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첨성대 앞 마당은 월성의 만개한 벚꽃과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리는 유채꽃을 배경으로 '자전거 탄 풍경'을 연출하는 라이더들로 넘쳐난다. 안전장비를 갖춘 라이더와 2인용 자전거를 탄 젊은 연인들이 마주보고 달리고 있다.

대지가 기지개를 활짝 켜면 겨우내 움추렸던 은륜(銀輪)도 잠을 깬다. 그래서일까. 요즘 장소 불문하고 온통 자전거 물결로 넘쳐나고 있다. 한결 따뜻해진 바람을 가르며 벚꽃 개나리 목련 매화 유채꽃 등 봄꽃 허드러진 길을 달리는 기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이 즈음 부산을 살짝 벗어나 자전거 여행을 하기 딱 좋은 곳이 있으니, 바로 '신라 천년고도' 경주다.

■경주는 지금 자전거 천국

	경주 오릉 서쪽 담장길에 개나리 벚꽃이 만발하다.

바로 지금, 경주는 말 그대로 '꽃대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 향기에 매혹된 라이더도 넘쳐난다.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럿 보인다. 젊은 연인들은 2인용 자전거를 사이좋게 타면서 인생의 '참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말 그대로 자전거 천국이다. 봄꽃 만발한 4월의 주말, '영원한 자전거 여행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경주에서 가족과 함께 짧지만 의미 있는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것도 썩 괜찮은 주말나기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찾아간 길이 '삼릉 가는 길'. 경주시 탑동 오릉(五陵)에서 출발해 배동 삼릉(三陵)에 이르는 이 길은 경주남산연구소의 소갯말처럼 '신라의 시작과 끝, 무궁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길'이다. 마을, 절터, 왕릉, 소나무숲, 벚꽃터널, 연못, 대나무밭을 지나며 역사와 문화, 생태가 어우러진다. 되도록 아주 느리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1000년의 그 아득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신라의 시작과 끝 품은 '삼릉 가는 길'

2011년 개설된 '삼릉 가는 길'의 정식 구간은 약 8㎞의 길이다.

서라벌광장 휴게소에서 서라벌대로를 따라 가며 나정교를 지나 첫 삼거리(금성삼거리)에서 왼쪽 오릉 방향으로 꺾어 오릉 서쪽 담장을 따라 간다. 연분홍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허벅지게 반겨 준다. 오릉은 신라 시조 왕인 박혁거세 거서간을 비롯해 2대 남해, 3대 유리, 5대 파사 등 초기 왕들과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부인 등 5명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나정과 함께 신라의 발원지 역할을 하는 유적지다. 문천을 건넌 뒤 황남동네거리에서 우회전, 대릉원 방향으로 들어서면 이윽고 첨성대를 만난다. 맞은 편 월성 언덕 벚나무에 연분홍 꽃들이 만발했다. 그 아래 마당에는 이제 막 노란 유채꽃이 망울을 터뜨리며 절정을 준비한다. 걷는 사람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사이 좋게 길을 비켜주면서 꽃대궐 속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탄생지로 알려진 계림(鷄林)에서 잠시 페달을 멈추고 숲을 돌아보면서 2000년 전 신라 여명기 속으로 상상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으리.

이어서 안압지에 들렀다가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신라능묘 특별전 3 천마총-천마(天馬), 다시 날다' 전시회를 관람한다. 지난달 18일부터 6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에서는 특히 1973년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의 천마문 말다래(국보 207호) 진품이 41년 만에 공개되고 있다. 살아 생전 다시 진품을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안 보면 섭섭하겠다. 다만 진품은 보존을 위해 3월 18일~4월 6일, 4월 29일~5월 18일, 6월 3일~22일 등 세 차례 제한 공개한다는 점을 알아 두자.

■포석정~삼릉 구간 솔향 그윽한 운치의 극치

	포석정~삼릉 구간 비포장 길을 달리는 라이더.

경주박물관과 월성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 '삼릉 가는 길' 공식 출발지인 월정교가 나온다. 월정교는 신라 궁궐 월성의 남쪽을 감싸고 흐르는 문천에 놓인 다리다. 길이 66m, 폭과 높이가 각각 9m인 누각을 갖춘 다리였던 것으로 조사됐고 현재 그렇게 복원된 상태다.

조금 더 가면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천관사지를 지난다. 오릉을 거쳐 오릉네거리로 나와 서라벌대로를 건너 삼릉 방향으로 20m쯤 페달을 돌리면 도로 왼쪽 골목 입구에 '삼릉 가는 길' 지도를 표시한 원형 표지석이 있다. 도로를 버리고 왼쪽 마을길로 들어선다. 남산의 서쪽 자락으로 들어선 셈이다. 시골집 담벽에 첨성대 등이 그려진 벽화와 '삼릉 가는 길'이라는 글씨가 뚜렷하다. 이어서 김호 장군 고택, 신라 건국의 주체가 된 육부촌장의 위패를 모신 양산재,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가 전해지는 나정까지 둘러볼 수 있다. 이어 거대한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지나면 왼쪽 언덕 위에 남산 자락 최대인 창림사지 3층석탑이 우뚝하다.

	오른쪽 언덕 위에 창림사지3층석탑이 보인다.

곧이어 포석정. 신라 제55대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침공을 받고도 연회를 배풀다가 결국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곳이다. 어느새 길은 1000년을 훌쩍 뛰어 넘어 통일신라의 끝으로 점프했다. 포석정에서부터 삼릉에 이르는 후반부 길은 자전거 여행의 운치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지마왕릉을 지나면서 길은 한결 고즈넉해진다. 울창한 소나무와 개나리 등이 길과 어우러진다. 생태연못으로 조성된 태진지를 지나면 비포장 임도가 약간의 경사를 이루며 이어진다. 마침내 종착점인 삼릉. 삼릉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삼릉은 국내 최고의 울창함을 자랑한다는 소나무숲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그윽함의 극치다.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의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곳은 맑은 봄날 자전거 여행을 하며 보낸 '참 좋은 시절'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역시 소나무숲으로 유명한 제55대 경애왕의 능은 삼릉에서 200m쯤 떨어져 있다.


◇ 여행 팁

	적요로운 분위기의 삼릉 소나무숲이 자전거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1, 자가용을 가져갈 경우 주차는 경주TG 인근 경주휴게소 서라벌광장에 하자. 무료다.

2, '삼릉 가는 길' 관련 정보는 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http://www.kjnamsan.org/)에서 미리 내려받을 수 있다.

3,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도 된다. 1인용 자전거 1일 7000원, 2시간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