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윤제균 감독. 이용우 기자

- 1950년대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 파독광부·베트남기술자 등
- 그들이 살아온 모습 담아내

- 당시 치열한 삶의 배경으로
- 사람냄새 나는 '국제시장' 선택
- 윤 감독도 어렸을 때 자주 방문

- 정치성 배제하고 경제에 집중
- 사회비판 관점서 보면 많이 부족
- 미화 아닌 진정성 알아줬으면

영화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해운대'를 연출한 윤제균 감독은 2000년대 흥행의 대명사였다. 이들 영화는 코미디를 바탕으로 액션과 감동을 적절히 가미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해운대'는 우리나라에 볼 수 없었던 재난영화에 도전해 무려 1145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윤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했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을 겪으며 살아온 아버지 덕수(황정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다.

1960년대 파독 광부나 1970년대 베트남 기술 근로자 파견 등의 이야기는 경제발전을 우선시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윤 감독은 "이 영화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다. 오직 우리네 세대의 아버지가 살아온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그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부산 출신 감독으로 '해운대'에 이어 부산의 대표적인 시장인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한 '국제시장'을 내놓은 윤 감독에게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덕수가 마침내 국제시장에 자신의 가게를 마련하는 장면이다.

-천만 관객을 모았던 '해운대' 이후 5년 만이다. 그동안 너무 뜸을 들인 것은 아닌가?

▶그간 (JK필름의 대표로써) 제작을 많이 했다. '국제시장'은 시대를 제대로 재연하고 표현해야 해 시나리오 단계부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운대' 이후 본격적으로 구성에 들어가 초고가 나오는 데 3년이 걸렸다. 이후 2012년 박수진 작가에게 시나리오는 맡겼는데 또 초고가 6개월 이상 걸렸다.



-'해운대'에 이어 '국제시장'이다. 부산 출신이라서 부산의 명소를 배경으로 했나.

▶가난한 삶을 산 치열한 직군을 잡아야 하는데, 사람 냄새가 나는 메인 공간이 시장이었다. 국제시장은 피란민이 내려와 모여 있던 곳이고, 6·25전쟁 당시 가장 컸던 시장이다. 시대별로 자료 사진, 영상들을 모두 참조해서 기장군에 대규모 세트를 건설해 그대로 재연했다. 그리고 내가 코 흘릴 때부터 학용품이나 옷을 사러 갔던 곳이 국제시장이기도 하다.



-현대사 중 정치적인 사건을 배제하고 경제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춘 것이 도리어 정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 평생 고생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못한 것이 한이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에 대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가난한 시절을 열심히, 치열하게 사신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데 정치적인 부분은 들어가도 욕을 먹고 안 들어가도 욕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배제하고 가자고 했다. '국제시장'을 정치적 관점이나 사회비판적 관점에서 본다고 하면 모자란 부분도 많고, 그 시대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나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 가수 남진, 전 씨름선수 이만기 등이 등장한다. 시대적 인물을 카메오처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는 크게 네 가지 시퀀스가 감정적으로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고, 감정의 진폭이 크다. 감정적으로 계속 이어지면 관객이 힘들 것 같아서 쉬어가는 부분이 있었으면 해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유명 인사를 재미있게 넣었다. 그 역시 수많은 유명 인사 중에서 정치인은 배제하고, 경제·문화·스포츠 분야의 유명한 분들을 등장시켰다.



-오달수 씨가 연기한 달구 역은 대영시네마의 사장으로 그려졌다. 실제인가?

▶그것은 완전한 픽션이다. 이번 기회에 지면을 빌어 실제 대영시네마 사장님께서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감사하겠다는 양해의 말씀을 드리겠다.



-'국제시장'은 총제작비 180억 원이 든 대작이다. 그러니 흥행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흥행은 아무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만들었으니 겸허하게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다. 잘 되길 바란다.


# '국제시장'에서 촬영된 굵직한 현대사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일어났던 흥남부두 피란, 파독 광부, 베트남전, 이산가족찾기 방송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거의 10년 단위로 다룬다. 특히 처음과 마지막 에피소드인 흥남부두 피란과 이산가족찾기 방송 장면은 눈물을 쏘옥 빼놓는데, 촬영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윤 감독에게 들었다. "'국제시장'은 모든 시퀀스가 쉬운 것이 없었는데, 스태프와 배우도 영화 4편 찍는 것 같다고 했다. 흥남부두 장면은 생각하기도 싫다. 일단은 피난선이었던 메리디스 빅토리호를 재연해야 하는데 그런 큰 선박을 섭외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행히 지난해 추석 연휴 때 그 크기의 선박이 감천항에 일주일 정도 정박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제작진이 읍소를 해 선체와 갑판 옆 부분을 다 찍을 수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어떻게 하면 리얼하게 극적으로 찍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7대의 카메라를 동원했다. 스튜디오 홀의 황정민 씨와 부조정실의 어른 막순을 동시에 촬영했다. 실제 이원생중계하는 것처럼 7대의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또 덕수와 달구의 고단한 일상이 펼쳐진 독일 함보른 광산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체코를 찾았다. 윤 감독은 "거대한 규모의 광산을 한국에서는 구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체코 오스트라바 탄광 박물관에서 촬영했다. 엄청난 깊이의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물론, 단 한 시간만 들어가 있어도 코 안이 새까매질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보고 코끝이 시큰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덕수와 달구가 베트남전에서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몸을 숨기는 정글을 표현하기 위해서 찾은 장소는 태국 사뭇송크람 바나나 농장이었다. 실제로는 태국과 베트남의 미묘한 차이가 있어 실제 소품들을 베트남에서 들여와 상황과 공간에 맞춘 장면을 완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