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 봉준호와 '살인의 추억'을 쓴 심성보 감독의 조합에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라면, 이 난감한 영화 앞에서 패배자의 쓰라림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해무'는 1998년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으나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국가가 도산했다는 위기의식과 각자의 일터에서 맞게 되는 불안이 한국 사회에 전염병처럼 돌고 있을 때였고, 한국에 온 이주민 노동자를 향한 불신과 원망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했다.

누구나 돈 때문에 편히 살지 못했던 시절은 비단 그 당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전히 빈부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돈 숭배는 신앙을 넘어선 수준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는 이 영화의 검은 바다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처럼 국민을 참혹함에 빠지게 했다.

영화 속 배경인 전진호는 한국 사회의 소우주가 되기 때문에 관객은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내가 여기서는 대통령이고 판사고 너희 아버지다"라는 선장의 대사는 자신의 정체성 선언처럼 들린다. 국가의 입법·사법기관 수장이자 가부장의 지위를 스스로 부여한 그가 신경증에 이어 광기에 빠져들면서 괴물이 되어버릴 즈음, 함께 미쳐가는 선원들과 이미 죽어버린 조선족 동포들의 시신으로 전진호는 연옥이 된다. 여기에 짙은 해무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시각에 의존했던 감각을 촉각으로 바꿔야 할 지점에 이른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선족 여인 홍매에 대한 선원들의 집착은 그녀의 젊은 육체를 만지려는 육욕으로 이어진다. 지옥의 입구처럼 넘실거리던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손으로 더듬어야 찾을 수 있는 쇼트들로 이어지고, 손을 통해 자행되는 살육의 현장이 부각된다. 이제 바다는 선원들의 터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위반한 자들을 시험하는 존재가 되고, 그들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전진호에 오른 모든 사람의 근본에는 돈을 좇는 절실한 욕구가 있고,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폐쇄된 자들의 욕망과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가 파산한 1998년의 삶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폐쇄성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해무'는 당대의 현실을 무섭게 지켜보는 영화이자, 현실을 지옥으로 그려내는 영화다.

또 홍매를 둘러싼 광기는 돈을 향한 집착만큼 집요하다. 그녀가 머무는 공간 점유에 관한 치밀한 묘사는 갑판, 어창, 기관실, 선실을 넘나들면서 선원들의 욕망을 폭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홍매는 전진호의 모든 남자에게 또 다른 해무가 된다.

젊은 선원 동식에게 전진호가 남긴 것은 연옥을 떠도는 혼령처럼 남은 삶을 살아가거나, 이미 수장당한 배와 그의 동료들처럼 죽음을 등에 지고 견뎌내는 것 외에는 없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희망도, 살육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도 느낄 수 없는 허깨비와 같은 동식의 멍한 얼굴은 아직 해무에 갇힌 자처럼 다가온다. 좌표 없이 표류하는 전진호, 인간이기를 너무 일찍 포기한 광기의 세계, 모든 죽은 자의 망령에 갇힌 폐쇄회로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이 가장 큰 절망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