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다도에 얽매이지 않고 머그컵이나 유리잔 등을 이용, 간편하고 손쉽게 전통차를 즐기는 방법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느낌의 차주전자와 현대적인 느낌의 유리잔에 담은 보이차와 녹차.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이 익숙한 요즘입니다. 더구나 큰 상권은 기본이고 골목길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한 집 건너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커피는 우리 생활 속에 빠르고, 강하게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커피는 단순히 '기호음료'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서 '의사소통의 매개체' '네트워킹'의 대명사로 사회학적인 의미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커피 열풍'으로 말미암아 녹차, 보이차 등 '전통차'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전통차'라고 하면 젊은 층은 물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편견 속에 '다례' '다도'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마련입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전통찻집은 무거운 분위기에 특색 없는 메뉴로 일관된 곳이 많아 젊은 사람들은 입구에 들어서기조차 꺼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분위기만이 아닙니다. 카페라떼, 프라푸치노 등 달고 화려한 커피음료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차의 담백한 맛은 떫거나 밋밋하다고 평가절하되기 일쑤입니다. 건강에 좋고 영양이 풍부한 차의 장점을 알지만 선뜻 손으로,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차(茶)들이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한복을 갖춰입고 어렵기 만한 전통차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간편하고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차 전문가들은 일상 도구를 활용, 차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차맛의 다양함을 느낄 수 있는 블렌딩 기법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다원에서도 각종 차를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티 상품과 도구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품과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 범접하기 어려운 다식 또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들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티하우스인 '오설록'이 최근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부산 중구 광복동에 문을 열고 차 대중화에 나섰습니다.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인테리어, '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색다르고 다양한 음료와 티푸드 메뉴는 우리를 새로운 차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커피에 비해 차를 즐기는 인구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말합니다. "집에서 식구가 함께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가족 사이가 두터워졌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차를 내놓는 주인을 보니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같고 대접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라고요.

3월 중순을 넘겼지만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꽤 차가운 바람이 붑니다. 하지만 따뜻한 봄기운이 서서히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따뜻한 차 한잔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다음 달 5일이면 햇차인 '청명차'가 나오는 시기입니다. 이럴 때 그동안 옆으로 치워뒀던, 혹은 '나와는 맞지 않다'며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차를 가까이해 보는 건 어떨까요. 차는 이미 예전의 딱딱한 모습을 벗고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선택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도 몰라도 이젠 茶 즐긴다

- 다시팩·드립·진액 등으로 시간·공간 제약 없이 마실 수 있는 방법 많아지고
- 블렌딩티·혼합음료·티푸드 갖춘 커피점 못잖은 '티 하우스' 늘어
-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게 돼

■어디서나 간편하게, 그리고 색다르게

	정명 한국육우차문화원 원장(사진 왼쪽)이 다양한 블렌딩 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백한기 기자 baekhk@kookje.co.kr

차를 가까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복잡함이다. 믹스커피나 티백, 음료상품 등 다양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에 비해 전통차는 차주전자와 찻잔, 거름망 등 갖춰야 할 도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간, 시간의 제약이 큰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팩, 드립, 진액 등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이 개발돼 집에서는 물론이고 사무실이나 여행지에서도 손쉽게 마실 수 있다. 정명 한국육우차문화원 원장(동원과학기술대 외래교수)로부터 그 방법을 들어봤다.

다시팩은 가게에서 구할 수 있는 다시팩에 차잎을 넣고 우려먹는 방법이다. 머그잔이나 텀블러 등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마실 수 있으며 빈 텀블러와 다시팩을 가방에 갖고 다니면 외근이나 여행 때도 간편하게 마실 수 있다. 드립법은 드립커피를 응용한 것으로, 필터에 차잎을 넣고 아래에 잔을 놓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주면 된다. 필터를 구입하고 관리하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다면 잔에 걸칠 수 있게 만들어진 일회용 필터도 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시팩에 차잎을 넣어 만든 티백(위 사진). 이동 중에도 편하게 차를 즐길 수 있는 각종 텀블러.

보이차의 경우 진액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진하게 우려낸 보이차 진액을 작은 용기에 담아놓고 따뜻한 물에 희석해 마시는 방식이다. 여행 때나 음식점에서도 편하게 차를 즐길 수 있다. 직접 진액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진액 상품을 이용해도 된다.

차의 약간 쓰고 떫은 맛은 차에 대한 거리를 두게 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이런 경우 스트레이트티에 레몬을 띄우거나 매실액을 약간 섞어 마시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봄에는 녹차에다 매화나 목련꽃을 띄워 마시면 맛과 함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특히 남성들은 와인이나 양주 등을 한 방울 떨어뜨려 마시면 색다르다. 이 외 생강, 박하, 계피, 귤피, 허브 등을 넣어 마시면 건강에도 도움된다.

이와 함께 차와 차를 섞는 블렌딩도 세상에 없는 혼자만의 차를 만들 수 있어 흥미롭다. 특별한 제약 없이 본인의 입맛에 맞게 몇 가지 차를 섞어 우려낸다. 또 한 가지 차를 우려내 마시다 어느 정도 맛이 옅어지면 다른 차를 첨가해 새로운 맛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 원장은 "차는 차잎의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등 6가지로 분류되는데 발효도가 비슷한 것끼리 블렌딩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흑차에 속하는 보이차는 보이차와 섞고, 발효도가 낮은 녹차와 백차를 섞는 방식이다.

	잔에 걸칠 수 있게 나온 티필터와 드립 도구를 이용해 차를 우리는 모습.

■커피점 아닌 '티하우스'로

	부산 중구 광복동 오설록 티하우스에서 대학생들이 차음료와 티푸드를 즐기고 있다.

오설록 티하우스 광복점은 우선 커피점 못지 않은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는다. 총 2층으로 꾸며진 매장은 1층에는 다양한 블렌딩티의 향과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입구에 위치한 덖음존에서는 매장에서 직접 덖은 덖음차를 시음할 수 있으며 스트레이트티는 물론 각종 블렌티를 시향할 수 있는 시향존도 마련돼 차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 2층은 목재 가구와 현무암을 상징하는 짙은 그레이 컬러로 꾸며져 있으며 매장 중간에는 녹차나무가 있어 이채롭다.

실제 음료와 티푸드를 주문해 맛보면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블렌딩티와 혼합음료, 베이커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삼다연 제주영귤 잎차를 우유와 함께 끓여낸 제주영귤밀크티는 녹차의 깊은 맛과 우유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프레시유자그린티는 녹차 슬러쉬에 은은한 유자향의 셔벗이 곁들여져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차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프레도그린티는 진한 녹차로 만든 쉐이크에 녹차아이스크림을 올려 프라푸치노에 대적할만한 풍부한 맛을 선사한다. 이 외 그린티치즈티라미스와 그린티롤케익 등 베이커리류도 부드럽고 달콤하다.

이 같은 변신에 부응이라도 하듯 오설록은 개점한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예상보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평일 오후였지만 매장 안에는 20, 30대 젊은이들로 붐볐고 50, 60대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단체 외국인 손님들까지 한 켠에 자리잡고 차와 티푸드를 즐기고 있었다. 대학생 이민지(21·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씨는 "평소 차를 잘 마시지 않는데 여기 와서 차음료와 티푸드를 먹어 보니 차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며 "이런 음료와 분위기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차맛 돋우는 다식 한 조각

	사진 왼쪽부터 오설록의 주요 메뉴인 프레시 유자그린티와 프레도그린티, 삼다연영귤밀크티, 그린티롤.

일반적으로 차와 함께 먹는 다식은 우리나라 고유한 과정류의 하나다. 곡물, 꽃, 한약재, 종실류, 견과류를 가루내어 꿀과 조청을 넣고 반죽해 박아낸다. 하지만 과거처럼 굳이 전통 다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케익이나 쿠키 등 빵류, 제철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곁들이면 된다. 다만 차의 본성을 잃지 않고 차맛을 돋워주는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녹차나 백차는 향과 맛이 약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다식도 담백하거나 맛이 약한 게 좋다. 전통적으로는 송화다식이나 흑임자다식, 콩다식 등이 어울리며 과일푸딩도 괜찮다. 이들 차는 발효도가 낮아 찬 기운이 강하므로 생강과 같은 따뜻한 성질의 다식이 더 어울린다. 황차(약발효차)는 땅콩이나 호박씨, 깨와 같은 견과류로 만든 다식이 제격이다. 청차는 향이 있는 다식이나 기름기 있는 다식을 피하고 흑차는 떡이나 생과일, 말린 과일, 육포 등이 어울린다.


#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손쉬운 다식

◇말린과일

	사진 위쪽부터 말린과일, 과일정과, 야채 분말다식.

집에 있는 사과나 배, 오렌지, 감, 키위 바나나 딸기 등을 가정용 건조기에 말린다. 설탕이나 꿀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상태의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어린이도 먹을 수 있다.

◇과일정과

사과(푸른사과, 붉은사과), 배, 참외, 등을 깨끗이 씻어 껍질째 자른다. 설탕시럽에 당침한 뒤 건조기나 채반에 말린다. 약간의 수분이 남아있을 때 꽃모양으로 만든다

◇야채 분말다식

집에 있는 야채나 과일을 건조기에 바짝 말린 뒤 분쇄기에 곱게 간다. 꿀과 물엿을 적당히 넣고 반죽해 모양틀에 비닐랩을 깔고 찍어낸다.

◇호두정과

깐 호두는 끓는 물에 끓여준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 체에 받쳐둔다. 물엿, 설탕, 물을 잘 저어서 끓인다. 끓는 동안에는 젖지 않고 미리 씻어둔 호두를 넣는다. 그런 뒤 잘 저어 어느 정도 끈기가 생길 때까지 둔다. 체에 받쳐 시럽을 내리고 약 10분 정도 말린다. 튀김 기름을 준비해 원하는 색깔이 될 때까지 튀겨낸다.

◇보이차계란

먼저 계란을 살짝 삶는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냄비를 흔들어 계란껍질이 깨지게 한다. 보이차 잎 (우려먹은 보이차 잎을 사용해도 무방)을 넣어 계란껍질 틈 사이로 찻물이 스며들도록 다시 끓인다. 콜레스테롤 함량을 줄이고 색다른 맛이 나서 간식으로도 좋다.


◆버릴 게 없는 차 잎·찌꺼기

- 비린내·누린내 제거 효과…여드름 등 피부미용에 좋아

◇차잎 활용 방법

●육류 및 생선류 요리 때 넣으면 비린내·누린내 제거. 특히 수육 또는 멸치 볶음에 사용

●입욕 또는 족욕 때 망에 넣어 사용하면 살균·혈액순환 효과

●세안 또는 얼굴 팩으로 사용하면 여드름 제거

●냉장고와 차량 내 비치하면 냄새 제거

●냄비나 프라이팬에 차잎과 물을 넣고 끓이면 냄새 제거

●김밥 만들 때 우린 찻잎을 조금씩 넣어도 색다른 맛

●소금과 깨, 참기름 넣고 나물로 무쳐먹을 수도 있음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은 우려낸 차잎을 사용

글=조민희 기자 core@kookje.co.kr
사진=백한기 김성효 기자 baekh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