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극장가에 부산에서 제작한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개봉 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서호빈의 극영화 '못'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김지곤의 다큐멘터리 '악사들'이다. 다수의 독립영화가 영화제 상영 후에도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부산에서 제작된 영화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느낀다.

서호빈과 김병준이 품앗이 형태로 제작과 연출을 병행하는 영화사 '새삶'은 김병준의 '개똥이'(2012)에 이어 '못'을 제작했고 두 편의 영화 모두 극장에서 개봉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못'은 청소년의 마지막 시기를 되돌아보면서, 소년기에 잉태된 실수와 거짓말이 빚어낸 어둠의 시간을 보여준다. 고향에서 오랜 시간 알아왔던 네 명의 친구는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겪은 후 서서히 멀어진다. 청년이 된 그들을 여전히 압박하는 두려움과 죄의식은 거짓말의 연쇄를 일으키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서호빈은 안정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공들인 조명, 아름답지만 음습한 연못가의 이미지를 통해 헤어나올 수 없는 밤에 갇힌 소년과 청년들을 지켜보고 있다. 나아가 이 영화는 일종의 이탈을 말하고 있다. 소년들은 무덤이 되어버린 고향을 떠나야 하며, 청년이 되어 다시 돌아온 후에도 죽음의 그림자와 수시로 맞닥뜨리게 된다. 실수와 거짓말, 비밀과 범죄로 점철된 소년기의 공동체는 다시는 복권될 수 없으므로 더욱 서늘하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탁주조합'의 구성원인 김지곤은 '할매'연작을 통해 개인의 삶에 스며든 기억으로서의 역사와 공적인 장치를 통한 역사를 치밀하게 관찰했다. '악사들'은 유흥업소에서 손님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오부리)를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밴드 '우담바라' 멤버들을 차분하게 바라본다. 이 영화는 밴드 멤버들의 개인적인 삶과 1970·80년대 대중음악에 새겨진 흥겨움과 서글픔, 노래에 담긴 억압의 역사가 연상되는 지점을 엮어가면서 일종의 연대기를 구성한다. 박정희 시대의 몰이해와 대중문화에 대한 탄압 탓에 밴드 멤버들은 음악 활동에서 부침을 겪었고, 그들 각자의 삶 또한 아픔과 회한으로 얼룩진 굴곡을 만들어냈다. 김지곤은 악사들의 연주 장면을 통해 더욱 긴밀한 시선을 유지하는데, 첫 번째 공연은 비 때문에 무산된다. 텅 빈 무대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에 담긴 것은 오르지 못한 이 무대를 위해 연습했던 그들의 시간이다. 두 번째 공연인 영도다리 장면은 예기치 못한 돌풍 때문에 멤버들이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바람에 날리는 악기들을 수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몇 안 되는 관객의 미적지근한 반응과 맞서듯 꿋꿋하게 연주를 마친다. 세 번째 연주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각사에 모여 캐럴을 연주하는 모습인데, 이전 공연과 달리 이 장면은 멤버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 김지곤의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의 음악만으로 채워지는 순간을 바라보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다.

부산의 젊은 감독들이 마음에 담아둔 삶의 이미지가 다시금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못'과 '악사들'이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좋겠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