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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 편집국장 신문은 지식의 숲<14>노벨상 프로젝트…시행착오를 축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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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리나라의 노벨 과학상 수상은 물 건너갔습니다. 생리의학, 물리, 화학 등 세 분야에 주어지는 노벨 과학상은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꼽힙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슈쿠로 마나베(90)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일본인 수상자는 물리학상이 12명으로 가장 많고, 화학상 8명, 생리의학상 5명 순입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노벨 과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해마다 10월 초 노벨상 발표가 끝나면 관련 분석기사나 기획기사가 단골로 등장합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고, 응용과학에서 벗어나 기초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10월 5일 자 2면


   
10월 6일 자 2면


   
10월 7일 자 4면


●노벨 과학상 연구부터 수상까지 31.2년 소요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5, 6월 펴낸 ‘노벨 과학상의 핵심연구와 수상 연령’과 ‘노벨 과학상 수상자 통계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79명(물리학상 27명, 화학상 26명, 생리의학상 26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연구 활동과 수상까지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평균 37.9세에 핵심연구를 시작하고 55.6세에 연구가 완성되며 69.2세에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핵심 연구 착수부터 수상까지는 평균 31년의 긴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최근에는 수상자가 고령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계 미국인 슈쿠로 마나베 교수는 1931년생으로 올해로 만 90세. 마나베 교수는 1960년대 연구를 시작했고 1967년 발표한 논문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 증가와 지구 표면 온도의 상승 간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50여 년 만에 노벨상위원회의 인정을 받은 겁니다.

●축적의 5대 전략
대통령 경제과학특보인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쓴 『축적의 길』(지식노마드)을 보면 도전적 시행착오를 줄이는 5가지 전략과 4개 열쇠가 소개돼 있습니다. 이 책은 산업기술 분야의 혁신과 축적에 초점을 맞췄지만 노벨 과학상과 관련이 깊은 기초과학 분야뿐 아니라 법조 교육 문화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축적 전략을 마련하는 데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잘 숙성된 술이 맛과 향이 뛰어나듯 우리 사회 전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축적의 핵심을 시행착오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

   
축적의 길
축적 전략 1. 시행착오 경험을 담는 궁극의 그릇, 고수를 키워라.
저자는 한국 산업계의 결정적 아킬레스건은 취약한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라고 지적합니다. 초고층 빌딩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빌딩을 지었다고 자랑하지만 중요한 개념설계는 대부분 글로벌 선진기업의 몫이었습니다. 건축설계는 미국 KPF사가 담당했고 완공 시 75만 t에 달하는 건물 하중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토목설계는 영국의 ARUP사가 주도했습니다. 초속 80m의 강풍을 견딜 수 있는 풍동설계 컨설팅 및 검증은 캐나다 RWDI사가 맡았습니다.

개념설계 역량은 교과서나 매뉴얼에 없습니다. 시설이나 장비 구축 같은 하드웨어를 갖춘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직접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고, 적용하고, 다시 고쳐보는 경험을 반복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개념설계 역량은 사람이 시행착오의 경험으로 오랫동안 축적해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사회적으로도 자본과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축적 전략 2. 아이디어는 흔하다. 스케일업 역량을 키워라.
저자는 아이디어는 흔하고 스케일업 과정을 버티지 못하면 기가 막힌 아이디어도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인가수를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과정의 위험과 투자를 무릅쓰지 않으면서 뉴페이스가 없다고 탓하는 연예기획사와 같다고 합니다. 빠른 대응이 아니라 집요한 버팀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논문, 특허,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구하면 개념설계에 관한 고민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축적 전략 3. 시행착오를 뒷받침할 제조 현장을 키워라.
생산, 제조 현장이 없어지면 개념설계 역량도 사라집니다. 미국 일본 독일 같은 기술 선진국들과 글로벌 챔피언 기업들이 기를 쓰고 첨단 공장을 자국 내에 만들거나, 심지어 개발도상국으로 나간 공장을 다시 들여오는 ‘리쇼어링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지식집약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인 개념설계는 국내에서 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개발도상국 기업에 맡기는 국제분업 방식의 OEM 모델은 정답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축적 전략 4. 고독한 천재는 없다. 사회적 축적을 꾀하라.
혁신이 성장하는 과정은 누적적 조합의 과정입니다. 천재 혹은 놀라운 혁신은 아무 곳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변에 축적된 지식이 있을 때 탄생합니다. 기술 선진국의 참모습은 각 분야에서 오랜 시행착오의 경험을 축적한 고수들이 모여 있다는 점입니다. 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혁신적 조합이 생기고, 이 조합의 결과가 다시 다음 단계 혁신적 조합의 재료로 활용되면서 혁신은 누적적으로 진화합니다. 선진국이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회 전체의 축적을 꾀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축적 전략 5. 중국 경쟁력의 비밀을 이해하고 이용하라.
저자는 중국을 우리의 생산공장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그 잠재력을 정확히 읽어내고 이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중국발 개념설계의 비밀은 넓은 내수 시장, 즉 공간의 힘으로 시행착오를 빠르게 축적하면서 개념설계 역량을 기르는 데 필요한 시간을 압축한다는 데 있습니다.

●축적의 4대 열쇠
저자는 우리 사회가 축적의 길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네 가지 열쇠를 제시합니다. 첫째, 축적의 형태 측면에서 ‘고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시행착오의 귀한 경험이 결국 사람에게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그간 자본 투자와 매뉴얼 학습, 벤치마킹에 치중되어 있던 관점을 전면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축적의 전략 측면에서 ‘스몰 베팅 스케일업 전략’을 모든 의사결정의 기본 틀로 삼아야 합니다. 스몰 베팅 스케일업 전략은 하나의 개념설계가 탄생하는 과정은 전형적으로, 여러 번 소총을 쏘면서 매번 쏠 때마다 과녁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체크한 다음 쏘는 방향을 조금 조정한 뒤 다시 쏘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과녁에 접근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벤치마킹을 바탕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분야와 아이템을 신중하게 선택한 뒤 일거에 투자하고, 조기에 수익을 창출하는 전형적인 ‘빅 베팅 전략’에서 벗어냐야 할 때입니다.

셋째, 축적을 뒷받침할 사회시스템 측면에서는 ‘위험공유 사회’가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야 합니다. 도전적인 시행착오의 경험이야말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재이고, 따라서 그 위험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같이 나누어 감당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넷째, 문화의 측면에서 ‘축적지향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현재 실행지향의 틀이 깊이 각인된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품어주고, 장기적으로 축적을 장려하는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산업사회 구성 모두의 동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시간을 두고 축적의 길을 걷는다면 머지않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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