민했는데, 마침 자신들도 영화를 해보고 싶다며 적정 비용으로 협상이 돼 함께 작업하게 됐다.

노인 분장을 위해서는 '007 스카이폴'에서 작업한 스웨덴의 특수 분장팀을 섭외했다. 일반적으로 노인 분장을 하려면 얇은 1개의 본을 떠 얼굴에 붙이는데, '국제시장'에서는 무려 7개의 얇은 본을 떠 노인 얼굴 질감을 만들어내 근육의 움직임과 표정을 더욱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었다. 특수 분장을 담당한 러브 라르손은 "피부 톤부터 골격구조를 만드는 것까지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윤 감독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을 원해서 실제 한국인 사진을 수집해 생김새, 피부 톤, 화장법을 미리 숙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