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 한산사에 자리잡은 '행복수업 명상수행학교'. 지난달 24일부터 일주일간 이곳에서 제13차 간화선 수행학교 기본과정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이곳 선방(공부방)에 머무르며 명상하는 방법 등을 배운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더위는 지칠 줄 모르는데 몸과 마음은 왜 이리 쉽게 지쳐버릴까요.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으니 여러모로 기운이 없습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인 여름휴가는 놓칠 순 없으니 떠나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봅니다. 미리미리 챙겨보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왜 다들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잡아서 예약이 이렇게 어렵냐며 남탓도 해봅니다. 그러다 진짜 휴식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휴식은 그야말로 쉬는 건데, 준비부터 이렇게 난리법석인가 싶으면서 의욕이 급강하합니다. 그러면서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말 좀 쉬다 올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히 지낼 곳을 섭외하느라 손가락이 바쁩니다. 그러다 경북 문경 한산사의 '행복수업 명상수행학교'라는 곳을 찾았습니다. 여기는 참선을 배우는 곳인데 1주일을 있어야 한다네요.

문경 한산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질수록 길을 바로 찾은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산으로 산으로 가더군요. 예천IC에서 한산사까지 좁고 굽은 길을 가면서 사람이라고는 딱 두 명 만났습니다. 정말 심심산골이니 조용한 것 하나는 확실하겠구나 싶었습니다.

한산사에 도착하고서는 너무 조용해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내 말소리와 발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함. 항상 도시 소음 속에서 살아오다가 적막한 곳에 왔으니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은 해발고도 750~800m인 백두대간 맨 끝이라니 깊은 산중에 있는 게 맞았습니다. 수업이 이뤄지는 꼭대기 법당에서는 휴대전화 통화가 안 되더군요. 요새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눈인사를 나누고 같은 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고 교장인 혜봉 선생님이 참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한 사람이 대답합니다. "정비를 받아야겠지요." 그러자 혜봉 선생님이 되물었습니다. "정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하지요?" 대답했던 사람이 잠깐 생각하더니 "우선, 차를 멈춰야겠네요." 이 말에 선생님 얼굴에 미소가 슬며시 번집니다. "그렇습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멈추는 게 먼저입니다. 그처럼 우리 마음도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다면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멈춘다. 그러고 보니 현대인은 몸뿐 아니라 머릿속도 마음속도 바쁩니다. 항상 이 일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지, 그리고 현재 어디까지 진척되었는지 점검해야 하지요.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성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명상수행의 첫 번째 과제입니다.

1주일간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명상과 수업의 연속입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있어야 했지만 기자는 1박2일만 지내다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새벽 5시께 산에 가득한 안개와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 아주 깨끗하고 예뻤던 새소리 등. 무엇보다 조용하게 내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했던 참선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것을 해보면 자꾸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모두가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때, 조용히 내 안으로 떠나는 휴가가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 월암스님이 지은 용성선원
-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편안해지고픈 이들 찾아
- 여름·겨울 두 차례 1주일간 머물러

- 도량관리 하시는 혜봉 선생 "명상은 나를 지키는 공부"

명상을 하기 위해 산에 간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무슨 고민있니?" "절에 들어가냐? 스님 될거야?"라며 반 쯤은 농담 같은 혹은 걱정스러운 반응이 돌아온다. 명상과 마음 들여다보기 등은 일상생활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마음도 어떤 상태인지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북 문경 한산사 '행복수업 명상수행학교'에서는 마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이곳에서 수업은 다같이 둘러앉아 명상을 하고, 마음의 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명상수행학교 교장인 혜봉 선생이 각자 상태에 맞는 지도와 조언을 해준다.

한산사는 분명 절이다. 하지만 스님이 없고, 보통 절집의 예의도 없다. 단지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참선을 성실히 하도록 이끈다. 공부방으로 쓰이는 선방의 벽에 지켜야 할 일이 쓰여 있다. 수행학교에 있는 1주일간 항상 잊지말고 새기라는 부탁이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들을 때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말할 때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침묵할 때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는 말은 사랑에 대한 노래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 마음인데 왜 내가 모를까 싶기도 하다. '알아차린다'는 표현에 주목하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모든 의식을 배제하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알아차릴 수 있단다. 과학자처럼 어떠한 개입도 없이 사실만 관찰하라고도 한다.

이 학교에 온 목적도 벽에 붙어있다. '깨어있는 사람이 됩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명상을 통해 본래의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모든 마음의 본성은 나쁘고 좋은 것이 없으며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라는 설명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중심이 제대로 잡히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다. 거창하게도 들리지만 일상생활에서 보기 싫은 사람을 대할 때 유용하겠다 싶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공부방(선방)에서 공양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도착한 다음날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된 명상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을 시간인데, 여기에서는 앉은 상태로 명상을 하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반쯤 졸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마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무척 가볍다. 명상 때 들었던 온갖 잡생각이 커튼이 걷히듯 싹 걷힌 듯하다. 혜봉 선생은 "명상 뒤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 반복이 되면 걱정하던 마음의 총량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간화선이나 명상이라고 하면 스님들의 선문답이 떠올라 어려운 것이라는 오해가 저절로 사라진다.

이 학교를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이번 참가자 20명 중에서는 여성이 대다수다. 일상 생활에서 항상 겪는 불안을 해결하고픈 사람, 가족간 불화로 마음이 불편한 사람, 가족의 추천으로 오게 된 사람 등등. 공통점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편안해지고픈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 중 다섯 번째로 이곳에 온 성영해(49·경남 양산시) 씨는 "우리 가족은 감정 바보다. 딸도 남편도 나도 모두 머리로 완전히 이해가 되어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 몸이 아프다. 이런 나를 이해하려고 참여했다"고 토로했다. 성 씨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소감을 밝혔다.

■생각을 멈추다

	명상수행학교에서는 발우 공양을 하지 않는 대신 큰 그릇 하나에 반찬과 밥, 후식까지 함께 담아서 먹게 한다. 자신이 먹은 그릇은 스스로 설겆이 해야 한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른 자세로 앉는다. 참선의 자세는 다들 알다시피 부처님 다리라는 가부좌, 한 발만 올려놓는 반가부좌가 있다. 다른 여러 자세들이 있지만 초급자에게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양 손을 모으고 있거나 다리 위에 편하게 올려두면 된다.

작은 종소리와 함께 시작된 명상. 입은 다물고 코로만 숨쉬되 그 호흡에 집중하라고 한다. 코로 숨이 들어가고 목으로 내려가 가슴, 배를 거치는 과정에 감각을 집중한다. 어느 정도 집중하다 보니 곁에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 혼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더니 바깥의 새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까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새소리가 또랑또랑하게, 꼭 곁에서 나는 것같다. 내가 있는 곳이 방 안이 아니라 밖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리가 쑤시듯 아프더니 고관절 부위와 허벅지 뒤쪽까지 저려서 견딜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참선이고 명상이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발이 아파 하이힐을 벗어버릴까 싶은 마음처럼 다리를 그냥 풀어서 편하게 앉고 명상을 관둘까 하는 생각이 확 일어난다. 선생님이 왜 감정이, 생각이 일어난다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다. 몸이 아프니 호흡이 덩달아 빨라지고 거칠어진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이거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언제까지 하자고 할 건지, 마침을 알리는 종소리만이 다급하다. 명상 후 자신의 느낌을 적어내게 했다.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파 언제 명상이 끝날까만 생각했다는 글귀에 참가자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그러자 혜봉 선생님은 "그렇게 고통이 심할 때에는 그 부분의 세포에게 사과와 위로를 하라"는 이상한 조언을 했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너를(허리를, 다리를) 마구 써대기만 했구나. 진작 보살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게 사과의 요지다. 처음엔 웃음이 나다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몸이지만 내가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니 그런거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왔다.

■행복수업 명상수행학교

	혜봉 선생(왼쪽)이 직접 차를 내리며 기자에게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학교가 열리는 한산사 용성선원은 월암스님이 지은 곳이다. 1919년 민족지도자 33명과 3·1운동을 함께한 용성스님을 기리기 위해 용성선원이라 이름붙였다. 월암스님은 일반 대중들이 명상을 수행하도록 혜봉 선생에게 전체 도량관리를 맡겼다. 월암스님은 대구 은해사 기기암 선원의 선원장이다. 이곳에서 여름과 겨울 두 차례씩 명상수행학교가 1주일간 열린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이 과정을 수료한 뒤 더 집중적인 명상법을 배울 수 있다. 명상을 배우고자 하는 목적은 누구나 다르다. 하지만 강의를 맡은 혜봉 선생은 "나를 지키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과 여러 일들에 부딛치면서 어떻게 내 마음을 평온하게 지켜낼 수 있을지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공부를 충실히 하면 우리 마음의 본성을 알게 돼 주변의 어떤 일에도 초연하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단기간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아예 머물러 살면서 명상을 배우는 이들도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로 20~30대 젊은 친구들이다.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유종욱(30·경기도 안양시) 씨는 한 번 와보고 자신이 있을 곳이 여기라는 걸 단박에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족하다고 해서 마음이 가득찰 수는 없다. 진짜 마음의 평화, 행복이 뭔지 배워가고 있다. 여기에 머물다가 연극이나 영화에 캐스팅 되면 공연하고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난해 9월 청년명상학교에 첫 참여하면서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다. "권위의식이 전혀 없는 곳이라 외국 친구들도 많이 온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이곳에 다녀간 뒤 내가 잘 지내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며 만족해 했다.

행복수업 명상수행학교 카페(http://cafe.naver.com/happyclassmc), 070-8878-9415


글=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
사진=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