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온호 승선자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아라온호우측에 북극곰이 출현했습니다!"

23일(현지시간) 북극 축치해를 항해 중인 우리나라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선교(船橋)로부터 최한샘(23) 삼항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내에서 저마다 작업 중이던 연구원들은 이 안내방송을 듣자마자 재빨리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분주하게 갑판으로 향했다.

북극해는 여름을 나는 중이기는 하지만, 기온은 0도 정도.

추위 속에서도 연구원들은 북극곰의 모습을 놓칠까 봐 실내복 차림 그대로 뛰쳐나왔다.

여기저기서 "정말 북극곰이다!"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고 하나같이 휴대전화나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북극곰의 모습을 담았다.

북극곰은 10여 분간 아라온호 앞에 펼쳐진 해빙에서 좌우를 큰 보폭으로 오가며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옮겼다.

이 북극곰 근처에는 핏자국과 먹다 남은 동물의 뼈가 있어 막 식사를 마친 듯했다.

북극곰은 간혹 고개를 들어 아라온호와 갑판 위의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배 쪽을 바라봤다.

북극곰은 이어 물속으로 뛰어들어 힘차게 헤엄을 쳤고, 멀리 떨어져 있던 해빙에 올라타 유유히 사라졌다.

아라온호의 북극 항해는 이번이 네 번째로, 해마다 딱 한 차례씩 북극곰과 마주쳤다.

한 차례당 수개월간 북극해를 탐사하더라도 북극곰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2010년 첫 북극해 탐사 때는 아라온호에서 띄운 헬기에서 해빙을 관측하던 중에북극곰을 볼 수 있었고, 2011년에는 북극곰이 항해 중이던 아라온호 바로 앞까지 다가오기도 했다.

북극해 얼음이 많이 녹았던 지난해에는 항해가 거의 끝날 무렵 북극곰이 길이 4m 정도의 유빙 위에서 지친 듯 누운 모습으로 목격됐다.

이번에는 미국 알래스카주 놈에서 출항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북극곰이 나타나자국적을 불문하고 연구원들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소영(34) 극지연구소 연구원은 "알래스카 놈에서 출항해 연구 해역에서 탐사를 시작한 첫날 북극곰을 보게 돼 반갑다"며 "지구온난화로 해빙이 많이 줄고 물개 같은 먹잇감도 감소한 상황이라 이번에는 북극곰이 먹이를 먹고 난 듯한 흔적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마음이 덜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해빙 상황을 보니 당초 예정된 연구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되지만, 연구해역 탐사 첫날부터 북극곰을 만난 것처럼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서명곤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