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표트르 궁전은 그 화려함과 장대함으로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러시아의 역사는 3000년 전 흑해 북부의 평원에서 살았던 킴메르족으로부터 비롯됐다. 아시아 최초의 기마 유목민족인 스키타이는 기원전 700년께 러시아를 정복했다. 그러나 스키타이는 사르마트족의 말발굽 아래 무릎을 꿇었고 그 뒤를 이어 고트, 훈, 아바르, 카자르족의 침략을 받았다. 9~10세기 사이에는 러시아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바이킹족의 한 무리인 루스족이 영토를 통치하게 되면서부터다. 그후 타타르족은 200년 이상이나 러시아를 지배했다. 1370년 이반 1세가 타타르족을 물리치고 제국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반4세 때부터는 로마제국의 황제와 같은 의미인 차르시대가 열렸다. 이때의 광포한 역사는 한 편의 드라마이자 소설이다.

로마노프왕조의 표트르 대제 역시 비극적인 유년기를 보냈다. 10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저능아인 이복동생과 공동 차르가 됐다. 그는 사악한 권력 다툼을 보면서 성장한다. 크렘린궁의 회랑에서 일어난 살인극을 목격하기도 했다. 24살 때 동생이 죽자 비로소 명실상부한 러시아의 차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270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을 돌며 선진문명을 배워 실질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1700년 나르바 전쟁에서 스웨덴에 대패한 것을 계기로 칼이나 창과 같은 원시무기를 영국제 화승총으로 바꾼다. 마침내 1709년 러시아를 침략한 스웨덴에게 참혹한 복수전을 벌이며 스웨덴을 궤멸시킨다. 바로 풀타바 전쟁이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표트르는 유럽으로 향하는 발트해를 장악했다. 그는 핀란드만으로 흘러드는 네바강 하구 습지에 항구도시를 만든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건축가와 기능공들을 불러들여 빠르게 건설을 추진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골 위에 도시를 만들었다'는 악명을 남기며 탄생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볼거리를 가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화와 예술의 메카다. 네바강을 중심으로 65개의 강과 연결되어 있고 100개가 넘는 섬을 품었다. 강을 잇는 다리만 365개에 이른다. 물의 도시 베니스에 필적할 만하다.

표트르 대제는 물에 빠진 뱃사공을 구하면서 얻은 감기로 시름시름 앓다 1725년 5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황제의 가장 어이없는 결말이다. 표트르 사망 이후 나무로 만들어졌던 도시는 화강암 도시로 변모한다. 에카테리나 2세에 의해서였다. 그녀는 궁전을 호화롭게 꾸몄다. 바로크풍으로 장식된 궁전은 네바강을 따라 건설됐다. 1050개의 방과 1800개가 넘는 창문을 가진 230m 길이의 겨울궁전, 방 55개와 306m 길이의 여름궁전 두 개가 들어섰다. 특히 여름궁전은 분수궁전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7개의 소공원 사이에 144개의 분수와 260개의 조각상이 장식된 숲길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탄성을 쏟게 만든다. 분수에 물을 대는 수도관은 엄청난 수압을 이용해 20m 높이로 끌어 올리는 공법을 이용했다. 일곱단의 층계를 흐르며 그리스 신화의 조각상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펼쳐지는 분수는 지구상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남성 편력이 심했던 에카테리나 여제. 무려 남자 애인이 21명이나 됐다고 전해진다. 좋아하는 애인에겐 늘 호의를 베풀었는데 때론 폴란드왕까지 시켜줄 정도였다. 낭비벽 또한 대단해 대관식에 쓸 왕관에 4996개의 다이아몬드와 399캐럿짜리 첨정석(尖晶石)을 장식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왕관이다. 궁전 옆에는 '은둔자의 집'이라고 불리는 미술관을 짓고 렘브란트, 라파엘, 반다이크, 루벤스 등 유럽 최고 화가의 걸작품들을 사들였다. 그녀의 미술관인 에르미타즈는 러시아의 대실업가 시추킨과 미술에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모로조프가 수집한 현대화까지 보태져 현재 루브르의 20배가 넘는 미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세계 최고의 보물을 전시하고 있는 궁전 안에서도 호박방은 세계의 불가사의로 꼽힐 정도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조선말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을 뒤에서 도운 이범진이 1910년 국권을 빼앗긴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한, 우리의 아픈 역사가 밴 곳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이 인천에서 주3회 운항한다. 9시간 30분 걸린다.

장순복 · 대륙항공여행사 대표