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께 건져올린 멍게를 당일 낮 12시에 장만해 만든 멍게회. 씨알이 굵어 입속에 살이 가득 찬 느낌이고, 특유의 향과 맛이 아주 진하다(왼쪽). 멍게를 잘게 썰어 비법 양념(?)을 한 뒤 냉장고에서 1주일간 숙성해 만든 멍게비빔밥. 콩가루와 김, 새싹채소가 들어가 씹는 맛과 함께 고소함이 특징이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지만 설렘은 항상 그대롭니다. 이번 봄은 뭔가 새로우리라, 올해는 남다르리라 자신도 모르게 바라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봄이니 맞이도 조금은 색다르게 하고 싶습니다. 봄은 꽃이 피는 향긋한 계절로 생각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입과 코로 맞이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멍게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입속에 침이 저절로 고이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봄을 제대로 대접하기 위해 경남 통영으로 떠났습니다.

사실 멍게는 그다지 아름다운 외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윗부분은 붉은 뿔이 뾰족뾰족하고, 짤막하면서 동그란 몸통 아래는 뿌리같은 것이 뻘을 잔뜩 묻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봐선 진가를 모르는 법이죠. 그 속에는 진하고 살캉거리며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향긋함과 달콤함이 있습니다. 윗부분의 뿔도 잘라서 먹으면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좋습니다. 요즘은 멍게껍질을 이용한 상품도 있다니 그야말로 버릴 게 없습니다.

물에서 건져 올린 껍질 그대로의 멍게는 통멍게라고 합니다. 껍질을 깐 것은 알멍게라고 한다네요. 맛있고 싱싱한 멍게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답니다. 입수공과 출수공이 있는 뿔처럼 뾰족뾰족한 부분이 붉고 진할수록 좋답니다. 몸통은 주름없이 통통하다 못해 빵빵해 보여야 명품이랍니다. 실한 멍게는 어른 주먹만 하더군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수륙마을에서 어민들이 막 수확한 멍게를 크기별로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멍게 양식은 굵은 밧줄에 멍게의 종패를 이식해 키우는 과정입니다. 밧줄을 매달아 두면 이 줄에 멍게들이 달라붙어 자라납니다. 종패를 붙여 양식하니 줄에는 멍게 외에 다른 이물질들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줄에 달라붙은 멍게를 떼내는 기계도 있습니다. 멍게 탈락기라고 하는데, 굵은 밧줄을 좀 더 가는 밧줄에 연결해 도르레를 작동시키는 듯한 원리입니다.

이 굵은 줄을 끌어당기면 쇠로 만들어진 날이 돌아가면서 멍게들을 줄에서 떼어냅니다. 얌전하던 멍게들에 압력이 가해지니 마치 분수처럼 물을 뿜기 시작합니다. 멍게의 영어 이름이 'Sea Squirt' 입니다. 분출하다(squirt)는 단어가 아주 적절합니다. 아이들의 성능 좋은 물총처럼 몸속의 물을 쫙쫙 쏴대니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떼어낸 멍게는 크기별로 분류합니다. 뗏목 위에서 5명의 여성이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로 나누더군요. 뗏목이 순식간에 멍게로 가득차 마치 멍게밭처럼 보였습니다. 어른 주먹만한 실한 멍게를 골라내고 나머지 작은 것들은 껍질을 까서 경매로 넘긴답니다.

경매에서는 통멍게는 취급하지 않고 알멍게만 다룹니다. 뗏목 위의 실한 통멍게들은 뻘을 씻어내는 샤워를 거친 뒤 물차에 담겨 전국 각지로 배송됩니다.

멍게가 어떤 음식과 궁합이 맞는지 물어봤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멍게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 정두한 조합장은 막걸리와 멍게회의 조화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알려줬습니다. 달큼하면서도 톡 쏘는 막걸리에 멍게의 쌉싸래한 맛이 합쳐지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멍게회와 막걸리를 같이 먹진 못했지만 그 맛은 상상만으로도 느껴집니다. 코와 입이 한번에 즐거워지는 황홀한 경험이 될 겁니다.

아, 오늘은 반드시 멍게를 한 접시 하고야 말겠습니다. 초장도 필요없습니다. 바닷물 속에 있었던 짭조름함으로 혀를 적시며 향을 들이마시고야 말겠습니다. 이번 봄은 멍게처럼 진하고 향긋하게 시작될 거라는 기대도 잊지 말고 말입니다.


- 통영·거제 국내 멍게 생산량 70%

#생 멍게

- 통통 두툼한 살 입 속에 한가득
- 첫 맛은 강한 향에 놀랄 지경…달큰하다가 쌉싸래한 뒷 맛

#멍게비빔밥

- 잘게 썬 멍게 일주일간 숙성
- 밥 알 하나하나 노란색 되도록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싹싹 비벼야
- 참기름·파만 넣는게 전통식, 요즘은 새싹채소·양배추도 넣어

#멍게젓갈

- 옅은 소금물에 살살 씻은 멍게, 소금 뿌려 13일간 숙성시킨 후
- 참기름·고춧가루·마늘 넣어…먹기 직전에 살짝 양념해 먹어

통영과 거제는 국내 멍게 생산량의 7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올해 멍게 출하는 평년보다 한 달 앞당겨진 데다 수확량도 많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따라서 멍게를 즐기는 사람들은 좀 더 푸짐하게 만나볼 수 있다. 정두한 멍게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장은 "한창 멍게를 딸 시기가 되면 이렇게 바다 위에 띄우는 뗏목이 80~90군데 정도 된다"고 말했다.

취재 당일 찾은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수륙마을의 멍게 선별장 역시 바다 위에 띄운 뗏목이었다. 좁고 흔들리는 배다리를 걸어가자 멍게를 까는 손길이 분주하고, 멍게 특유의 냄새가 확 풍겼다. 봄비가 제법 강하게 내려 멍게향이 더욱 진했다. 유석구 멍게조합 이사는 "녹색 바구니 하나에 멍게가 50㎏ 들어간다. 오전, 오후 작업을 하면 하루에 60~70 바구니 정도를 수확하니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바구니 1개당 16만~17만이었는데 올해는 10만 원선으로 가격이 꽤 떨어졌다.

■한입 가득 봄의 향

	방금 손질해 껍질을 깐 멍게의 자태.

막 걷어올린 멍게를 맛보기 위해 선별 작업장에서 승용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영운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들물횟집(055-645-4798)에서 껍질만 까고 썰지 않은 멍게는 젓가락으로 들었을 때부터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살이 얼마나 두툼한지 입 속이 가득 찼다. 첫 맛은 강한 향에 달큰함이 느껴지고 뒷맛은 쌉싸래함이 남았다. 방금 깐 멍게일수록 그런 맛이 강하다.

꽉 착 공처럼 부풀어 있는 것은 그 살이 어찌나 통통한지 깜짝 놀랄 정도다. 바다에서 금방 딴 것이라 싱싱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살이 어른 검지손가락보다 더 두꺼워 입안이 꽉 찬 느낌이다. 살캉살캉 씹힐 때마다 진한 맛에 혀가 놀랄 지경이다. 먹고 나서도 입 속에 향기가 남아 있었다. 먹은 뒤에도 침을 삼킬 때마다 멍게향이 올라왔다. 이곳에서 멍게를 손질하던 최옥남 대표는 "멍게는 출수공과 입수공이 있는 윗부분을 잘라내고, 몸통에 칼집을 내면 저절로 쏙 까진다. 그리고 살 부분에서 뻘이 든 내장만 살짝 자르면 끝난다"고 했다.

생 멍게의 신선함을 느꼈다면 이번엔 멍게 비빔밥으로 봄을 느낄 차례다. 멍게 비빔밥에는 잘게 썰어 1주일간 숙성시킨 멍게가 들어간다.

최 대표는 "멍게 비빔밥은 보통 비빔밥과 다르게 비벼야 한다. 숟가락으로 그야말로 싹싹 야무지게 비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밥 알 하나하나에 멍게가 잘 녹아들어 밥알이 노란색이 되도록 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 대표의 말대로 해보니 멍게는 마치 버터처럼 밥알을 둘러싸고 노란색만 남겼다. 멍게의 향은 연하게 있었지만 특유의 쌉싸래함이나 비린 맛은 전혀 없어 신기했다. 최 대표는 "우리 집만의 비법 양념을 냉장고에 넣고 1주일간 숙성한다. 그 과정에서 비린 맛과 쓴맛이 사라진다"고 자랑했다.

멍게 비빔밥 속의 멍게는 통째로 넣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잘게 썰어 넣는다. 어떤 곳에서는 얼려 두었던 것을 쓰기도 한다. 차가운 것이 뜨거운 밥과 조화가 잘 될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뜨겁고 찰진 밥에 녹아든 멍게는 그야말로 고소하다. 멍게 비빔밥과 잘 어울리는 채소는 새싹채소나 양배추를 가늘게 썬 것이다. 아삭아삭한 맛을 더 살려주고 씹히는 재미도 주기 때문이다.

	알멍게에 참기름, 고춧가루, 마늘, 풋고추 등을 넣어 살짝 버무린 멍게젓갈. 숙성시켜 먹으면 감칠맛이 더하다.

최 대표는 "본래 통영에서는 멍게에 참기름을 약간 넣고 다진 파를 넣어서 먹었다. 간장이나 다른 양념없이 간단하게 비벼먹던 것이 지금은 통영의 대표 요리로 자리잡았다. 그때는 채소를 따로 넣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자신만의 색깔로 다양하게 먹는다"고 말했다.

멍게젓갈은 숙성시켜서 먹고 무침처럼 양념에 무쳐서도 먹는다. 멍게젓갈을 만드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멍게를 옅은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썬 뒤 소금을 뿌려 13일간 숙성하면 멍게젓갈이 된다. 먹기 직전에 참기름, 고춧가루, 마늘을 넣고 살짝 버무리면 끝이다. 취재 당일에는 멍게를 금방 썰어 양념에 살짝 무쳐 낸 것을 맛봤다.


◆멍게는 왜 통영에서 잘 될까

- 美 FDA 승인받은 청정해역 통영·거제 바다, 평균 수온 7~10도 유지…조류·수심, 양식에 딱

	바다 뗏목 위에서 선별한 통멍게에 붙어있는 뻘을 바닷물로 씻어내고 있다.

통영·거제 바다는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청정해역이다. 그리고 수온이 멍게 생장에 가장 좋은 7~10도 정도로 유지된다. 평년 2~3월 통영·거제 바다의 평균 수온은 7~8도였는데, 올해는 9~10도로 약간 높아 일찍 출하하기 시작했다. 조류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아 멍게가 잘 자란다. 바다 수심이 평균 10~20m인 점도 멍게양식에 딱 좋다. 멍게는 남해안에서 1월부터 5월 말까지 출하된다. 늦으면 6월 중순까지도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는 강원도 쪽에서 나온다. 요즘은 잡자마자 급랭한 것을 대도시 특급호텔에 1주일에 300인 분씩 보내고 있다. 봄을 맞아 멍게비빔밥의 인기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껍질부터 살까지 버릴 게 없다

- 버렸던 울퉁불퉁 껍질, 식이섬유 함유 풍부해
- 멍게빵·멍게어묵 등 다양한 식품으로 개발

멍게를 먹으려면 반드시 껍질을 까야 한다. 이런 껍질을 과거에는 다 버렸다. 하지만 껍질에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껍질을 이용한 상품이 나왔다. 식이섬유는 식물·채소의 질긴 부분과 버섯류에 들어있으며 식물성과 동물성으로 나뉜다. 동물성은 게의 껍데기에 있는 것과 멍게에 함유된 것이 있다. 식이섬유에 주목한 것은 인체의 장내 미생물 활성화와 영양 흡수 조절, 변비 개선에 효과가 있어서다. 특히 멍게의 식이섬유는 장내 세균 활동에 도움을 주고, 위 점막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통영에서는 멍게의 식이섬유 성분을 추출해 넣어 만든 멍게빵도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통영의 (사)멍게전략식품사업단은 멍게어묵을 시작으로 소포장된 비빔밥용 멍게, 양념멍게, 멍게식해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글=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
사진=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