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위쪽 러시아 극동지역의 악마문 동굴. 아래 작은 사진은 이곳에 발견된 신석기 시대 고대인의 두개골. 유니스트 게놈연구소 및 국제연구팀 제공

-러시아 극동 악마문 동굴인 분석
-현대 한국인 게놈변이 정보 증명
-기원·역사적 이동 실마리 제공

77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게놈(유전체)을 해독해 현대 한국인의 유전적 뿌리를 밝힌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이 연구는 한국인과 동아시아인의 기원 및 이동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는 영국 러시아 독일 등 연구팀과 함께 두만강 위쪽 러시아 극동지역에 있는 악마문 동굴에서 발견된 7700년 전 동아시아인 게놈을 해독하고 슈퍼컴퓨터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1일 밝혔다. 이 연구는 이날 미국의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9000년부터 7000년 전까지 거주했던 악마문 동굴인 5명의 뼈를 확보해 여기서 추출된 DNA로 게놈을 해독했다. 분석 결과 악마문 동굴인은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가운데가 움푹 패 있는 삽 모양 앞니(shovel-shaped incisor) 유전자를 지닌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현대 동아시아인의 전형적인 유전 특성을 보였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와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악마문 동굴인과 현존하는 아시아의 수십여 인족(ethnic group)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을 계산해냈다. 그 결과 악마문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과 현대 베트남,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인이 가장 잘 표현됐다. 한국인의 뿌리는 수천 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구성됐음을 방대한 게놈 변이 정보로 증명한 셈이다.

현대 한국인의 실제 유전적 구성은 두 계열이 혼합된 흔적을 지녔으면서도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다. 이는 수렵채집, 유목하던 북방계 민족보다 정착 농업을 하던 남방계 민족이 자식을 더 많이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인은 수만 년간 북극, 서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하다가 농경이 본격화된 1만 년 전부터 남중국계 사람이 더 빨리,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이 현상의 하나로 한반도에서 북·남방계의 혼합이 일어났지만 현재의 유전적 구성은 대부분 남방계라는 큰 그림이 완성됐다.

박종화 유니스트 게놈연구소장(생명과학부 교수)은 "이는 유전자의 이동뿐만 아니라 수천 년간의 실제 역사와도 일치한다"며 "한 줄기의 거대한 동아시아인 흐름 속에서 문명의 발달이 작용해 작은 줄기의 인족들 발생과 혼합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