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한국 영화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유혈이 낭자한 스크린을 보면 지금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한국 영화가 포착한 사회적 구조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용의자' '역린' '표적' '끝까지 간다' '하이힐' '우는 남자' '황제를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상업영화들은 장르의 법칙을 기반으로 추격전과 액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고 쫓아오는 자(전문 킬러, 조직폭력배, 왕을 암살하려는 무리)는 총을 쏘거나 폭탄을 터뜨리고 칼을 휘두르며 인물들에게 깊은 외상을 남긴다. 또 다른 악인은 부패한 경찰 무리다. 더 많은 돈을 차지하려고 비리를 저지르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경찰 권력이 상업영화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염증, 불신에 대한 피로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덧붙여 영화의 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단련한 근육질의 남성이다. 그들은 강인한 육체를 가졌고, 한국의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결하는 역할도 일부 수행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임무는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목숨과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려고('역린'), 가족을 지키려고('표적' '끝까지 간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으려고('하이힐'), 버림받은 과거로부터 벗어나려고('우는 남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려고('황제를 위하여') 필사적인 추격전을 감행하며 그 결과 선홍색 피가 난무한 현장이 등장하게 된다.

반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독립영화들은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다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셔틀콕' '도희야' '레바논 감정' '한공주' '10분'에서 만난 현재 우리의 삶은 상업영화가 선택한 도시의 주변부를 떠날 때 가능하다. 바닷가 섬마을을 배경으로 한 '도희야',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셔틀콕', 눈 덮인 강원도에 갇힌 '레바논 감정'은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인물들의 이동과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작은 공동체의 모습이 직간접적으로 한국 사회의 모형도를 드러내고 있다.

'셔틀콕'은 복잡한 가족사를 지닌 소년과 어린 동생이 먼 곳으로 숨어버린 누나를 찾아가는 로드무비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여행은 자꾸만 지연되고 소년은 성장하지 못한다. 소녀 도희가 사는 섬에 여성 소장이 부임하면서 드러나는 공동체의 폭력적인 연쇄구조는 '도희야'에서 목격자인 외부인과 주민의 갈등으로 폭발지점에 도달한다. '레바논 감정'은 죄책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남자와 과거를 지우고 싶은 여자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추적의 구조를 따르는 장르적인 속성과 결합해 있다. '한공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므로 영화의 윤리적인 태도 논쟁을 일으키며 화제가 됐고, '10분'은 20대 청년 비정규직 문제와 함께 자신의 꿈과 직업을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상업영화가 한국 사회를 배경 삼아 육체는 강인하나 정신적으로는 가족이라는 단위에 포획된 남성들을 보여주었다면, 독립영화는 개인의 삶을 충실하게 다루면서도 사회를 향한 성찰의 시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관심을 끄는 사극 액션영화들이 개봉을 앞둔 지금, 퇴행적인 남성상을 뛰어넘으면서 한국 사회를 제대로 조망하는 영화를 기다린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