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 본선 경쟁작을 뽑기 위해 114편의 영화를 보았다. 몇 년째 예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해마다 달라지는 부산 영화의 경향이나 특정한 테마, 스타일을 미리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영화는 아주 실망스러웠고, 특히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모인 대학의 영화들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

첫째, 시나리오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하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기본적인 틀이 정해지는 시나리오가 어떠한 문제의식도 담아내지 못하고, 그저 쇼킹한 소재를 나열하거나 대사에 의존한 감정 전달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인물의 감정이나 테마를 전달하지 못한다.

둘째, 인물이나 사건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사고가 전무하다. 카메라의 위치나 쇼트의 배열, 그리하여 전체적인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적기 때문에 빈약한 시나리오만큼 인물의 감정과 영화의 여운을 고려하지 않는 쇼트 나열만 남게 된다. 과도한 음악 사용과 드라마처럼 배치된 쇼트의 구성은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영화만의 매력이 발휘될 수 없다.

셋째, 어쩌면 앞의 두 가지 문제들로 인해 빚어진 문제인데, 지난해까지 영화들은 청년실업이나 청소년 학교 폭력 등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문제의식이나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 인간들의 변화를 관찰한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올해 영화들은 청년실업조차 버거운 듯 대부분이 연애에 집중했다. 그나마 사랑을 시작하는 풋풋함보다 서로의 믿음이 깨지거나 사랑이 식어버린 남녀의 말다툼과 소모적인 감정싸움만 남아 있다. 덧붙여 영화를 왜 찍고자 하는지 자신의 치열한 질문이 사라진 영화들이 복제되고 있다. 미래에 감독이나 전문 영화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영화에서 아무런 열정을 발견하지 못할 때, 절망적인 기분마저 든다.

영화 공부는 영화의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고, 촬영에 필수적인 장비의 사용을 익히는 데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해서 전공을 결심한 학생들이라면 꾸준히 영화를 보고 생각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또 영화가 자기감정이나 자기연민의 배설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생각하기를 제안하는 영화보다 볼거리로서의 영화(그렇기에 살인, 장기매매, 범죄가 고민 없이 등장한다)가 급증한 것은 비단 현재 한국 사회의 팍팍함 때문도 아니고, 영화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이 부재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덧붙여 대학 커리큘럼에 문제가 없는지 학교마다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변해가는 영화의 환경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근원적인 존재에 관해 충분히 경험하고 토론하고 있는지, 영화가 졸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학교와 학생이 모두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지도교수와 학생 간의 긴밀한 교류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아직 확신을 얻지 못한 채 영화에 접근하는 학생들에게 넓은 안목과 필요한 인접 학문을 소개하고 촬영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영화라는 환경을 함께 하는 교수진의 노력도 필요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