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회를 맞은 부산영평상은 다른 영화상과 달리 별도의 예심위원 없이 심사를 진행하므로 심사기간에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모두 봐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하지만 그간의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심사위원들이 지지하는 영화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예상케 하는 결과가 많았다. 대중적인 성과나 흥행 성적에 따른 결과를 내놓기보다 극장에서 너무 빨리 사라진 영화를 재조명하거나 독립영화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영화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이다.

올해 수상자 중에는 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풍경'과 극영화 '경주'의 장률 감독이 눈에 띈다.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감독이 바라보는 '떠도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자적 시선(풍경)과 도처에 출몰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사유(경주)가 변주되는 길을 한꺼번에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두 편의 영화에서 낯익은 듯 생소한 얼굴과 풍경을 담아내는 조영직 촬영감독의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선을 주목한 점도 신선하다.

예상 밖의 수상자는 '군도:민란의 시대', '해적:바다로 간 산적', '관능의 법칙' 등 여러 편에서 조연을 맡았던 남자 연기자상 수상자 이경영이다. 쉴 새 없이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출연하는 이경영의 놀라운 에너지와 어떤 영화에서건 자신의 인장을 새기는 그의 연기 때문일 것이다.

신인감독이 유독 많이 배출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신인 감독상에 블록버스터 '해무'와 독립영화 '레바논 감정'이 공동 수상한 결과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 편의 영화는 제작 규모나 시스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인 세계에 갇힌 인간상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무'의 1998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에서 어른거리는 현재의 그림자와 불안과 강박증은 '레바논 감정'이 시공간의 정밀한 표지를 걷어내는 대신 부각시키고 있는 인간상의 원형과 그다지 멀리 위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부산영평상의 수상 명단을 보노라면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화제작 중에서 중요한 상을 골고루 나눠주거나 같은 부문의 공동수상을 하는 시상식에 비한다면 소박하지만 뚝심 있는 부산영평상의 선택을 엿볼 수 있지만, 올해의 명단은 예년보다 치열한 토론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산영평상은 흥행에 성공한 상업영화에 대해 조건 없는 찬사나 부정적인 비판만 보내지 않았고, 무엇보다 신인감독과 신인 연기자들을 알아보는 안목이 제법 매서웠다. 부산의 평론가들이 지지하는 영화와 관객들에게 소개해야 하는 시선을 지닌 영화를 발굴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시상식의 형식을 갖춘 축하의 자리와 별개로 부산영평상이 쌓아온 비평의 정신을 지속해서 펼칠 방법 또한 찾을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영화를 찾아보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평론가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는 길이 더 넓어지기를 요청함과 동시에 부산영평상이 관객에게 영화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생각할 터를 제공하고, 토론과 글쓰기라는 실천을 통한 비평의 본래 목적에 더 가깝게 다가서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