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사물 움직임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는
- 동체시력 지닌 '여장부' 캐릭터 맡아 열연
- CCTV관제센터서 일하며 남상미 지켜봐
- 영화 내내 선글라스 껴…마지막 임팩트 눈길

차태현은 '소리 없이 강한 배우'다. '과속스캔들' 820만 명, '헬로우 고스트' 300만 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490만 명 등 그가 최근 주연을 맡았던 영화들 중 '챔프'를 제외하곤 모두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만의 유쾌함 속에 순수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연기는 관객을 편안하게 웃기고 울린다. 그래서 차태현은 가장 대중적인 배우라 할 수 있다.

차태현이 2년 만에 색다른 소재의 휴먼 로맨스 영화 '슬로우 비디오'로 관객과 만난다. '슬로우 비디오'는 사물의 움직임을 슬로우 비디오로 보는 '동체시력'을 지닌 남자 여장부의 순수하게 빛나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차태현이 연기하는 여장부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된 후 20년 동안 TV 드라마만 보며 칩거 생활을 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CCTV 관제센터에 취직한다. 그 CCTV를 통해 운명의 사랑인 수미(남상미)를 만나고 그녀를 향한 여장부의 눈길은 온통 하트가 가득하다. 하지만 남다른 동체시력은 아픔을 잉태하고 있다.

차태현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또 하나의 '차태현표 영화'를 내놓는 그를 개봉에 앞서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동체시력'을 지닌 여장부 역은 차태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다. 순수하면서도 따뜻함이 있는 인물이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시나리오가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처음 '슬로우 비디오'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나쁘지 않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지금 시기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멜로 영화를 오랜만에 한다. 결혼한 지 8, 9년이 되니까 '나도 이제 멜로 한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또 CCTV를 따뜻하게 그린 점이 좋았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장면이나 속마음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많다.

▶처음 시나리오보다 내레이션이 많아졌다. 편집하면서 장면을 많이 줄이다 보니까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가 될까 봐 내레이션으로 채웠다.

-김영탁 감독은 '헬로우 고스트'에 이어 자신을 대변할 배우로 차태현 씨를 택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웃음) '헬로 고스트' 때는 후반부의 반전이 세게 다가와서 했다. 이번에는 말투 등이 독특해서 하게 됐다.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연기를 하지 못한다는 핸디캡이 있었다. 함께 출연한 오달수 씨는 "눈을 볼 수 없어서 연기하기 힘들었다"는 말도 했다.

▶김 감독님은 눈을 가리고 나와도 내 얼굴이 대중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무슨 표정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선글라스를 벗으면 임팩트가 클 것이라고 했는데, 영화를 보니 정말 세게 다가오긴 했다. 또 오달수 형님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는 내 연기에 신경 쓰느라 상대 배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달수 형님이 촬영 중에 만든 술자리에서 김 감독님에게 "쟤 선글라스 벗겨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은 있다.

-연인으로 나오는 남상미 씨와 참 잘 어울리더라. 남상미 씨와 호흡을 맞춘 느낌은 어떤가.

▶남상미 씨가 이전 드라마('결혼의 여신') 때 우울한 역을 하고 와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번 역할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자신이 힐링이 됐다는 말도 했다. 즐기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봤다. 요즘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장부처럼 동체시력을 지녔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가.

▶정말 쓸모없는 능력인 것 같다. '1박2일'에서 가위바위보를 이기는 정도일 것 같다.(웃음)


＃'슬로우 비디오'의 CCTV 관제센터

- 감시 아닌 '따뜻한 시선' 전달에 초점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또 다른 주인공은 여장부(차태현)를 세상과 소통하게 하고, 사랑의 끈을 연결하는 CCTV 관제센터다. 대사에 나오듯 관제센터에 펼쳐진 CCTV 모니터 200개에는 200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그 안의 모두가 주인공이다. '슬로우 비디오'에는 우리 일상을 지켜봐 주는 CCTV 너머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거리에 설치된 CCTV는 500만 대 이상이며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현대인은 CCTV를 감시의 도구로 여겨 부정적이다.

그러나 '슬로우 비디오' 제작진이 영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취재차 방문한 한 CCTV 관제센터 모습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과는 달랐다. 사람을 감시하고 훔쳐보며 범죄를 적발하는 것이 아니고, CCTV 안 사람을 정말 '지켜봐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늦은 밤 지하철역에서 젊은 여성이 집에 안전하게 들어갈 때까지, 10대 청소년이 모여 있는 곳과 학교 앞을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김영탁 감독은 무섭고 불편한 감시 도구가 아니라 따뜻한 시선을 가진 CCTV에 관해 취재한 이후 오히려 굳이 꾸며낼 것 없이 담아내면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삭막한 범죄물에서만 다뤄지던 CCTV 너머에 사실은 차태현 오달수 진경처럼 친근한 얼굴의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CCTV 관제센터를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