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시가지서 바라본 사쿠라지마

- 근대 일본 만들었던 사이고
- 고향인 이곳서 비극적 최후
- 정유재란때 끌려온 조선도공
- 세계적인 '사쓰마야키' 탄생

- 연기 구름 분출 사쿠라지마
- 웅장한 자연 기리시마 장관
- 흑돼지·고구마소주로 유명
- 희귀한 모래온천 체험할만

일본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고시마만에 있는 활화산 섬인 사쿠라지마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흰 연기를 뭉텅뭉텅 내뿜으며 도심까지 화산재를 날려보내는 사쿠라지마와 불같은 성격의 사무라이인 사이고는 서로 닮은 것 같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와타나베 켄이 연기했던 인물의 모델인 사이고는 근대 일본 만들기를 지휘한 인물이다.

일본 남쪽 끝에 있는 변방인 이곳에서 어떻게 근대화가 싹텄을까. 쇄국정책을 고집했던 쇼군이 있는 에도(현재의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서방과의 교류가 활발한 항구였던 것이 그 이유인 듯하다. 하급 무사에 불과했던 사이고는 유력 번(제후가 다스리는 영지)들 간의 연합을 성사시켜 쇼군의 군대와 싸웠고 기적적으로 이겨 도쿠가와 막부시대를 끝냈다. 사이고는 메이지 정부의 핵심인물이 되지만 일본 밖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내치가 우선이라는 정부 내 다른 인사들의 주장에 밀리자 사표를 던지고 고향인 가고시마로 돌아온다.

사이고가 고향에서 군사학교를 열고 실력을 기르기 시작하자 메이지 정부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다. 메이지 정부가 군대 병기창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자 갈등이 폭발했고 전쟁으로 이어졌다. 사이고의 군대는 선전했지만 애초부터 병력과 장비가 열세였던 가고시마군은 패배하고 만다. 사이고는 가고시마의 성산에서 정부군의 유탄에 맞고 쓰러져 51세의 삶을 마쳤다. 가고시마 사람들은 이곳 출신의 사이고가 일본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가고시마의 상징 사쿠라지마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

신칸센(일본의 고속철도)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자 도로에는 화산재가 쌓여있고 청소부들이 그걸 치우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존재감을 드러낸 사쿠라지마는 원래 섬이었지만 1914년 대폭발을 일으켜 용암이 바다를 메우면서 육지와 이어졌다. 가고시마 시가지와 사쿠라지마를 잇는 페리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배에 타자 날아오는 화산재가 볼을 때리고 입속에선 화산재가 씹혔다.

가고시마 시가지와는 불과 4㎞ 떨어져 있는 36㎞ 둘레의 이곳에는 약 5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큰 무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귤이 특산품이다. 사쿠라지마 무는 무게가 10~20㎏에 이르는데 육질이 부드럽고 단맛이 난다고 한다. 사쿠라지마 귤은 30~50g 정도로 자그마하지만 상큼하면서도 달달하다.

	심수관 장인들의 작업장

페리 터미널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사쿠라지마 관광센터가 있다. 섬의 역사와 자연을 테마로 꾸민 박물관 형태이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사쿠라지마의 생성 과정과 주민들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볼 수 있는데 부탁하면 한글 자막 버전이 상영된다. 해안선을 따라 난 길로 차를 타고 가면 남부에 위치한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에 도착한다. 1946년 폭발 때 분출된 용암 위에 세워졌고 약 1㎞에 이르는 용암 산책로도 있다. 이곳에 서면 흰 연기를 분출하는 사쿠라지마 남봉을 더욱 박진감 있게 볼 수 있다. 활화산 지역인 이곳은 화산 폭발에 대비한 시설이 많다. 용암이 민가를 덮치지 않도록 땅을 파 용암길을 만들었고 곳곳에 원통을 반으로 잘라놓은 듯하게 생긴 콘크리트 대피시설이 보였다.

■심수관, 이케다 호수, 기리시마

	심수관 가문의 작품

심수관 도요지는 1598년 일본 사쓰마(현 가고시마현) 번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인 사쓰마야키를 만들던 곳이다. 번주가 사용했던 백색의 시로사쓰마는 도자기 표면의 미세한 금과 선명한 무늬를 가지고 있으며 서민들에게 사랑받았던 흑색의 구로사쓰마는 요염한 칠흑빛이 매력적이다.

심수관가는 이곳에서 15대째 내려오면서 전통기술을 보전하고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도자기 제조 공정을 견학할 수 있게 장인들의 작업장에는 대형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다. 공방의 박물관 격인 수장고에서는 심수관 가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도자기 전체가 기하학적인 그물코 문양의 투각으로 이뤄진 향로가 눈에 띄었는데 진흙이 건조되기 전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야 한다고 한다. 단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았다.

	심수관 가문의 작품

이케다 호수는 화산활동으로 이뤄진 둘레 15㎞, 최대 수심 233m의 칼데라호이며 규슈 지방의 최대 호수이기도 하다. 길이 2m의 거대한 뱀장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공룡과 닮은 괴물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아 방송국에서 수중 촬영장비를 설치했으나 발견하지는 못했다. 영국 네스호의 괴물 네시에 빗대 '이시'라고 부른다.

기리시마는 1934년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곳이며 웅장한 자연 속에 분화구와 호수, 온천, 고원 등이 흩어져 있다. 이곳의 상징인 기리시마 신궁은 일본 천황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신인 니니기노미코토가 모셔진 신궁이다. 신궁 뒤편에 있는 산 다카치호노미네에는 니니기노미코토가 강림했다는 전설이 있다. 6세기 중엽에 처음으로 세워졌지만 분화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의 신궁은 1715년부터 사쓰마 번주인 시마즈 요시타카에 의해 개축된 것이다.

■먹거리와 모래 온천

	기리시마 신궁

일본 국내 돈육생산량 1위인 가고시마는 고구마를 먹고 자란 가고시마 구로부타(흑돼지)로 유명하다. 바싹하게 튀겨 먹는 돈가스뿐 아니라 얇게 썰어 맛국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부샤부 맛이 일품이다. 고구마 생산량도 1위인데 이를 이용한 고구마 소주가 있다. 더운 물을 더한 오유와리, 물을 더한 미즈와리, 얼음을 넣은 로크 등으로 분위기에 따라 즐길 수 있다.

화산으로 인한 지열에너지가 풍부한 가고시마의 이부스키, 야마가와 해변에는 온천수가 배어나오는 모래사장이 있다. 이를 이용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천연 모래찜질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유카타를 대여해 착용한 다음 온천시설 직원이 판 구멍에 들어가면 위에서 모래를 덮어준다. 모래 온도가 50도에 달해 화상을 입을 것 같지만 모래입자가 크기 때문에 공기층이 형성돼 화상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뜨거운 모래가 온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모래 무게로 인해 혈액순환이 촉진된다. 그 효과는 보통 온천의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모래찜질을 마친 뒤에 모래를 씻어내기 위해 해변에 마련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파도소리를 들으면 즐거움이 더해진다.


# 하카타항 경유해 고속철 이용땐 외국인 할인 레일패스 발급 추천

	일본 신칸센 고속열차의 내부.

가고시마현은 우리나라에서 가는 항공편이 적어 여행일정을 맞추기가 힘들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카멜리아호나 코비호를 타고 후쿠오카 하카타항에서 내린 뒤 신칸센을 타고 가고시마에 가면 된다. 부산에서 하카타항까지 카멜리아호는 6~8시간 소요되고, 코비는 3시간 정도면 닿는다. 항공편보다 느리지만 넉넉한 객실에서 잠을 잘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

하카타역에서 가고시마 중앙역까지는 최고속 열차를 타면 1시간17분 만에 도달한다. 한국의 KTX에 비해 운임이 비싸지만 단기 체재로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는 싼 가격으로 레일패스를 발행한다. 규슈 전 지역을 사흘간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발급받았는데 1만4400엔이었다. 현재 환율로 13만7000원 정도다.

1964년 시작된 일본 고속철은 그 명성대로 편안함을 자랑한다. 넉넉한 객실 의자 폭과 통로는 기본이고 창가 아래에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콘센트도 마련되어 있다. 열차 운행방향이 바뀌면 의자는 자동으로 회전한다. 흡연자들을 위한 끽연실도 차량 사이에 있는데 담배연기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개폐장치가 달려있다.

취재협조 : 일본관광청, 일본정부관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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