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다. 그에게는 무책임한 아버지와 몸이 아파 자식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엄마, 철없고 눈물 많은 동생이 있다. 지긋지긋한 집을 나와 그룹홈에 들어간 그는 원장 엄마와 아빠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신부가 되는 것이 장래희망인 괜찮은 아이'라고 자신과 모두를 속이지만, 원초적인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소년은 성장할 나이에 생존하는 법칙을 먼저 체득한다. 영악해야 하고 눈치가 빨라야 하며 어른들에게 칭찬받을 행동을 해야 일시적인 보호자들이 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음을 배웠다. 그는 그룹홈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편 보호받지 못함에서 비롯된 결핍과 방기된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한다. 후원 물품을 훔쳐 학교에서 파는 행동은 나쁜 짓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호벽처럼 느껴진다.

김태용 감독(그는 탕웨이와 결혼한 김태용 감독과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 '작은 김태용' '꼬마 김태용'이라고 부른다)은 영화 '거인'에서 자전적인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열일곱 살의 자신을 돌아보고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작정을 한 스물여덟 살의 감독이 드러내는 소년의 삶은 '부모가 되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든 어른을 향한 항변이나 고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김태용이 강조점을 둔 몇 가지 키워드는 '집'과 '함께 밥을 먹는' 행위다.

그가 친구를 배신해서라도 이 집에 남으려 하고, 동생마저 여기에 머문다면 자신이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이곳을 떠나면 자신이 돌아갈 '집'이 없기 때문이다. 임시로 구성된 가족, 진짜가 아닌 대리 부모, '하느님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하지만 언젠가는 가족이 모인 '집'을 회복하려는 미래의 소망이 그를 지탱하고 있다. 감독은 이상하게도 '가족'의 회복보다 '집'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뿐, 집을 채우는 구성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가족의 모습이 이를 반영한다. 뿔뿔이 흩어진 소년의 가족, 그룹홈, 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누나의 가족이 등장하는데 이 가족들은 모두 온전하지 못한 공동체다. 그룹홈은 '자신의 자식들을 포기하고 가엾은 아이들을 거두는' 봉사의 일환이고, 엄마와 딸로 구성된 누나의 공동체는 아버지가 부재한다. 그리고 각 공동체와 식사 장면에서 소년이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그룹홈에서 그는 밥상을 차릴 뿐 밥을 먹지는 않는다. 아빠의 집에서 먹는 밥은 제대로 넘어가지 않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차려준 밥도 깨작거릴 뿐이다. 하지만 모녀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그는 가장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은 소년을 '거인'이 아닌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0대 청소년을 볼거리로 전락시키고 그들의 고통을 대상화한 영화와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소년은 비록 눈물을 흘리면서 아파해야 하고, 영원히 집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괴물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김태용은 자신의 소년기를 통해 손쉽게 괴물이 되어버리는 무수한 영화와 다른 노선을 택했고, 그것은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태도가 일치하기에 가능한 길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