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기심 가득한 '괴짜 의사'
- 내면의 형상·아름다움 궁금해
- 사람부터 사물까지 찍어 색칠
- 의학과 과학 융합된 예술 탄생

- 어린시절 용두산 망원경으로
- 태양 흑점 보며 '상상의 날개'
- 다양한 경험이 창의성 키워

뼈만 흑백으로 나와 차갑다고 느껴지는 X레이 사진에 감성과 색을 불어넣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의사가 있다. 주인공은 X레이 아트를 개척한 정태섭(63)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X레이 아트는 의료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X레이를 활용해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인체와 사물의 내부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 영역이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도 '해바라기' '언약' '장미의 영혼' 등 X레이 아트 작품 4점이 등장했다.
그에게는 대학교수라는 직함 이외에 X레이 아티스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부회장, 새 지폐에 우리 과학자(장영실) 얼굴 모시기운동 추진위원장, MBC 어린이 과학프로그램 '아하! 그렇구나'의 '아하 박사님' 등 다양하게 따라 다닌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 의사'라고 부른다.

그는 지난해 11월 8일~12월 18일 국립부산과학관에서 '뢴트겐의 속 보이는 세상-정태섭 X레이 아트전'(본지 지난해 12월 2일 자 18면 보도)을 연 데 이어 지난 8일 오후 1시30분 국립부산과학관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특강에 초청됐다. 특강 주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의적 발상 따라 하기'.

X레이 아트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정 교수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행동과 표현은 외형으로 보여지죠. 외형을 탈피해 내면의 형상, 진정한 아름다움이 늘 궁금했어요. 2006년 대학교수로 살며 반복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날 겸해서 환자만 찍던 X레이로 다른 것을 찍어봤어요.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X레이 사진으로 표현하려고 나뭇잎을 문 사람의 X레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는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꽃, 소라 껍데기 등 갖가지 사물을 X레이로 찍어 색칠하고 여러 X레이를 이어 붙이는 등 변화를 줬다. 이렇게 탄생한 X레이 아트에 미술계에서도 작품성을 인정했다. 영국과 홍콩에 기반을 둔 소버린 예술재단은 2014년 '아시안 아트 프라이즈' 30인에 정 교수를 선정했다.

그는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엉뚱하게 시도하다 보니 X레이 아트를 개척하게 됐죠. X레이 아트는 세계 최초의 의학과 과학, 미술의 융합이 빚은 창조물입니다. 덕분에 제 작품 10점이 초등학교 과학교과서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렸어요."

그는 또 "아이들은 스마트폰 및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지 말고 학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추억을 쌓아라"고 조언했다. 정 교수의 호기심을 키워준 이는 부산 경남공고 교장이었던 아버지였다. 정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 살았다. 그는 "미술 교사를 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회상했다. "어른이 되어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커다란 망원경으로 태양 흑점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섯 살 때의 제 모습을 만났어요. 따뜻한 봄날, 아버지와 함께 나들이 간 부산 용두산공원에는 망원경 하나를 세워놓고 해와 달을 보여주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망원경 높이가 어른 키에 맞춰 놓아 제대로 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환히 빛나는 태양 속 흑점이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줬어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과 함께 말이죠."

그는 "차가운 느낌의 X레이 사진을 싫어하는 환자들이 X레이 아트 작품을 보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X레이 이외에 MRI, CT, 초음파 같은 의료장비를 활용해 의학과 예술의 융합을 확대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소품으로 등장했던 정태섭 교수의 X레이 아트 작품 '장미의 영혼' '언약' '그대와 축배를'.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