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제목만 들었을 때 채무상황을 유예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경제 용어가 들어간 탓에 20대 젊은이가 겪는 청년실업이나 정체성의 고민 등을 다루는 상투적인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인물을 느린 호흡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적 태도를 보여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런 편견은 사라질 것이다.

'린다 린다 린다'(2005),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2007)을 통해 소도시나 시골을 배경으로 청소년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야마시타가 전공투 세대가 겪었던 시대적인 혼돈과 갈등을 담은 '마이 백 페이지'(2011)를 선보였을 때 다소 의아했던 관객들도 있었다. 그가 자신만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과 그곳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영화로 관객을 다시 찾았다.

다마코는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취직 준비는커녕 빈둥거리기만 한다. 스포츠용품 매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말끔한 살림 솜씨나 부지런함을 하나도 물려받지 않은 그녀는 늦잠을 자고 아버지가 차려놓은 밥을 먹은 후에 그릇조차 치우지 않는다.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인 다마코의 일 년 동안의 모라토리움기를 지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이 영화는 미니멀하다. 부지런한 아버지와 매사에 의욕 없는 딸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상이 이 영화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자연스럽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떠오른다. (엄마의 부재 탓에)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딸, 정갈한 방 안에서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 살아가는 소소한 기쁨과 예기치 않은 순간, 계절의 변화를 통한 정서적인 반응과 자연 풍경 등.

하지만 야마시타는 각 계절을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오즈가 늦봄, 이른 봄, 초여름이라는 계절을 세밀하게 구분해 영화의 서사와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과 달리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계절의 순환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또 오즈의 부녀가 애틋함에 기반을 둔 삶에 충실하다면, 이 영화의 아버지는 간혹 역정을 내기도 하고 딸을 귀엽게 바라보기도 한다. 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딸의 모습은 현재 일본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면서 야마시타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야마시타는 오즈를 차용하되 자신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결한 형식으로 밀어붙인다. 대화 없이 TV나 만화를 보면서 밥을 먹는 다마코와 아버지의 식사 장면은 오즈의 시선 교환 방식과 다르다. 딸을 쳐다보는 시선과 되받아치는 반응의 쇼트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계절을 초월해서 차려지는 오즈의 음식에 비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밥상은 제철 음식이 주를 이룬다. 정갈한 음식 쇼트들은 아버지가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계절, 음식, 다마코의 변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빨간 단풍과 조금씩 내리는 눈, 초록색 나뭇잎과 맑은 하늘의 인서트는 하나의 이야기를 여닫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계절의 감각과 번져가는 감정의 상태를 포착하는 야마시타만의 풍경이 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